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국가(World Politics)

백신 국가주의 vs 백신 지재권 유예

twinkoreas studycamp 2021. 5. 6. 15:24

코로나 백신 지식재산권 유예에 관한 국제적 논의가 본격화될 조짐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재권 유예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데 이어 미 무역대표부(USTR)의 대표가 성명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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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백신 국가주의(Vaccine Statism)’로 인해서 고소득국가들이 글로벌 제약사들과 배타적인 구매계약을 맺음에 따라 백신의 평등한 보급을 위해 만든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의 성과는 미미하다. 인도의 최근 양상은 사실상 생지옥에 가깝다. 

 

옥스퍼드대의 아워 월드 인 데이터등에 따르면 코로나 백신의 80% 가량이 고소득 국가와 중상위 국가에 집중되었고, 저소득 국가는 0.1%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저소득 국가들은 2023년에 가서야 백신 접종이 본격화되고 글로벌 집단면역은 2024년까지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한 지난 1년 동안 봉쇄조치로 인한 피로가 누적된 동남아 개발도상국들과 저소득국가들은 백신 접종률이 낮은 상태에서 방역태세마저 이완되면 치명적인 부메랑을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인도의 확진자 대폭발과 같은 현상이 동남아 주변국으로 점차 확산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인구대국인 인도네시아를 비롯해서 그동안 상대적으로 감염 확산도가 낮았던 태국, 스리랑카, 네팔, 몰디브, 캄보디아 등에서 감염자들이 폭증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인도와 마찬가지로 올해 초까지만 해도 감염상태가 심각하지 않았으나, 인도와 같이 대규모 축제나 이동을 허용하면서 확진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WHO는 의료기반이 취약한 캄보디아 등이 인도와 같은 국가적 재앙을 맞이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백신 지재권 유예 지지 입장을 높이 평가한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트위터)

 

극단적 비대칭과 빈부 양극화에 의한 글로벌 집단면역의 지연에 대해서 거브러여수스(Tedros Adhanom Ghebreyesus) WHO 사무총장은 파멸적인 도덕적 실패의 직전으로 규정하였다.

 

또한 백신 접종률이 높은 미국과 EU 국가의 국민들이 백신 접종률이 낮은 국가로 이동하게 되면 악조건 속에서 셀프 임상을 하는 꼴이 될 것이다. 반대로 백신 접종률이 높은 EU 국가의 국민들이 백신 접종률이 높은 국가로의 이동을 선호하고, 백신 접종률이 낮은 국가로의 교류협력과 관광 및 여행을 회피하면 저소득 국가에 경제적, 사회적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의 이번 입장표명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결단으로 이어져 백신 지재권 유예조치가 이뤄질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지만, 인도를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 감염자가 폭증하고 변이가 만연하는 상황에서 WTO는 지재권 유예를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제도적 절차에 따라서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WTO에서 글로벌 집단면역이 형성되는 시점까지 백신 지재권을 유예하는 방안(TRIPs 일시유예)이 통과되면 개도국들도 개발사의 허락 없이 복제 백신을 생산할 수 있고, 추후에 소정의 보상을 하게 된다. 2001WTOAIDS 치료제에 대해 지재권 유예 조치를 단행하여 세계적 확산을 막는데 기여한 바 있다.

 

 

1. 미국의 입장표명이 갖는 무게감

 

현재 유통 혹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은 화이자, 모더나,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스푸트니크 V, 노바백스, 사노피 등이다. 미국은 4종 이상의 백신을 생산하는 제조국이자 수출입 주요국가로서 세계적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

 

○ 지난해 미국은 조속한 백신개발을 위해서 13조원에 달하는 연구비 지원과 규제완화 조치를 단행하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백신개발에 앞장서고 바이든 행정부가 백신 지재권 유예를 선도하는 양상은 머슴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국제적 미담이 될 수 있고,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 회복에도 기여할 수 있다.

 

 

2. 글로벌 지재권 유예 사례 : AIDS 치료제

 

AIDS에 대한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antiretroviral medicines, ARVs)1인당 연간 1만여 달러에 달해서 보편적인 보급이 이뤄지지 못했다.

 

1990년대 AIDS 감염률이 폭증한 남아공은 환자 40만명 중에서 1만명 정도만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한 상태를 방치하면 2010년까지 최대 300만명이 사망에 이를 정도로 확산세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남아공의 치료행동캠페인(Treatment Action Campaign, TAC)의 노력과 정부의 외교적 노력으로 WTO 결정(2001)에 의해서 지재권이 완화되어 제네릭(Generic) 생산, 즉 카피약이 대량 공급되었다. 이로써 치료제 가격이 1일 기준 0.21달러 이하로 하락함으로써 AIDS 확산 저지에 기여하였다.

