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에 관한 문제/체제선택의 문제

체제선택의 문제(1) 보편적 가치와 상대적 가치

twinkoreas studycamp 2021. 3. 19. 12:24

 

켄젤(Hans Kelsen)은 정의(justice)에 대한 정의(definition)가 상대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유의 정의·평화의 정의·민주주의의 정의·관용의 정의로만 실증될 수 있다고 하였다.

 

“우리의 양심이 행동의 절대적 정당성이나 절대적 가치를 요구한다면, 우리의 이성은 이런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우리의 양심은 행동을 최후의 목적으로 정당화하거나 행동이 절대적 가치와 일치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켄젤은 인간에게 생명은 지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사형이나 전쟁을 통한 살인은 허용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지상의 가치를 국가이익 및 국가이익과 연관된 명예로 생각하는 도덕적 확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거나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의무를 지게 된다고 보았다.

 

그는 “탈출이 불가능한 노예의 자살이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가?”라고 자문하였다. 이에 대해서 생명이 더 가치가 있다면 자살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지만, 자유가 더 가치가 있고 자유가 없는 생명은 가치가 없다고 한다면 자살은 도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고 답하였다.

 

이처럼 생명의 가치와 자유의 가치가 우선순위의 문제로 환치된다면, 판단주체의 주관적 대답만이 타당할 것이다. 계획경제를 통한 평등의 문제와 개인의 자유 및 경제적 안정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사실판단이 아니라 가치판단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국가와 전체주의적 사회주의국가의 이념대립에서 드러나는 가치의 충돌에 대해서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정당성과 절대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 까닭이다.

 

결국은 어느 것이 옳은 지를 합리적으로, 학문적 방법으로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성이 아니라 감정과 의지에 의한 판단이 이뤄지게 된다. 켄젤은 가치판단의 충돌을 해결하는 것이 인간의식의 이성적 요소가 아니라 감정적 요소라고 주장하였다. 다만 사실판단이 누적되면 가치판단에 영향을 미쳐서 가치판단의 틀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은 서로 분리되어 영구불변의 고정된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하면서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할 것이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도덕적인 인간이라도 집단적 이기주의에 포획되거나 대항할 수 없는 여건에서 도덕적 능력과 사유의 힘이 무력화된다.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한 니버(Reinhold Niebuhr)는 개인적 도덕의 규범을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았다. 사회적 불의는 도덕적, 합리적 권고와 설득에 의해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집단관계를 순수한 도덕성으로 바꿔보려는 노력들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로물로 전 유엔 사무총장

 

로물로(Carlos P. Romulo)는 도덕적 인간이라도 사회·경제·정치질서 속에서 비도덕적으로 되는 경향으로 인해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보았다. 즉 집단 도덕성의 취약성이 집단행동을 은폐하고, 집단과 제도의 생명이 개인보다 길기 때문에 도덕적 인간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카뮈의 ‘반항’은 인간이 사물이나 역사로 환원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카뮈는 혁명에 의해서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여지를 탐색한 휴머니스트였지만, “소비에트연방의 굴락(goulag)은 좋은 강제수용소이고, 나치의 아우슈비츠는 사악한 강제수용소인가?”라고 되물었다. 그가 보기에 러시아혁명은 어떤 가능성을 열었지만 스탈린체제에서 그 가능성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