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Twin Koreas

트윈 코리아 : UN 동시가입 30년(1991~2021)이 남긴 과제

twinkoreas studycamp 2021. 2. 25. 16:39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에 관한 시론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지난 2020년에도 한반도 국가의 평화는 잠정적인 상태(휴전상태)로 남아 있다.

 

 

 

 

 

70년 전에 역내 경제협력을 시작한 유럽은 사회주의체제의 해체와 동·서독의 통일을 거쳐 유럽연합(EU)으로 통합을 심화하고 있지만, 21세기 한반도는 민족과 국가의 문제를 비결정상태로 70년 이상 무한 연장하는 과정에서 북핵문제까지 겹쳤다.

 

한반도 국가는 인위적 분단에 의하여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국가로 존재함으로써 영토 완정(completeness)에 기초한 국민국가라는 근대적 국가이상(national ideal)에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 이후 70년 동안 공고화된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Being Mode of Korean States), 즉 현존하는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를 인위적으로 재통일하는 과업은 민족과 언어를 달리하는 국가와의 통합만큼이나 비현실적인 목표가 되었고, 2017년 ‘핵무력 완성’ 공표로 더욱 난해하게 되었다.

 

또한 체제붕괴론은 시나브로(slowly but surely by degrees) 붕괴하였고, 핵불능화론은 불능화되고 핵동결론은 동결되면서 북핵협상은 종말을 고하였다.

 

 

남과 북의 체제수렴을 통한 제3의 체제를 지향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전망이란 점이 역력해졌고, 앞으로도 쌍방의 이질적인 체제는 장기간 평행선을 그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트윈 코리아 : 한반도의 지정학적 재탄생>은 북핵의 동결 및 중립의 과도기를 설정하고 남과 북이 나란히 영세무장중립국으로 전환하여 한반도의 지정학적 재탄생(Geopolitical Rebirth)을 실현함으로써 ‘허약한 완충국가’의 운명에서 벗어나 쌍방의 체제접근을 추구하는 것이 한반도의 국가이성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하였다.

 

또한 결론적으로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통일과 중립화의 결박을 풀고, 남과 북이 무위(armed suasion)에 기초한 적극적 중립으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동북아의 평화안보체제를 촉진하는 전략국가로 존재이전을 추구하자는 문제제기를 담았다. (<트윈 코리아 : 한반도의 지정학적 재탄생> 머리말)

 

 

 

 

 

 

한반도 국가의 우상과 이성

 

Ⅰ.

 

한국전쟁 발발 70년(휴전상태) 동안 통일의 숙원과 열망이 결과적으로 쌍방의 반국적(Half country) 국가주의(Statism)로 귀결되고, 민족주의적 정치동원과 상징조작(Symbol manipulation)에 이용되었던 경향은 먼 훗날에 ‘대국민 통일사기극’으로 드러날 수 있다.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에서 한반도정책이 나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협상기조가 다시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1994년 제1차 북핵위기 이후 미국의 협상 기조는 정부의 교체에 의해서 계속 바뀌면서 협상의 안정성과 일관성을 기하지 못하였다. 2001년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콜린 파월(Colin Powell) 국무장관이 전임 클린턴 정부의 대북 협상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히자, 부시 대통령은 즉각 정정보도를 지시하고 전임정부의 성과를 원점으로 돌려버렸다.

 

