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에 관한 문제/체제선택의 문제

체제선택의 문제(2) 아일랜드, 뉴질랜드, 캐나다의 시사점

twinkoreas studycamp 2021. 8. 13. 19:29

 

 

인간에게 체제선택의 자유, 체제선택의 권리가 존재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특정한 체제에 속하여 일생을 마친다. 어떤 사람들은 이주, 망명 등의 방식으로 다른 체제를 선택하기도 한다.

 

한반도 국가에서는 남과 북의 체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는 없다. 북은 말할 것도 없고 남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남과 북의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특정한 번호에 의해서 주민등록이 되고,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는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한국과 조선은 지정학적 실체이자 국제법적 주체라는 점에서 양측이 정상국가의 관계라면 한국에서 살다가 조선으로 이주하거나, 조선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이주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쌍방의 실질적 관계는 단순한 방문이나 관광 목적이라도 양쪽에서 잠입과 탈출의 중대범죄로 처벌될 수가 있다. 하물며 자신이 선호하는 체제를 택하여 영구이주를 결심하려면 아마도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아일랜드, 뉴질랜드, 캐나다의 호출

 

정약용은 인(仁)을 ‘두 사람’이라고 했다. 인이라는 글자는 사람(人)과 둘(二)로 이뤄진 표의문자이기도 하지만, 인이라고 함이 인간의 복수성과 사회적 관계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정약용의 발상을 남북관계에 투사하면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의 관계에서 서로 마음을 통하는 일(通一)이 ‘하나의 코리아(One Korea)’로 뭉치는 일(統一)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국가라는 복잡한 구성체가 하나의 인격체처럼 서로 마음이 통할 수 있는가? 국가 간에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하나의 비유이고, 실제로는 양측이 상통하는 관계를 구축하여 지속하는 것을 뜻한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참조하는 사례는 주로 동서독, 남북예멘, 동서파키스탄, 남북베트남, 중국과 대만, 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들 수 있다. 이 국가들은 평화의 정식을 확립한 경우도 있고, 혼란과 대립을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영국령), 미국과 캐나다의 관계는 위의 국가들과 역사적 배경이 다르지만 역시 전쟁을 겪었고, 지금은 상당한 수준에서 평화를 지탱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대영제국과 초강대국 미국의 위성국가로 전락할 운명이었던 아일랜드와 캐나다가 주권국가로서 존립하면서 근접한 강대국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한 역사적 경험은 한반도 국가의 새로운 존재양식과 주변국과의 미래상에 대한 논의에서 참고할 점들이 있다.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 얼스터(Ulster)의 정체성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wikipedia.en)

 

아일랜드(Republic of Ireland)는 800년에 걸쳐 영국의 장구한 지배를 받았고, 대영제국의 공식명칭이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일 정도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혁명의 세례를 받지 못하고 버림을 당했다.

 

아일랜드 민족은 감자사건과 산업혁명 소외를 거치면서 끈질긴 독립투쟁을 전개하여 주권을 회복했지만, 북동부의 얼스터(Ulster) 지방은 여러 요인에 의해서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주도 벨파스트)로 불리는 영국령으로 남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영국의 공식국호는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로 수정되었다.

 

IRA 창설자이자 아일랜드 임시정부 수반이었던 마이클 콜린스(Michael J. Collins)는 무장 독립투쟁을 선도했지만 평화의 정식으로서 영국-아일랜드 협정을 인정하였다. 그는 협정 반대파의 습격을 받고 숨졌다.

 

 

아일랜드의 독립으로 영국과 친영세력을 공포에 떨게 했던 IRA(아일랜드공화국군)의 폭탄공격은 잦아들었지만 양측의 갈등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원래 아일랜드 헌법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같이 “아일랜드의 국토는 아일랜드 섬과 부속도서 및 해역으로 한다”는 영토조항을 두고 있었다. 이 조항은 얼스터 지방(북아일랜드)이 영국의 영토가 아니라는 헌법적 근거가 되었고,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내부분쟁을 지속하는 중요한 원천의 하나가 되었다.

 

1970년대 영국군의 유혈진압 이후 독립파와 잔류파의 무력충돌이 격화되면서 30여년 동안 3,500여명의 시민이 희생되었다. 오랜 테러 공방으로 인한 쌍방의 피로감과 아일랜드 내부의 변화로 인하여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과 클린턴 미 대통령이 적극 관여한 벨파스트 협정(1998년)이 체결되었다.

