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Twin Koreas

한반도 전쟁 경고에 담긴 역설 : 갈루치·헤커·프랭크

twinkoreas studycamp 2024. 1. 17. 18:05

 
 
복잡한 사연을 단순하게 말하면 오해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최근 조선(DPRK)의 대남노선 대전환은 복잡한 사연을 담은 것인데, 이를 어떤 한 측면만 강조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길잡이가 될 수 없다.
 
국내 언론은 해외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북의 대남전략 변화로 인해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비상하게 증가했다고 경고한 점을 집중보도했다.
 
특히 로버트 칼린과 시그프리드 헤커는 공동기고문에서 “역사는 다른 선택지가 남아있지 않다고 확신하는 이들이 가장 위험한 게임을 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국전쟁 전야의 상황을 환기시켰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전쟁을 억지하고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한 우려와 경계가 당연히 필요하고 강조될 필요가 있지만, 실제 원문에 담긴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현실적 방안에 대한 고민들이 국내보도에서 통째로 누락되었다. 국내 언론은 기존의 ‘북핵 프레임’에 의한 도그마에서 벗어난 대안적 접근을 백안시하거나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역설적인 것은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희망사항이었는데 이를 북이 먼저 치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보수진영에서는 오래전부터 통일부를 없애고 외교부에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그걸 김정은이 과감하게 선제적으로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 한겨레신문, 2024.1.22.)

 
 
‘두 개의 코리아’의 새로운 국면 : 전쟁재개 vs 상호승인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당 총비서로서 대남노선 전환에 대한 방침을 밝히고, 이어서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장으로서 이러한 전환을 헌법에 명기할 것을 제시함으로써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가 한반도 내적으로 공식화되기 시작했다.
 
한반도 외적으로는 91년 UN 동시가입으로 ‘두 개의 코리아’가 국제화됐지만, 30여년 동안 남과 북은 ‘민족 내부의 특수한 관계’를 내세워 서로 국가로 간주하지 않으면서 ‘하나의 코리아(One Korea)’를 고수해 왔다. 남북경협의 현장이었던 개성공단 입구에 세워졌던 ‘조국은 하나다’(로만손 기증)라는 기념탑은 이를 상징했다.
 
두 개의 독립적인 국가가 통합을 하려면 쌍방의 합의가 필요하지만, 각자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것은 일방의 선언만으로 족하다. 한국이 이를 부정해도 오래 전에 ‘두 개의 코리아’를 수용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한반도 국가의 문제가 중국과 대만의 관계와 다른 점이다.
 
문제는 김정은 위원장이 이런 중대한 변화를 평화의 메시지가 아니라 전쟁의 메시지에 담았다는 점에서 국내외의 우려를 낳고 있다. 그는 한반도 정세가 핵전쟁 접경에 도달했고, 전쟁이 현실적 실체로 다가왔기 때문에 전쟁준비를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에 대한민국을 제1적대국 및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하고, 전쟁이 발발하면 한국을 점령하여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는 헌법개정을 제시함으로써 국내외 전문가들의 전쟁 우려를 증폭시켰다.
 
일부 해외 전문가들은 1948년 이후 한국전쟁 직전까지 반복되었던 대남 경고들이 실제로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들어 최근 북의 동태는 ‘짖는 개가 물지 않는다’는 속설을 뒤집을 수 있는 실제적 위협이라고 우려한다.
 
하지만 전쟁을 앞두고 조평통 등 대남기구와 평양방송 등 대남매체를 정리 및 중지하고, 헌법조문을 개정하는 것은 전쟁의 예고로만 간주할 수 없는 복잡성(complexity)을 내포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럼에도 복잡한 일을 한 측면만 강조하여 단정하면 어떤 긍정적 가능성들을 배제하여 도리어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방북 및 대북 교섭 경험이 있는 한반도 전문가들이 군사적 긴장 및 전쟁 가능성 고조를 경고하면서도 결론적으로 북이 수용할만한 ‘현상유지 플러스’를 위한 대안을 강조하는 까닭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은 지난 유엔 가입 이후 30여년에 걸친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에 최종적으로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미국 대선을 앞두고 바이든과 트럼프에게 한반도 전쟁과 관계정상화의 양자택일을 압박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즉 한국과의 관계 재설정의 진정한 의도는 조선과 미국의 관계 정상화(국교수립)에 있다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루디거 프랭크

 
 
