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북핵의 성격

북핵의 성격(1) 대북 외교의 비일관성

twinkoreas studycamp 2021. 3. 22. 16:57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외교팀이 진용을 완비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는 “북한의 핵 포기는 없다고 보는 것이 ‘워싱턴 컨센서스’가 됐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The White House : Transition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 출신인 바이든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는가? 이란과의 핵협상에 참여했던 블링컨 국무장관은 다른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당의 전임 대통령이었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원대한 평화구상을 추진하였다. 그는 이란과의 핵개발 동결협상을 비롯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태평양-대서양 무역협상, 러시아와의 군축협상, 모슬렘 세계와의 관계개선, EU와의 신뢰회복, 국방예산 감축, 유럽과 중동지역에 대한 관여의 축소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한반도 문제와 조선의 존재에 대한 획기적 접근을 시도하지 않았고, 오히려 세계적 평화구상에서 한반도와 조선을 제외했다(Obama's Grand plan without Korea Penisula, North Korea).

 

블링컨 국무장관은 오마바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답습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한반도 문제의 영속적 회피와 최적 긴장이라는 미국의 70년 장기노선을 얼마나 획기적으로 전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블링컨

 

 

 

 

미 국무부의 상층부는 장관, 부장관, 차관(6명), 차관보 및 대행으로 이뤄져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한반도정책과 관련해서는 블링컨(Antony J. Blinken) 국무장관, 셔먼(Wendy Sherman) 부장관, 눌런드(Victoria Nuland) 정무차관이 주도적인 지위에 있다. 국면의 변화에 따라서는 최초의 여성 부통령 해리스의 역할이 부상할 수도 있다. 

 

이어서 젠킨스(Bonnie Jenkins) 군축 및 국제담당 차관, 엘리엇 강(C.S. Eliot Kang) 차관보 대행, 성 김(Sung Kim)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 정 박(Chung H. Park)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 등이 구체적인 전략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의 NSC에서는 설리번(Jake Sullivan) 국가안보보좌관과 캠벨(Curt Campbell) 인도태평양조정관 등이 관여하게 된다. 

 

새로운 진용은 트럼프 행정부에 비해서 대북협상의 경험이 많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한국계 인사들을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또한 북핵 문제에 관해서 블링컨이 원칙적이고 강경한 입장이라면, 과거에 방북협상을 했던 셔먼이나 젠킨스의 중용은 핵동결 및 감축 협상을 고려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협상팀이 4년 만에 단명하면서 북한(이하 조선)의 대미 협상기조는 다시 한번 도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국의 새로운 외교장관(정의용)의 임기가 사실상 1년이고, 2022년 상반기에 미국과 한국의 협상팀이 대북기조에서 다소 디커플링(decoupling)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주기적인 비일관성이 조선의 핵외교에 기회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과 한국의 대북 협상라인이 선거에 의해서 주기적으로 교체됨으로써 협상의 일관성 미비와 숙려의 빈곤을 초래하여 궁극적으로 조선의 불신을 심화시키고 협상의 실질적인 동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조선과 한․미의 협상팀 간에 비대칭적인 교체주기는 북핵을 저지하려는 한미 양국의 공통된 외교목표를 저해하는 요인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비핵화협상의 현주소는 북핵의 진정한 의도와 정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조선의 사회주의 및 선군외교의 협상전략과 한미의 비일관성과 불확실성이 빚어낸 합작품이다.(이하 김병규, 트윈 코리아 : 한반도의 지정학적 재탄생, 171~173쪽 재구성)

 

“조선의 외교는 기본적으로 피포위의식(siege mentality)에서 발원한 대미 강경노선으로 특징되지만, 핵협상에서 드러난 외교전략 및 협상기술은 복잡하다. 이른바 ‘선군외교론’에 따르면 조선은 핵외교에서 ‘악명 및 모호성 유지→벼랑끝 전략→맞대응 전략→위기관리→양자협상→포괄적 일괄타결→근본문제의 활용→단계별 혹은 동시행동 방식’의 협상패턴을 반복하였다(서훈, 북한의 선군외교).