 

아일랜드는 북아일랜드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고, 영국은 북아일랜드에 자치정부를 허용함으로써 아일랜드의 비극은 봉합되었다. 1998년 6월 아일랜드 의회는 헌법을 개정하여 영토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대신에 향후 통일은 북아일랜드 주민의 동의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어서 1999년 북아일랜드 주민투표에서 영연방 잔류를 전제로 한 자치정부 수립안이 가결되었다.

 

북아일랜드의 영연방 잔류는 긴 역사를 거쳐 형성된 얼스터 지방의 독특한 정체성에서 기인한다. 영국 본토에서 집단적인 이주가 이뤄졌고, 또한 스코틀랜드와 지리적으로 긴밀하여 양측의 인적 구성이 교환적이었다. 종교적으로 성공회 등 개신교 중심이어서 가톨릭 중심의 아일랜드와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또한 영국의 불균등 발전전략의 수혜지역으로 상공업이 발전하면서 영국적 정체성에 동화된 아일랜드인들이 많았다.

 

이러한 차이점이 근본적으로 식민정책의 소산이란 점에서 아일랜드 강경파와 북아일랜드의 독립파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지만, 수십년에 걸친 줄기찬 유혈투쟁에도 불구하고 북아일랜드의 전반적 여론은 독립 지지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정체성이 어떤 경위로 형성되었는가는 당대의 북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개신교도이고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적인 아일랜드인이었고, 주변의 지인은 스코틀랜드 출신을 비롯해서 영국인 후예들이 많았다.

 

이러한 정체성의 차이가 아일랜드섬의 일부를 영국 자치령으로 남겨둘 만한 이유가 되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얼스터 지방의 정체성을 무력투쟁으로 바꿀 수는 없었다.

 

북아일랜드 출신 작가 히니(Seamus Heaney)는 북아일랜드 가톨릭 주민들이 영국에 포위된 아일랜드 개신교 주민들 속에서 포위된(besieged within the siege) ‘중층적 피포위 심리를 갖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러한 피포위 의식은 그들로 하여금 영연방 이탈 및 아일랜드 재통합에 관한 주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지게 하였고, 북아일랜드는 영연방의 일부로 남게 되었다.

 

 

영화 마이클 콜린스

 

 

 

영화 데블스 오운

 

벨파스트협정을 통해서 아일랜드-북아일랜드-영국의 관계는 ‘평화의 정식’에 도달하게 되었고, 아일랜드와 영국은 여행관련 협정(Common Travel Area Agreement)에서 쌍방의 시민에 대한 입국심사 면제를 규정하여 출입국 절차에서 내국인과 같은 지위를 부여했다. 이에 따라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도 별도의 입국심사 없이 자유로운 통행이 보장되었다.

 

평화의 정식이 자리잡으면서 한때 유럽의 화약고였던 북아일랜드는 평온을 되찾았고,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국경선은 경계선으로서 의미가 희미해졌다. 양측의 시민들은 물건이 좋은 곳을 찾아서, 값이 싼 지역을 찾아서 서로 오가는 ‘하나의 생활권’이 되어버렸다.

 

최근의 브렉시트(Brexit)로 영국과 북아일랜드는 EU에 잔류한 아일랜드와 새로운 경계선을 그었다. 영국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재통일 요구를 촉발할 수 있는 빌미를 준 측면이 있지만 쌍방이 브렉시트 이후에도 기존의 공동여행구역에 관한 협정과 자유로운 이동과 취업에 관한 보장을 유지하기로 하였고, 영국 본토와 북아일랜드에는 500만명 수준의 아일랜드 인구수에 맞먹는 아일랜드인과 아일랜드계 영국인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관계의 파탄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2013년 Northern Ireland Life and Times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연방에 잔류하는 방안(66%)이 아일랜드와 통합하는 방안(15%)보다 훨씬 많은 지지를 받았다. 결론적으로 북아일랜드 사례는 ‘정체성’에 관한 문제가 어떤 대의명분을 주장하는 일방의 의지에 의해서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과 쌍방의 정체성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분쟁에서 벗어나 평화의 정식을 찾는 전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호주와 뉴질랜드 : 양국의 이중국적자들

 

영연방의 일원인 호주와 뉴질랜드의 관계도 국가 간의 경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품는데 참고할 점이 있다.