동독 출신으로 김일성대학에서 잠시 수학했던 루디거 프랭크 비엔나대 교수는 북의 변화에 담긴 또 다른 의미에 대해 남과 북의 상호 국가로서 승인 및 국교수립의 시발점으로 보았고, 북핵교섭을 주도했던 로버트 갈루치는 미 행정부가 북핵문제를 대북관계 개선의 선행요건에서 제외하고 일단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위원장이 동족, 동질관계로서 북남조선, 우리 민족끼리, 평화통일 등 과거의 잔여물들을 처리하기 위한 실무대책과 삼천리금수강산이나 8천만 겨레와 같은 잔재적 낱말들을 사용하지 말도록 지시한 것과 헌법에서 공화국 남반부·북반부와 같은 표현을 삭제하도록 한 것은 단순히 대남 적대성을 강조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민족문제에 대한 선대의 유훈으로 성역시되었던 3대 원칙(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을 삭제하도록 한 것은 ‘조국통일’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 대한 근본적 전환이란 점에서 이를 ‘전쟁 예고편’이나 ‘민족반역적 발상’이란 식으로 힐난하는 것은 일면적이며 전체 맥락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국방력 강화가 일방적인 무력통일을 위한 선제공격 수단이 아니라 자위적 방위력이라고 강조했고, “우리는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한 김 위원장이 당과 정부의 지상과업이 전쟁준비가 아니라 인민 생활의 조속한 향상이라고 강조한 것이 립서비스라고 하더라도, 한국과 미국은 이번 중대발언에 담긴 복잡성과 다면성을 균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구분위협 강조점초점 및 특징고려 및 대안기고문
로버트
갈루치
중국-대만 충돌에 연동된 핵공격
한국과 미국에 대한 독자적 핵위협
중국 통일전쟁
동북아 확전
미국 우선순위
조정


조선-미국
관계 정상화
The National
Interest
(1.14)
로버트 칼린

시그프리드
헤커
한국전쟁 전야와 유사한 기류,
허세 아닌 핵 전쟁 가능성
북핵의 실전화
제2의 한국전쟁
(전략적 결심)
한·미 오판
경계


북핵 동결 및
관계 정상화
38North
(1.11)

루디거
프랭크
직접적 침공보다 한국 체제변화 방점김정은 독트린
de-risking strategy
북의 통일 주도 포기
(동독 선례)
한국의 통일
주도권의
호기


상호승인
국교수립
38North
(1.11)

 
 
결론적으로, 최근 북의 동향에 대해 단기적 상황판단에 머물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서로 Sea Power(미·일)와 Land Power(중·러)의 완충국가라는 전략적 공감(Strategic Empathy)과 남북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장기적·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로마는 하루에 이뤄지지 않았다.”
 
동독은 1949년 제정헌법 1조에서 독일은 하나(Germany is one)라고 규정했고, 1968 개정헌법 8조는 “독일의 분단을 극복하기 염원’으로 완화했다가, 1974년 개정헌법에서 통일에 관한 조항을 모두 삭제했다.
 
루디거는 이러한 전례에 비추어 북의 변화가 남에게 통일 주도권의 호기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실제 독일통일의 과정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서독은 할슈타인 원칙(1955)을 철회하고, 사민당의 새로운 접근에 기초한 동방정책(소비에트 및 동유럽)의 연장선에서 동독과의 관계정상화를 수용했다.
 
궁극적으로 양측은 서로 국호 지칭과 국기 게양을 허용하고, 접경지역 일대의 자유로운 왕래까지 이뤄졌다.
 
루디거는 결론적으로 북이 남을 일반적인 타국으로 대함으로써 이론적으로 외교적 관계, 상호 승인 및 대사관 설치의 길을 열었다고 보았다. 그는 미·일과 북의 상호관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러한 옵션의 유용성은 저절로 즉시 진전되지는 않는다고 보면서도 “로마는 하루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즉 최근 변화가 장기적으로 새로운 남북관계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Finally, the new North Korean approach of treating South Korea as a regular state theoretically opens the way to diplomatic relations, mutual recognition, and even the establishment of embassies. As North Korea’s bilateral relations with the United States and Japan have shown, the availability of such an option does not automatically mean immediate progress ; but Rome was not built in a day.)
 

시그프리드 헤커

 
칼린과 헤커는 김 위원장이 전제조건(상대의 침공)을 달기는 했지만, 그런 레토릭은 한국전쟁 전야에 북의 대남 메시지들에 비추어 재통일 혁명전쟁(a revolutionary war for accomplishing reunification)의 명분 축적용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한·미가 전쟁억지력을 과신하는 경향을 경계했다.
 