 

조선은 핵과 ICBM의 개발과정에서 대미·대남 협상의 주요인물들을 자주 바꾸지 않았지만 한국과 미국의 협상 책임자는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정부의 성격과 노선에 따라 대북정책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고, 조선의 전략적 대응과 맞물려 대북정책은 협상과 군사적 긴장 및 제재가 주기적으로 교차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정권교체에 따른 불확실성을 활용하면서도, 협상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면서 핵개발에 몰입하게 되었다. 조선의 외교수장이 한국전쟁 이후 실질적으로 10여명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정의용 외교부장관까지 39명으로 4배에 달한다.

 

또한 김대중정부(1998년) 이후 20년 동안 통일부장관이 15명에 달해서 평균 재임기간이 1.3년에 불과하였다. 통일부의 전신인 국토통일원은 박정희 정부에서 설치되었고, 1969년 신태환을 초대원장으로 해서 장기간 지속되었다.

 

김대중정부에서 통일부로 재편되고 강인덕(1998), 임동원(1999), 박재규(1999-2001), 임동원(2001) 홍순영(2001-2002), 정세현(2002-2003) 등 5명이 임기를 6등분하였다. 노무현정부에서도 정세현(전임정부 연장) 이후 정동영, 이종석, 이재정으로 3번이나 바뀌어 총 4명이 통일부장관으로 재임하였다.

 

김대중·노무현정부의 8년 동안 9명이 통일부장관으로 재임하였으니, 평균 1년의 임기도 보장하지 못했던 셈이다. ‘통일부’라는 명칭에 걸맞지 않은 행태는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mode of being)에 대한 접근이 얼마나 관성적으로 되풀이되었는가를 보여준다.

 

반면에 조선 외교의 특징은 사회주의국가의 공통점인 대외정책 수뇌부의 장기지속, 당이 주도하는 체계에 의한 외교관 육성 및 선발, 1990년 초에 구성된 ‘핵 상무조’(Nuclear TF)를 통한 핵 협상 관리, 해외주재 외교관에 대한 감시와 통제 등으로 집약할 수 있다.

 

특히 강석주를 중심으로 김계관‧리용호‧손무신‧정성남‧정성일‧김명길‧최선희 등으로 핵상무조를 구성하여 일관된 대응기조를 견지한 것은 미국과 한국의 비일관성과 대조적이었다.

 

과거 사회주의권은 국가(정부)에 대한 당의 우월적 지위에 기반한 일당체제였기 때문에 외교를 총괄하는 수장급들이 근대이전 왕조시대의 외교가들처럼 장기재임하는 경향이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소연방의 그로미코, 조선의 허담이다.

그로미코는 1946년 유엔대사 겸 외무차관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래 사실상 40년 동안 외교수장으로 역할하였고, UN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25차례 행사하면서 ‘미스터 니에트’(Mr. Nyet)로 불리웠다.

 

조선의 허담은 1953년 참사로 시작해서 1961년 외무성 부상을 거쳐 1970년부터 1983년까지 외무상으로 재임하면서 20년 넘게 외교수장으로 활동하였다. 비공식 남북대화에서 1972년 5월 박성철 특사(정무원 부총리)가 서울을 방문해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난 적도 있지만, 허담은 비동맹 및 사회주의 친선외교와 미국 및 UN외교를 총괄하면서 1985년 9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비밀면담과 같은 대남협상까지 관여하였다.” 

 

 

<비교 요약표>

 

 

조선

한국

미국

핵 관련 동향

주석/위원장

외무상 / 당 대남비서·통전부·조평통

대통령

외무장관

대통령

국무장관

김일성

허담 외무상

조평통 위원장

황장엽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이하 생략)

이효순 대남비서

조평통 부위원장

(~1967)

황장엽 국제비서

조평통 부위원장

김영남 국제비서

(이하 생략)

이승만

임병직

(49-51)

변영태

(51-55)

조정환

(55-59)

최규하

(59-60)

트루먼

딘 애치슨

(49-53)

1933. 미-소 수교

1939. 미국, 핵개발 추진

그로미코 주미 부대사 파견

1945.4.12 루스벨트 대통령 사망

트루먼 부통령 승계

4.30일 히틀러 사망

8.6 히로시마·나카사키 원폭투하

1946. 그로미코 UN대사, 외무차관

1949. 8.29. 소비에트연방 핵실험

(카자흐스탄 사막)

