한반도 영세무장중립/한반도 중립화 논의

한반도 중립화 논의(8) 바르트의 중립에 관한 사유

twinkoreas studycamp 2021. 11. 24. 10:45

바르트의 중립에 관한 사유

 

과거에 덜레스 미 국무장관은 중립주의(neutralism)를 부도덕하다고 비난하였고, 소연방(Soviet Union)은 중립주의자(neutralist)를 자본주의국가들의 들러리라고 조롱하였다.

 

특정한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사람들에게 중립은 개인주의, 보신주의, 퇴행적, 민족이나 계급에 대한 무관심, 정치적 무심, 회색분자로 받아들여졌다.

 

 

바르트(Roland Barthes)는 사회적 의미에서 중립은 영광 밖에 있지만 숙고되어지고 수용되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중립의 반대로 독단·전염·유일화의 개념을 지목하였다(Neutre : notes de cours au college de France, 1977~78/중립, 김용권 역)

 

그에게서 중립은 광기와 열광과 같은 사회적 바이러스(social virus)에 대한 무관심과 비(非)전염에 머물러 ‘특정한 권’(some sphere)에 속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중립에 관한 바르트의 사유는 국가적 차원과 국제관계에서 중립이 갖는 의미를 풍부하게 해준다.

 

바르트는 중립이 ‘특정한 권’(some sphere)에 속하지 않으면서 주변의 강대국이나 세계적 초강대국을 ‘유일한 국가’로 예우하고 맹종하지 않으며, 스스로 오만하지 않고 자제하면서 사려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중립의 요체를 타자를 교정하려는 것을 삼가는 것에서 찾았다. 모든 교정에는 독단이 스며들고 ‘교정하려는 주체’의 전유(appropriation)가 발생해서 ‘교정되는 대상’을 자신으로 대체하게 된다는 것이다.

 

 

스위스 중립수호의 상징 : 앙리 기상

 

스위스 영세무장중립의 상징적 인물인 앙리 기상(Henri Guisan) 장군에 대한 스위스인들의 존경심은 특히 프랑스어권에서 대단하다고 한다.

 

최근에는 스위스 군사잡지 ‘Allgemeine Schweizerischeb Militärzeitschrift’(2019년 6월호, 35~37쪽)에 ‘General Henri Guisan as culture bearer’(Jürg Stüssi-Lauterburg)란 짧은 평전이 실렸다.

 

스위스의 온라인 영․독․불 다국어잡지 'Current Concerns'에 소개된 글에 따르면 기상은 2차세계대전에서 스위스의 영세중립을 수호하기 위한 3단계 전략을 구사했다.

 

스위스군을 사열하는 앙리 기상 사령관(사진=Andri Peer, ‘Der Aktivdienst’(1976), 33쪽. Current Concerns 재인용)

 

 

1단계는 프랑스와 함께 나치에 대항하기 위한 저지선을 구축하는 것이지만, 1940년에 프랑스가 함락되었다. 2단계는 최대한 국경을 방어하는 것이었다. 최종적으로는 독일 나치와 이탈리아 파시스트를 연결시키는 경로(transalpine routes)를 파괴하여 수개월 동안 석탄과 철의 운송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1944년 6월 연합군이 서유럽에 상륙하자 기상은 군대를 요새로 복귀시켰다. 3단계는 요새의 군대를 국경에 배치하여 중립 침해를 예방하였다.

 

평전에 따르면 기상은 군사전략을 넘어서 도덕적 힘에 기초한 물리력으로 스위스의 정신과 문화를 수호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남달랐다. 그는 국민이 스스로의 애국심에 내재하는 도덕적 힘과 군대의 물질적 힘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고, 국민에 의해서 세워진 군대는 도덕적․물질적 가치에 대한 주체라고 강조하였다.

 

1940년 7월 기샹은 영세무장중립국 스위스의 정신을 역설했다. “총알이 떨어질 때까지 싸우자. 총알이 떨어지면 총검으로라도 싸우자. 절대로 항복은 없다. 죽을 때까지 싸우자.”

 

 

 

 

중립의 역사적 기원 : 이사야의 기도 ?

 

역사적으로 중립의 효시는 이스라엘의 선지자 이사야(Isaiah)가 애굽과 앗시리아의 전쟁에 개입하지 말라고 권고한데서 찾아지기도 한다. 중립(neutrality)의 어원은 공평·중용(golden mean)·중성 등을 뜻하는 라틴어 ‘neuter’에서 유래하였다.

 

국제정치에서 중립은 2개 이상의 국가들이 전쟁을 할 경우에 제3국이 교전국들과 공평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 쪽을 지원하지 않고 어떠한 편의도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획득 및 유지하는 국제법적 지위로서 전시 등 일시적 필요성에 의한 통상중립(customary neutrality)과 항구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는 영구중립(permanent neutrality)으로 구분된다.

 

일국의 중립화는 전쟁을 회피하고 타국의 간섭을 배제하려는 내생적(internal) 요구와 자주적 능력으로 중립을 추구하는 경우와 강대국들이 세력균형 및 현상유지를 위한 방편으로 약소국을 중립화시키는 외생적(external) 요구에 의한 경우가 있다.

 

어느 경우이든 일국이 중립을 원하고 지키고자 한다면 내적으로 중립을 실천하려는 본질적 의지와 단합된 열망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중립화의 조건은 여섯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중립국이 되려면 자립적인 재정과 견실한 군비에 기초한 자위력을 갖추어야 한다. 지정학적으로 전략요충지이거나 강대국 간의 완충지대에 있어야 한다. 중립화를 위한 국민적 합의에 기반한 외교노선의 일관성 있는 전개가 이뤄져야 한다.