 

 

3. 백신 지재권 유예를 호소하는 세계적 압력

 

20205월 남아공 학자 80여명은 라마포사(Cyril Ramaphosa) 남아공 대통령에게 특허 법을 개정하여 COVID-19에 대응하는 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고, 10월에는 TRIPs(무역관련지식재산권협정)의 일시 유예의 국제적 의미를 강조하는 서한을 대통령에게 보냈다. 두 번째 서한에서는 AIDS 지재권 유예를 선도했던 남아공의 경험을 살려서 국제적 리더십을 행사해야 할 것을 요청하였다.

 

202010월 인도 정부와 남아공 정부는 WTO에 글로벌 집단면역이 형성되는 시점까지 백신 지재권을 유예하는 방안(TRIPs 일시유예)을 제출하였고, 볼리비아·베네수엘라·몽골·짐바브웨 등 100여개 국가에서 지지를 받았다.

 

WHO, 유엔에이즈계획(UNAIDS), 국제의약품구매기구(UNITAID) 등 국제 보건의료기구 와 국경없는의사회·국제앰네스티 등 국제 NGO 300여개 기구 및 단체가 백신 지재권 유예를 지지하고 있다.

 

오콘조이웨알라(Ngozi Okonjo-Iweala) WTO 사무총장은 코로나 백신 및 치료제에 대한 지재권 유예를 촉구하고 있다. 오콘조이웨알라는 백신을 인류의 공유자산으로 바라보고, 공유자산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인류의 이익이 달렸다고 강조했다.

 

2021415일 브라운 전 영국 수상,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 고르바초프 전 소연방(Soviet Union) 서기장, 클라크 전 뉴질랜드 수상, 르테름 전 벨기에 수상 등 전직 수반 70여명과 스티글리츠 등 노벨상 수상자 100여명, 세계백신연합(People's Vaccine Alliance)이 지재권 유예를 요청하는 서한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냈다.

 

 

4. 미국 대통령, 무역대표부 대표와 WTO 사무총장의 화답

 

202155일 바이든 대통령은 WTO의 백신 지재권 유예에 대해서 찬성 입장을 명확하게 밝혔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타이 (Katherine Tai) 대표도 이와 같은 입장을 확인하였다.

 

 

거브러여수스(Tedros Adhanom Ghebreyesus) WHO 사무총장은 미국의 입장 표명을 즉각적으로 환영하고, 세계적    위기에 대한 강력한 리더십으로 평가하였다.

 

 

5. 전망

 

무역과 보건에 대한 글로벌 양대 기구인 WTO, WHO의 사무총장과 미국의 입장이 일치 함에 따라 백신 국가주의를 뛰어넘는 계기가 형성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제조사들의 반발과 EU의 소극적 자세로 인하여 향후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시각이 많다. 한국 정부도 이 사안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최초로 mRNA 기술을 이용한 백신을 개발한 화이자, 모더나 등은 지재권 유예로 인하여 중러 등으로 기술유출과 무임승차를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미EU와 중러의 직접 이동은 제한되더라도 지구적 이동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면 우회적 이동 및 제3국의 매개에 의한 감염의 위험까지 차단할 수는 없다. 인도의 위기에서 드러난 것처럼 중국과 러시아 같은 대국의 집단면역은 글로벌 위기탈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제약사들이 계속 반대하면 미국과 유관국들은 특허와 관련한 강제실시 권한을 발동할 수도 있다. 2001년 브라질과 2007년 태국은 AIDS 창궐에 대한 비상대응으로 AIDS 치료제의 강제실시권으로 공급가를 인하시켰다.

 

뒤늦게 백신개발에 나선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은 추격전략의 지속과 복제품 대량생산 체제로의 전환에서 택일하거나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분기점에서 정책결정의 진폭이 커지게 됐다.

 

백신 지재권 유예조치가 이뤄져도 생산능력 및 재료조달이 가능한 나라들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유예조치를 요청한 인도, 남아공을 제외하면 고소득 국가와 중견국 중에서 의료기반이 구축된 일부 국가들에서 생산이 이뤄지고, 대부분의 개도국과 저소득 국가들은 역내 생산국에서 조달하는 방식이 된다는 것이다.