1950~1953. 한국전쟁

- 맥아더, 북폭 및 핵사용 요청

- 트루먼, 원폭 사용 시사

- 스톡홀름 반핵 평화호소문

1953. 스탈린 사망

1956. 북한 원자력연구소 설치

1963. 미-소, 핵실험금지조약

케네디 대통령 피격사망

존슨 부통령 승계

1968. 미-소, 핵확산방지조약

1971. 고리 원자력발전소

1972. 미-소 탄도요격미사일조약,

전략무기제한협정(SALT-Ⅰ)

닉슨 대통령 사퇴

포드 부통령 승계

1976. 한국핵연료개발공단

1977. 이휘소박사 의문사

1979. 미-소, 전략무기제한협정

(SALT-Ⅱ)

1987. 고르바초프-부시 회담

(조선, 한반도 완충지대화 제인)

존 덜레스

(53-59)

윤보선

허 정(60)

정일형

(60-61)

아이젠하워

박정희

김홍일(61)

송요찬(61)

최덕신

(61-63)

이원경(62)

김용식

(63-63)

정일권

(63-64)

이동원

(64-66)

정일권

(66-67)

최규하

(67~71)

김용식

(71-73)

김동조

(73-75)

박동진

(75-80)

케네디

 

크리스천

허터

(59-61)

딘 러스크

(61-63)

 

W. 로저스

(69-73)

헨리 키신저

(73-74)

존슨

닉슨

포드

최규하

-

전두환

노신영

(80-82)

카터

 

사이러스

밴스

(77-80년)

 

에드먼드

머스키

(80-81)

알렉산더

헤이그

(81-82)

전두환

이범석

(82-83)

이원경

(83-86)

최광수

(86-88)

레이건

 

조지 슐츠

(82-89)

J. 베이커

(89-92)

노태우

 

최호중

(88~90)

이상옥

(90-93)

부시(1)

렌스

이글버거

(92-93)

김영삼

한승주

(93-94)

공로명

(94-96)

유종하

(96-98)

김정일

백남순 외무상

 

박의춘 외무상

강석주 제1부상

김용순

노동당

국제부장

대남비서

김기남

노동당

대남비서

김대중

 

박정수(98)

홍순영

(98-00)

이정빈

(00-01)

한승수

(01-02)

최성홍

(02-03)

☆ 통일부장관

강인덕

임동원

박재규

임동원

홍순영

정세현

* 국토통일원

* 통일원

(1969~1998)

클린턴

워런

크리스토퍼(93-97)

매들린

올브라이트(97-01)

윌리엄

페리

로버트 갈루치

2006.
1차 핵실험

2007.
남북 정상회담

노무현

윤영관

(03-04)

반기문

(04-06)

송민순

(06-08)

정세현

정동영

이종석

이재정

부시(2)

콜린 파월

(01-05)

콘돌리자

라이스

(05-09)

크리스토퍼 힐

이명박

유명환

(08-10)

김성환

(10-13)

김하중

현인택

류우익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09-13)

존 케리

(13-17)

김정은

리용호 외무상

리선권 외무상


김계관 제1부상


최선희 제1부상


리수용

최고인민위원회

외교위원장

김영철
노동당
통전부장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

박근혜

윤병세

(13-17)

류길재

홍용표

2017.
핵무력 완성 공포

2018. 남북 정상회담

2018.
싱가폴
미․조 정상회담

2019.
하노이
미․조 정상회담

2019. 판문점 3자 회동


2020.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문재인

강경화(17-)

정의용(21-)

조명균

김연철

이인영(20-)

트럼프

렉스
틸러슨
(17-18)

마이크

폼페이오

(18-20)

존 볼턴

스티븐

비건

 

바이든(21-)

토니

블링컨

 

웬디 셔먼

보니

젠킨스

제이크

설리번

 

그로미코(Andrei A. Gromyko)는 현실 사회주의국가의 외교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남아 있다. 1939년 당시 30세의 그로미코는 스탈린과 몰로토프의 면접을 보고 나서 주미 대사관에 파견되었다. 1943년 주미 대사로 임명되었고 1947년에 UN으로 무대를 옮겼다.

 

그가 1957년 외상으로 승진한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대통령은 루스벨트에서 레이건까지 9명이 교체되었고, 국무장관은 헐(Cordell Hull)에서 슐츠(George P. Shultz)까지 14명이 교체되었다. 그로미코는 1988년 회고록 초본을 완성하였고, 다음 해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