미국의 한반도 정상화에 대한 영속적 회피와 정부교체에 의한 일관성 결여로 인하여 결국은 한반도 비핵화(혹은 조선반도 비핵지대화)에 반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로버트 게이츠(Robert Gates) 전 국방장관은 “지난 4반세기 동안 노력했던 것은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개탄했고(National Public Radio, 2020.6.12), 빅터 차(Vitor Cha) 전 백악관 고문은 “정상외교가 실패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협상카드를 소진하였고, 핵무기가 늘어난 조선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고 탄식했다(NBC, 2020.6.13). 새로운 행정부가 정부교체에 따른 협상의 비일관성을 되풀이한다면, 북핵문제의 해결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미중갈등은 코로나사태의 세계적 확산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대유행에 대한 초동대응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WHO는 최초의 진원지인 중국(우한)의 재정적 기여를 의식해서 ‘국제공중보건 비상사태’(Public Health Emergency of International Concern) 발령을 1개월이나 늦추었고, 2015년 메르스사태 당시에 한국 정부가 조기에 WHO 조사단의 현지조사를 허용한 것과는 달리 중국은 우한에서 2020년 1월부터 본격화된 감염사태에도 불구하고 7월까지 WHO 조사단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회주의체제와 자본주의체제에서 다르게 발현될 리가 없지만, 중국은 마치 그런 것처럼 행동하였다. 미국이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war by other means)으로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 및 봉쇄를 지속하는 것처럼 중국도 이와 유사한 압력을 한국에게 가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은 전쟁이나 이념적·정치적 갈등을 회피하려고 하지만 대외적으로 경제적 수단과 대내적으로 중화주의(Sinocentrism)의 동원으로 주변국과의 대립을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의 막대한 피해를 중국과 WHO의 탓으로 돌리면서 ‘글로벌 코로나 퇴치회의’(Coronavirus Global Response International Pledge Conference)에 불참하고, 2021년 세계보건 프로그램 지원금의 35% 삭감을 비롯해서 대외원조 예산을 20% 넘게 삭감하였다. 코로나사태에서 드러난 미·중의 자국중심주의는 한반도 문제에서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 국가는 양국의 지정학적 이해를 완충하고 이익의 균형을 유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양국의 국가이기주의를 조절하는 국제적·다자적 협력을 포기하지 말고 끊임 없이 모색하고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 미·중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한반도 국가의 재통일을 영속적으로 회피하는 것이라면, 남과 북이 그러한 지정학적 구조를 뛰어넘을 수 있는 실력과 덕성이 미비하다면, 그래서 현상유지가 불가피하다면, 한반도의 국가이성(reason of state)을 발휘하여 적대와 내정간섭으로 점철된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를 탈피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두 개의 코리아가 현상유지 마이너스(Staus quo minus)라고 한다면, 영세무장중립에 의한 한 쌍의 코리아(Twin Koreas)는 ‘현상유지 플러스(+)’라고 할 수 있다.

 

 

                                                                 

 

Ⅱ.

 

조선의 공식적이고 명시적인 핵 독트린(Nuclear Doctrine)은 “적대적인 핵보유국과 야합해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비핵국가들에 대하여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2013년 최고인민회의 제12기 7차회의,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 제5조)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해석하면 적대적인 핵보유국(미국)과 야합해 조선을 공격하는 행위에 가담하는 비핵국가들(한국 일본 등)에 대하여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조선이 어떠한 경우에도 한국에게 핵 위협이나 핵 공격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근거가 박약하다.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조선체제에 대한 사실왜곡과 과도한 적대의식을 바로 잡자는 취지에서 ‘북한 바로 알기 운동’을 전개하고 북한학과 통일학이 하나의 학문적 영역으로 자리잡았지만, 그 후로도 조선체제는 내향적 심화(introverted deepening)를 지속함으로써 이러한 접근의 객관적 근거와 보편성이 약화되었다. 조선이 말하는 ‘우리 식’의 특수한 원리와 양상들은 서구의 이론적 틀로 해명하기 어렵고, 한국의 내부에서 강조하는 ‘내재적 접근법’도 이제는 어느 정도 ‘가치의 내면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설명의 동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내재적 접근법으로 말하자면 조선학(북한학)의 요체는 사실상 ‘김일성·김정일학’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광복 이후 좌·우 중도세력이 폭력적으로 제거되고, 한국전쟁 70년이 되도록 정전체제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남과 북은 통일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의 ‘비결정 상태’를 영속화하는 반국적(Half country) 국가주의(Statism)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남과 북의 차이는 군사분계선이라는 분리의 장벽보다 상호 불인정, 적대성과 불신, 체제의 상이함으로 인하여 봉합이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하였다. 한반도 국가의 복수성(plurality)이 ‘하나의 조국’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에서 각자 영세중립을 통하여 상호인정, 호혜성과 신뢰, 체제접근을 추구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한국이 조선의 ‘우리 식’에 대해서 호오의 차원이 아니라 실체에 대한 객관적인 관조를 유지하면서 상호인정에 기초하여 장기적으로 체제접근을 이루려고 한다면, 먼저 ‘중립화’와 ‘통일’의 결박을 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지정학적 세력균형과 현상유지를 근본적으로 변경할 수 있는 실력과 덕성의 미비(unpreparedness)를 인정하고, 하나의 민족국가라는 존재양식을 절대적인 미래로 상정하는 국가이상(national ideal)에 대해서 한계설정(limitation)이 필요하다. 통일문제는 더 지혜로워질 후세대에 넘겨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반도 국가의 영세중립화에서 세계의 지지여론을 형성하고 핵심적인 이해당사국인 미·중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은 남과 북의 의지와 열정에 달렸다. 한반도 국가의 영세중립에 대한 국제적 보장과 세계적 지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가톨릭 교황과 UN 사무총장 등이 한국과 조선을 순회방문하거나, 국제민간기구들과 협력하는 정지작업도 중요하다. BTS·봉준호·레드벨벳을 비롯한 한국의 문화적 역량은 영세중립의 문화적 전파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조선을 방문할 수 있다는 의향을 밝히고 초대를 기다리고 있다. 조선이 영세중립의 가치를 통일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통일지상주의에서 일단 벗어나고, 교황을 초청하여 영세중립에 대한 지지를 요청한다면 세계적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또한 사회주의체제의 영세중립 선언은 세계 정치사에 전무후무한 이정표가 될 것이고, 세계인들에게 조선의 핵무력 완성보다 훨씬 더 심원하고 영속적인 파동을 전달해 줄 것이다.