 

 

[공동성명]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전 세계시민이 차별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TRIPS 유예안을 지지해야 한다 (2021.2.3)

 

 

우리는 오는 24일 개최될 세계무역기구(WTO) TRIPS 이사회에서 한국 정부가 무역 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Agreement on Trade-Related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이하 TRIPS) 특정조항 유예안을 지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이미 1억 명 이상의 인구가 코로나19 확진을 받았고 200만명 이상이 코로나19로 사망하였다. 다행히 몇몇 의약품이 개발되어 코로나19를 예방하거나 치료하는데 사용될 수 있게 되었지만, 개발된 치료제와 백신은 특허 독점 때문에 막혀서 국가별로 매우 불공평하게 사용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지난해 미국은 자국 제약사 길리어드가 생산한 코로나19 임시치료제 렘데시비르 3개월 생산 물량을 거의 독점한 바 있다. 특허로 인해 특정 회사만 이를 생산·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유럽연합도 유럽에서 생산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백신 또한 특허 적용을 받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특허 독점으로 인해 백신 구매 계약도 민간제약회사 우위로 매우 불공평하게 진행되고 있다. 고소득국가들은 이미 자국 국민들의 2~5배에 달하는 백신 구매계약을 하고 있지만, 저소득국가들은 단 한 건의 직접계약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이를 두고 파멸적인 도덕적 실패 직전에 있으며, 결국 팬데믹을 연장할 뿐이라고 비판하였다. 고소득 국가들은 2021년까지 집단면역 수준의 백신접종에 이를 수 있는 백신 구매계약에 성공하였지만 저소득 국가들은 2023년에야 백신 접종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비단 저소득 국가들에만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국가별 백신 접종의 불평등은 바이러스 변이에 대한 위험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감염병 위기를 장기화 시킬 수 있다.

 

결국 선진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위해 백신구매 경쟁을 벌였지만, 백신을 접종하고도 감염병 위기에 계속 노출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차별과 불평등, 그리고 팬데믹의 실질적 해결을 가로막는 특허독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중요하다. 코로나19 의약품 관련 기술과 노하우를 전 세계가 공유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 102,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인도 정부는 TRIPS의 일부 조항의 적용과 이행의 유예를 제안하였다. 이 유예안은 코로나19 관련 의료기술에 한하여 TRIPS협정 제2부 제1(저작권), 4(산업디자인), 5(특허), 7(미공개 정보의 보호)과 이들의 제3부에 따른 집행의 일시적 유예를 제안하고 있다. 만일 국제사회가 WTO 수준에서 이 유예안을 채택할 경우, 코로나19 예방, 억제, 치료에 관하여 위의 조항에 관한 의무는 유예되고, 특허 독점이 대폭 완화된다.

 

이 유예안에 대해 이집트, 케냐, 볼리비아, 파키스탄을 비롯한 100여개 국가와 세계보건기구(WHO), 유엔에이즈계획(UNAIDS), 국제의약품구매기구(UNITAID)를 비롯한 국제기구 및 수백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지지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19 관련 기술개발 독점에 유리한 미국, 영국, 유럽연합(EU)을 비롯한 고소득 국가들이 유예안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히거나 침묵하면서,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의 WTO TRIPS 이사회에서는 유예안의 채택을 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우리는 한국 정부 역시 계속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 커다란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말로는 국제무대에서 수 차례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국경을 넘은 협력, ‘개발된 백신과 치료제의 인류를 위한 공공재로서의 공평한 보급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실제 이런 중요한 결정에 대해서는 침묵함으로써, 코로나19 의료기술이 공공재로 취급되지 않고 자국 우선주의와 국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일을 방조하고 있다.

 

시민사회는 한국 정부가 오는 24TRIPS 이사회를 맞아 TRIPS 유예안에 대한 지지입장을 밝히고, 위기 앞에서 각자 도생이 아닌 연대와 협력을 위한 방법을 시민사회와 함께 모색할 것을 촉구한다. 지키지 않을 약속을 남발하는 대통령은 국민들과 전 세계 시민들에게도 불신과 냉소를 낳을 뿐이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진정으로 공공재가 될 수 있도록 문재인 대통령은 TRIPS 유예안을 지지하고 백신 배분정의에 대한 의지를 실천해야 한다.

 

202123

 

건강과대안,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진보연대, 시민건강연구소,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지식연구소 공방, 진보3.0, 참여연대, 청년정의당, 한국YMCA 전국연맹, 한국민중건강운동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세상네트워크 노동건강연대 시민건강연구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 (가난한이들의 건강권확보를 위한 연대회의,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건강세상네트워크, 대전시립병원 설립운동본부,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건강보험하나로시민회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전국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여성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민노련, 전철연), 전국빈민연합(전노련, 빈철련), 노점노동연대, 참여연대, 서울YMCA 시민중계실,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연대, 장애인배움터 너른마당, 일산병원노동조합,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 약사의미래를준비하는모임, 성남무상의료운동본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노동조합, 전국정보경제서비스노동조합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