 

호주 헌법의 영토규정(States of Australia)에는 퀸스랜드 등 여러 주와 함께 뉴질랜드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뉴질랜드의 역사적 기원에 의한 것이지만 독립국가인 뉴질랜드를 자국의 영토에 포함시킨 것은 분쟁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뉴질랜드는 이를 문제삼지 않았고, 양국은 국력과 인구수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경제·군사·교육·이민정책 등에 걸쳐 상호협력과 호혜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쌍방의 국민들은 상호왕래를 비롯해서 교육과 거주 및 취업의 자유에서 서로의 국가에서 국내와 마찬가지로 내국인처럼 대우를 받았고, 1973년 여행 등에 관한 협정(Trans-Tasman travel agreemen)을 통해서 서로에 대한 특혜를 유지하고 있다.

 

호주인들은 뉴질랜드에 입국하면 뉴질랜드 영주권이 부여되고, 뉴질랜드인들도 호주에 입국하면 쉽게 귀화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양국의 시민들은 오가며 자유를 누리면서 복지혜택을 받기 위해서 이중국적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에 뉴질랜드인에 대한 호주의 영주권 부여조건이 다소 강화되었지만 제3국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뉴질랜드인들은 영주권이 없어도 호주에 계속 체류할 수 있으니 반드시 이민절차를 밟아야 할 이유도 없다. 또한 호주의 여성이 뉴질랜드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호주인이자 동시에 뉴질랜드 영주권자가 된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관계는 하나의 연방으로 합쳐도 무방할 것 같은 나라들이 따로 살면서 서로의 시민을 내국인처럼 대우하면서 ‘동행’을 지속하는 미덕을 보여준다. 또한 대외적 안보위협이 거의 부재한 뉴질랜드가 군비를 대폭 축소하고 호주와 공동 군대를 형성하여 해외 평화유지군을 파견하는 것은 한반도 국가와의 지정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공동수호'의 방식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목이다.  

 

 

캐나다 : 모자이크 정체성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수상의 아버지인 피에르 트뤼도 전 수상은 초강대국 미국과 이웃한 캐나다의 불편함을 ‘코끼리와 한 방을 쓰는 것’에 비유한 적이 있다. 프랑스계로 자유분방했던 피에르는 미국 제일주의에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외교노선을 추구했다.

 

퀘벡(프랑스어권)을 품은 캐나다(영연방)는 이중 언어를 비롯해서 복합적인 다문화를 보존하면서 미국과 다른 정치제도 및 다당제, 의료 및 복지제도, 이민정책, 총기규제 등을 발전시켜 왔다.

 

그럼에도 양국은 세계에서 가장 긴 '비무장·비방위 국경선'을 유지하면서 통근, 쇼핑, 국제전화가 아닌 시외전화로 통화할 수 있는 이웃으로 지내고 있다. 접경지대에서는 밴쿠버-시애틀, 윈저-디트로이트와 같이 공동생활권을 형성한 곳들도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발생하는 수력발전도 양국이 절반씩 나누어 쓰고 있다.

 

하지만 양국의 관계가 원래부터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812년 미 합중국은 당시 영국령이었던 캐나다를 침공해서 복속시키려고 했고, 캐나다연합군(영국·캐나다·원주민)이 역공하여 미국의 대통령궁(백악관 전신)을 불살라버렸다.

   

1840년대 ‘오리건 국경분쟁’에서 미국은 북위 54°까지 자국령으로 하여 캐나다를 태평양 연안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다. 당시 캐나다를 통치한 영국은 42°를 주장하며 맥시코와 접경하려고 했다. 결국 양측이 49° 선을 기준으로 국경선을 획정하자 어떤 지역은 통행로가 국경선과 어긋나 월경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다고 한다.

 

미국의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합중국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광대한 지역들을 선을 그어가며 매입하는 과정에서 위도와 경도를 기준으로 획정하는데 익숙해졌다. 그렇다 보니 한반도를 38°를 기준으로 나누고, 베트남을 17°를 기준으로 나누는 과정에서 지정학적으로 무신경을 드러냈다는 비판도 있다.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미국과 영국의 관계, 미국과 프랑스의 관계가 동맹관계로 발전하면서 영국계와 프랑스계를 중심으로 구성된 캐나다도 자연스럽게 미국의 동맹국이 되었다. 두 나라가 대외정책, 군사적 공조, 경제협력, 각종 교류를 심화하면서 상대적으로 국력이 약한 캐나다의 대미 의존도가 심화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위성국처럼 되지는 않았다.