이들은 50~60기로 추정되는 북의 핵탄두가 최근 진화된 미사일체제에 의해 한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오키나와와 괌까지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로버트 갈루치

 
 
대북 특사였던 갈루치의 기고문은 ‘Is Diplomacy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Possible in 2024?’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핵전쟁 가능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 행정부가 대북협상 전략을 전환할 것을 권고한다.
 
갈루치의 논지는 미국의 대북정책 우선순위에서 비핵화에 앞서 조선과의 관계 정상화에 주력할 것과 미국이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을 억제해야 할 (역사적, 국제적)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 미국은 북핵과 별개로 조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기조에서 관계정상화의 의지가 미약했고, 그렇다보니 북은 핵무장에 대한 열망과 별개로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딜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심했다.
 
이런 조건에서 핵동결이라는 중간단계를 생략한 역대 미 행정부의 완전하고도 포괄적인 불가역적 비핵화는 공염불이 되어 북은 조만간 100개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할 것이라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했다. 2019년 미국과 조선의 핵전쟁 위기국면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역대 미 행정부의 오판과 무능을 질타한 까닭이다.
 
전쟁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른바 ‘위장평화’나 ‘가짜평화’에 휘둘려 안보를 등한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평화의 시간들이 진짜든 가짜든 참혹한 전쟁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애초에 평화와 정의는 동시에 성립되기 어려운 숙명적 난제인지도 모른다. 평화는 평화 자체가 목적이지 정의를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외적에 굴복하여 매국하는 불의한 평화와 외적에 대항하는 정의로운 전쟁이 존재했지만, “민족 내부에서는 어떤 나쁜 평화라도 전쟁(내전)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최근 북은 이러한 민족 내부의 특수한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재설정함으로써 교전국 사이의 휴전(정전협정)이 깨지면 전쟁이 재발할 수 있다는 당연한 우려로 귀착됐다. 
 
 
상호 승인 ? : 세계 150개국 이상 남·북 교차승인

 
남과 북의 수교국 통계는 한국(192개국)이 조선(159개국)보다 30개국 이상 많지만, 미국의 직·간접적 영향권에 있는 태평양 도서국가와 아프리카 및 남미권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다. 한국과 조선을 각각의 독립적 국가로 승인하여 동시에 수교한 국가는 오늘날 세계 주요 국가를 이루는 156개국에 달한다.
 
지난해 별세한 재미교수 출신 김정원(알렉산더 김, 1936년생) 전 안기부 제2차장(김영삼정부) 및 외교부 본부대사는 1971년에 기고한 ‘Pacific Community’의 글에서 한반도의 완충지대화, 4대 강국의 안전보장을 통해 한반도의 재통일을 제기했다.
 
김 전 대사는 10년 후인 1985년에 ‘분단한국사’라는 표제로 번역된 ‘Divided Korea : The Politics of Development( Harvard University Press, 1975)’의 저자이기도 하다.
 
비슷한 시기인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미·일·중·소 4대 강국의 한반도 평화보장과 남북 교차승인을 제기했다.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이낙연 전 총리도 고 김대중 대통령의 선견지명과 관련해서 4강의 안전보장이 이뤄졌다면 남북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40대 학자 김정원과 50대 정치인 김대중의 탈냉전적 디자인 이후 5년 뒤에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이 한반도 안정화의 명분으로 남북에 대한 4국의 교차승인을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별세한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중국과 소연방(Soviet Union)이 한국(ROK)을 승인하고 미국과 일본이 조선(DPRK)을 교차승인하여 남과 북이 UN 동시가입을 이루는 방안을 제기했다.
 
당시 조·소·중이 보기에는 베트남전쟁으로 수세에 처한 미국의 ‘위장 데탕트’ 공세였다. 조·중·러는 이러한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고, 특히 조선은 남북 교차승인을 영구분단 고착화로 한반도 및 민족 통일의 포기로 간주하여 한국보다 더 반대했다.
 
결국 키신저의 구상 중에서 UN 동시가입은 탈냉전이 가속화되던 1991년에 실제로 이뤄졌지만, 소연방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국제질서가 급변하면서 한국은 중·러와 수월하게 국교를 수립했지만 미·일은 조선과 수교를 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시간은 우리 편이라고 본 것이다. 문제는 그 시간이 어느새 40년을 향해 가고 있다.
 
최근 북의 ‘민족문제 급선회’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여 심모원려의 미래과제로 삼는 관점이 필요한 까닭이다.
 