 

주변 강국의 세력균형 및 이해관계의 일치에 기초한 중립화 합의 및 보장이 필요하다. 주변국에 영토적 야심을 갖지 않는 현상유지 및 평화주의가 확고해야 하고, 중립국은 주변국의 군사적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영세중립의 개념과 주요 원리

 

영세중립의 정치적 중립은 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대외정책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로서 참전을 의무화하는 동맹이나 상호 방위협약 및 집단안전보장협정 등을 회피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무가 특정국가의 주민이나 난민을 구제하는 인도적 행위, 국내적으로 어떤 정치적 행위에 관한 교육 및 캠페인, 언론과 정당활동의 자유까지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영세중립은 통상적인 전시중립이나 중립노선 및 정책보다 훨씬 광범한 중립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만 도덕적 중립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국제적 논의와 국제기구의 참여가 정치적 중립을 해치지 않는 보편적 성격을 갖는 경우는 제한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영세중립국에서 진행되는 협상은 분쟁에 관련된 당사국들을 포괄하고, 영세중립국은 특정한 편을 지지하지 말아야 하지만 교전상태에 있는 당사국에게도 정치적 중립을 해치치 않는 선에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는 극심한 갈등이나 전쟁상태에 있는 당사국들이 대화와 외교적 협상을 시도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해 왔고, 스위스 은행은 그러한 정신에 입각해서 비밀엄수와 신용을 보장해 왔다. 이러한 영세중립국의 특별한 지위는 헤이그협약 등에서 국제적 동의를 형성하였다.

 

영세중립의 군사적 중립은 타국과의 어떠한 군사협정에도 가담하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 국가의 영세중립에서 주한미군의 성격 및 지위의 변화는 불가피하지만, 영세중립의 실질적 작동과 확고한 국제적 보장이 제도화되는 수준을 고려하여 점진적인 절차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북핵문제와 주한미군문제가 얽혀 있는 난해한 조건을 고려하여 기존의 군사동맹의 점진적인 해소와 영세중립의 제도화를 결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종국적으로는 스위스와 같은 영세중립의 원형을 지향하지만, 한반도 국가의 특수성에 비추어 볼 때 북핵의 동결 및 중립화와 미군의 UN 평화유지군 전환 및 존치가 공존하는 장기국면이 불가피하다.

 

또한 스위스·오스트리아와 달리 한반도는 세계적 군사강국(중)이거나 잠재적인 군사강국(일)의 침략으로 점철된 역사에 비추어 영세중립의 취지에 위배되지 않는 공동안전보장체제를 추구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를 설득할 필요성이 크다.

 

남과 북이 ‘한 쌍의 영세중립국’으로 재탄생할 경우에 서로의 영세중립을 수호하기 위한 권리와 의무를 타국이 존중하고 보장하는 특권을 확보해야 남과 북의 개별적 자위력의 총합보다 적은 규모와 비용으로 공동의 중립수호가 가능해지고 군비축소와 평화유지의 조화에 부합할 것이다.

 

만약에 영세중립국이 침공을 받거나 교전상태에 빠지면 중립의 특권이 정지 및 무효화되는 반면에 영세중립을 침해한 국가는 강대국인 경우가 많고 그만큼 국제적 보복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 역사적으로 중립이 붕괴되거나 포기한 나라들은 지역의 패권국에 의한 침공을 예방하거나 격퇴할 수 있는 자위력을 갖추지 못하였다.

 

따라서 미·중·러·일과의 교차적 신뢰관계가 안정적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한반도 국가의 영세중립은 일정한 수준의 무장력과 이에 기초한 무위(armed suasion)가 전제되어야 하며, 종래의 극단적 수준의 군비축소를 전제하는 비무장 혹은 10만명~20만명 수준의 경무장 영세중립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에 비추어 비현실적이다.

 

영세중립의 경제적 중립은 타국과의 관계에서 분명히 정치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무역협정이나 관세협정을 회피해야 한다. 그러나 군비증강이나 정치적 의도를 갖는 경제관계에 대한 회피가 아니라

 

자급적 폐쇄경제의 맥락에서 경제관계의 회피와 경제적 중립을 추구할 수는 없다. 경제적 중립은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경제적 불이익(제재, 제한, 차별)이나 갈등의 당사국에게 군사적 지원의 의미가 있는 특혜 및 지원으로 국한해야 한다.

 

통상적인 전시중립도 경제적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고, 중립국의 일반적인 특권 중에서 경제적 영역의 재량이 가장 포괄적으로 양해되었다.

 

 

중립과 통일의 결박을 풀어야

 

 

 

 

남·북의 영세무장중립에 대해서는 해외 사례와 경험을 참조하여 한반도 지정학과 역사적 조건에 최적화된 모델을 안출할 수 있다.

 

특히 스위스의 무장중립, 오스트리아와 소연방의 협상(모스크바 각서), 스웨덴과 핀란드의 중립노선을 비롯한 노르딕 밸런스(Nordic Balance), 타이의 중립적 이중전략, 코스타리카의 적극적 중립, 투르크메니스탄 영세중립의 UN 승인 등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중립을 통일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통일지상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서 중립과 통일의 결박을 푸는 것이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Being Mode)으로서 '쌍둥이 영세무장중립국'(Twin Koreas)의 지평을 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