 

그 배경에는 영연방 및 프랑스와의 우호관계라는 지렛대가 있었지만, 한국전쟁에 핵사용을 반대하고 종전을 촉구했던 레스터 피어슨 외상(수상), 의료보험과 아동수당을 전파한 토미 더글라스 사스캐치완주 지사, 자유주의 노선의 트뤼도 수상과 같은 정치인들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는 미국과 달리 뒤섞이지 않고 보존된 ‘모자이크적인 정체성’에서 캐나다의 독자성을 찾는 견해도 있다.

 

 

체제를 달리하지만 돌이켜 볼 문제들

 

아일랜드, 뉴질랜드, 캐나다는 인접한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나름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선택이 한반도에 던지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첫째, 한국과 조선의 정체성 차이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정체성 차이보다 적다고 할 수 없다. 남북관계에서 교류협력 중심의 기능적 접근으로 쌍방의 정체성을 뛰어넘거나 제3의 대안적 정체성을 창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쌍방의 정체성을 존중하면서도 공존할 수 있는 한반도 국가의 새로운 존재양식에 대한 개방적 논의가 필요하다.

 

둘째, 한국과 조선이 호주와 뉴질랜드처럼 쌍방의 시민을 내국인처럼 대우할 수 있다면, 그것이 통일과 무엇이 다른가? 양측이 서로 국가로 인정하고 장기적으로 자유왕래와 이중국적까지 허용할 수 있는 단계로 진화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하나의 조국’(One Korea)이라는 망토를 쓰려고 이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제로섬 게임을 지속하는 것이 타당한가?

 

셋째,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및 영국, 뉴질랜드와 호주, 캐나다와 미국은 상이한 종교적 성향이나 국가적 정체성에서 여러 가지 상이한 점들이 있지만 시장경제에 기반한 자본주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한 공통된 이해관계라는 커다란 교집합이 있다. 또한 영토와 인구를 비롯한 전반적인 국력의 격차는 크지만 쌍방의 경제적 수준은 그러한 격차보다 훨씬 적거나 거의 비슷하다.

 

넷째, 한반도의 38선보다 훨씬 긴 국경선을 비방위적 개념으로 관리하는 캐나다와 미국의 사례는 사회주의 동맹국이었던 중국과 소연방(Soviet Union)의 국경선, 1950~60년대 비동맹 파트너였던 중국과 인도의 국경선, 그리고 '국경'임을 한사코 반대하는 한반도의 휴전선보다 훨씬 평화롭고 자유로운 경계로 남아 있다. 70여년 동안 지속된 '임시 철책선'이 위험한 것인가, 아니면 분단을 영구화시킨다는 '가상의 국경선'이 위험한 것인가? 

 

한국과 조선은 한반도를 거의 반분한 가운데 인구와 경제력 등에서 차이가 크다. 또한 조선의 핵무장으로 군사적 측면에서 비대칭적이다. 남과 북이 위의 국가들의 관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시장체제와 비시장체제를 비롯해서 권력구조, 이념, 종교 등에서 체제의 성격이 판이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쌍방이 정치군사적 문제로 인하여 기능주의적 교류협력의 성과를 순식간에 무위로 뒤집어버리고 원점으로 회귀하는 ‘뫼비우스의 띠’를 되풀이하는 것보다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전환하는 정치군사적 타결이 지속가능한 교류협력의 전제라는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남과 북은 서로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 ‘남매국가’로 존립하면서 아일랜드, 뉴질랜드, 캐나다처럼 상대(국)와 외국이 아니라 ‘내국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탈국경의 세계화 시대에 부합할 것이다.

 

특히 북핵의 등장 및 한반도 비핵화의 난해함으로 인하여 그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진 흡수통일이나 잠재적으로 폭발적인 불확실성이 내재된 연방제통일보다는 쌍방이 영세무장중립을 통하여 유럽의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 조응하는 동북아의 남매국가로 양립하는 방안을 한반도 국가의 새로운 존재양식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