 

북녘으로 소 1001 마리를 몰고 갔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통일은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통일의 방향에 관하여 합의한 내용도 결국은 서로 도우며 살 수 있는 상태, 즉 상이한 체제의 공존과 접근을 염두에 둔 것이다. 중립화된 한국과 조선은 기존의 경계선을 국경선으로 전환하되 언젠가 가능해질 통일의 미래를 현재적으로 상징하는 실험적 방안들을 강구할 수 있다. 기존의 개성공단·금강산을 넘어서 쌍방의 제한적 왕래에 의한 공동경제구역과 연구단지를 운영하고, 공동의 중립수호를 위한 상징적 조치로 백두산과 독도에 공동경비구역을 설치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항모(경항모)에 지어진 이름들은 한반도의 지정학과 밀접한 의미가 있다. 중국의 항모 1호인 랴오닝함의 함재기들이 서해에서 발진하면 한국의 영공은 대부분 작전반경에 포함된다. 중국인들에게 ‘랴오닝’이란 이름은 한반도 서북부와 뗄 수 없는 친연성이 깊은 지명이자 청일·중일전쟁에서 해양세력(일본)에게 멱살을 잡힌 교훈을 담고 있다. 일본 자위대의 경항모 ‘이즈모’(いずも)의 이름은 러일전쟁과 중일전쟁에서 활약했던 순양함의 이름과 같고, 독도를 일본의 행정구역으로 분류하는 시마네현의 옛 지명이다. 남과 북은 해상공동방위의 상징적 조치로 ‘중립수호 경항모’를 운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한국은 공적개발원조(ODA)를 전략적으로 조선에 집중하고, 쌍방은 엄격한 규정과 제한을 두어 여행관광·전문인력 유치·초청이민·유학·취업이주를 허용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탈북이나 월북이 아니라 일정한 조건과 사유(cause)에 의해서 일시적 혹은 영구적 이주를 허용하는 ‘육질적인 변화’를 거치지 않는 통일방안들은 현실적인 설계라고 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남과 북이 영세무장중립에 동의한다면 단기적으로 북핵의 동결 및 중립의 전기가 되고 조선의 경제적 이행(Economic Transition)의 지평이 열릴 수 있다. 또한 궁극적으로 한반도 및 동북아의 비핵지대(NWFZ)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중립화를 평화통일이라는 국가이상의 하위적·수단적 개념으로 바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한국과 조선의 영세무장중립을 한반도 국가의 새로운 존재양식(New Being Mode of Korean States)으로 승인하는 방안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가 필요하다. (<트윈 코리아 : 한반도의 지정학적 재탄생>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