 
‘민족 대 국가’의 제도적 투영 : 통일부 대 외교부 .... 실력의 문제
 

한국과 조선의 동시 수교(교차승인) 국가
사례
조선과 미수교 국가(일방 승인)
영국 등 유럽권 48개국
중동 및 아프리카 60개국
중국, 러시아, 베트남, 몽골 등 옛 사회주의권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
호주(74년 수교, 75 단교, 2000년 재수교)
뉴질랜드(2001년 수교)


미국, 일본,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태평양 도서국가 및 남미권
말레이시아(73년 수교, 2021년 단교)
요르단(62년 수교, 2018년 단교)
이라크(68년 수교, 80년 단교)
우크라이나(92년 수교, 2022년 단교)
* 프랑스 :파리주재 조선대표부 허용
* 대만, 코소보 : 한국, 조선과 동시 미수교

 
 
세계화와 세계시민, 디지털 전환과 지구적 이동, 코로나 등 전염병 대유행과 기후온난화의 시대에 ‘체제와 민족’에 대한 오래된 생각들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  가역성(변덕) 대 불가역성(미덕) >  ... 덕성의 문제

구분민족 내부의 특수한 관계 국가 대 국가
호칭 남(조선) 대 북(한)대한민국 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구통일부 대 통일전선부외교부 대 외무성
특징특수한 기구 : 폐지 가능보편적 기구 : 폐지 불가
효력 정권에 따라 변동 및 임의적 번복 용이 : 변덕국제법적 효력에 따라 정권에 따른 번복 곤란 : 미덕
경계
명칭
역외(域外) : 휴전선(내전적 성격)국외(國外) : 국경선

 
 

 
남북관계의 재설정 및 한반도 국가의 재구성에 관한 논의 필요
 
 
 

( 지난해 민주평통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와 같이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현상유지에 대한 지지는 7.9%에 불과한 반면에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한 '두 개의 국가'에 대한 선호는 50%를 넘었다. 또한 통일단일국가에 대한 선호는 30%가 되지 않았다. 이는 국민들이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통일 필요성 73.4%), 기존의 통일방식을 비현실적으로 본다는 점과 서로 자기중심적으로 통일하려다가 도리어 파국을 맞이할 것(한국전쟁)을 우려한다는 반증이다. 그동안 북이 주장했던 1국 2체제(연방제)에 대한 선호도 10%를 넘지 못했다. 이 역시 양측의 합의가 이뤄지기 어렵고 설혹 일방의 양보가 있더라도 제도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란 불신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결론적으로 국민들은 두 개의 코리아가 불가피하지만, 지금 상태가 아닌 남북이 국가 대 국가로서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기를 바란다고 해석된다.)

 
 

한국의 대응에 따라서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는 고정불변의 관계가 아니라 작금의 적대 관계에서 비적대적 관계로, 비적대적 관계에서 선린우호 관계로, 선린우호 관계에서 동반자 관계로, 더 나아가 연합 및 동맹 관계로도 발전할 수 있다는 함의가 있다.
 
한국과 베트남은 적대관계(베트남전쟁)에서 비적대적 관계(탈냉전 및 국교수립), 선린우호 관계(1998년 김대중대통령 베트남방문), 동반자 관계(윤석열정부)로까지 발전한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몽골이나 최근 한국 방산의 주요 수입국으로 부상한 폴란드도 비슷한 범주에 속한다.
 
반면에 한국 대통령 네 명(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해서 세 명이 방북했지만, 남북관계는 민족 내부의 특수한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도리어 외교적 관계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더욱이 미중갈등과 러-우크라이나전쟁 및 대만문제 등으로 신냉전 국면이 조성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북방 3각동맹(조중러)과 남방 3각동맹(한미일)의 지정학적 대결구도가 마치 한국전쟁 시기로 리셋(reset)되는 것처럼 보인다. 해커 등 해외 전문가들이 정색하고 경고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한국은 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와 적대적 이데올로기로 인해 양극화됐다고 하더라도,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 대해 ‘민족반역’이란 식으로 손쉽게 일축하고 넘어가면서 조선(DPRK)의 중대한 일대 변화를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롭게 접근하는 것조차 백안시해선 안될 일이다.
 
내년이면 광복 80주년이다. 그러나 80년이 지나도록 남과 북의 통일지상주의는 스스로의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방편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지만, 그것은 동상이몽이었다. 그럼에도 대국민 통일사기극은 100년을 채울 기세다. 조선의 중대 변화를 계기로 한국에서도 '한반도 국가의 재구성'에 관한 허심탄회한 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