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2

영화 ‘파묘’의 불청객 : 첩장(疊葬)과 신토(神道)

영화 ‘파묘’에서 파헤친 것은 한국의 전통적 매장문화가 아니라 일본인들의 시대착오적 정신세계였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와 엔저가 겹치면서 일본 여행이 활짝 열린 시기에 '묘바람'을 막으려고 시작한 파묘가 일본의 과거 행각을 캐냈다는 영화의 결말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일본의 공격적 집단주술과 한국의 방어적 집단주술을 다룬 만화적 무속영화라고 하기에는 역사적으로 누적된 팩트의 질량이 무겁다. 묘바람에 투영된 일본의 정신세계 ‘파묘’라는 말은 부관참시와 같이 뭔가 불온한 뉘앙스를 갖지만, 후손들이 조상의 묘에 물이 차는 등 문제가 생길 경우에 이장(移葬)하거나 다른 이유로 합장(合葬)을 할 경우에 불가피한 과정이다. 첩장(疊葬)이라는 것도 남의 명당(묘)에 슬쩍 암장 (暗葬)..

영화 '노량'에 담긴 시대순환 : 허약한 완충국가

영화 ‘노량 : 죽음의 바다’는 충무공의 칼에 새겨진 ‘염혈산하(染血山河)’의 피날레를 보여준다. 또한 전편인 ‘명량’, ‘한산도’와 달리 대첩이 아니라 어쩌면 예고된 그의 죽음에 담긴 의미를 환기시킨다. 충무공은 전쟁 초기에 커다란 공을 세웠지만,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당쟁을 일삼던 조정의 탄핵으로 참형에 몰린 적이 있었다. 당시에 아무도 나서지 않는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72세의 판중추부사 정탁(鄭琢)이 신구차(伸救箚)라고 불렸던 장문의 진정서를 올려 선조에게 직언했다. “순신은 명장이므로 죽여서는 안 됩니다. 순신이 출전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뒷날에 공을 이루게 해주십시오.” 당시 40대의 선조는 홀로 나선 칠순 원로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했다고 하니, 정도전의 건국설계에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