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Twin Koreas

문 대통령 ‘체제경쟁 무의미’ 발언의 두 가지 맥락

twinkoreas studycamp 2021. 10. 6. 14:02

 

 

쿠바 이주 100주년을 맞이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제15회 세계 한인의 날 기념사에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한반도 국가의 미래에 대해서 몇 가지 의미 있는 진술을 하였다.

 

멕시코로 이주했던 코리아 이민자들은 멕시코 혁명이 발생하자 쿠바로 다시 이주했다.  사진은 쿠바 마딴사스 엘 볼로 농장에 설립된 민성국어학교(국사편찬위원회)

 

문 대통령은 전세계의 750만 재외동포에 대한 모국의 관심과 보호의지를 강조하였다. 정부는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을 제정하여 재외국민보호위원회를 설치하고,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을 영사실로 승격시켰다. 또한 코로나사태에 대응하여 122개국 62천여명의 재외국민을 귀국시켰고, 46개국 22천여명의 재외국민을 거주국으로 복귀시켰다.

 

대한민국의 위상에 대해서는 세계 10대 경제강국, 유엔무역개발회의(운크타드)의 선진국 격상(B그룹), UN 세계지식재산기구의 글로벌 혁신지수 아시아 1위 및 세계 5, EU 글로벌 경쟁국 혁신지수 평가 1, 블룸버그 혁신지수 세계 1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서 한반도 국가의 현상태에 대한 견해를 피력했다. “우리는 아직 분단을 넘어서지 못했다. 재외동포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남북으로 나뉘어진 두 개의 코리아는 안타까운 현실일 것이다.”

 

그러면서 현상태에서 어떤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우리는 대립할 이유가 없다. 체제경쟁이나 국력의 비교는 이미 오래전에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는 함께 번영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통일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과 북이 사이좋게 협력하며 잘 지낼 수 있다.”

 

이 대목은 두 가지 맥락에서 바라 볼 수 있다. 하나는 한국이 조선(DPRK)보다 월등히 우월해졌기 때문에 체제경쟁이 끝났고, 양측의 국력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므로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라는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서로 대립을 지양하고 번영을 추구하자는 제안이다.

 

여기서 통일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라는 대목이 미묘한 뉘앙스를 주고 있다. 기존의 잣대로는 통일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통일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전제로 간주할 수 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다음 단락에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동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남과 북을 넘어 하나의 코리아(One Korea)’가 갖는 국제적인 힘, 항구적 평화를 통한 더 큰 번영의 가능성을 동포들께서 널리 알려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통일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는 짧은 말 속에는 쌍방의 동상이몽(북한 흡수통일 vs 남조선 해방)의 지정학적 불능성(geopolitical impotence), 체제의 이질성, 연방제 혹은 국가연합에 대한 희원적 사고(wishful thinking)와 부작동(dysfunction) 우려 사이의 커다란 괴리, 이로 인한 내·외적 합의 가능성의 희박성,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통일이 실현된 이후에 도래할 불확실성에 대한 한국()의 현실적·이성적 고뇌가 함축되어 있다.

 

통일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는 대목에 새롭게 접근하자면 통일의 염원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통일까지 장구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라는 의미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두 개의 코리아라는 현실을 긍정적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전환적 사고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수동적이고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최근 김여정 국무위원이 언급한 한 개 국가의 대통령이란 표현도 비슷한 맥락이다. 상대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있더라도 한국을 하나의 국가로 간주하고 대통령이란 공식 명칭을 거론한 것에서 비난 속에 담긴 인식의 전환을 읽을 수 있다.

 

쌍방은 장구한 시간과 불확실성의 바다에 놓여진 통일이라는 한 배를 기다리는 동안에 북핵과 체제대립을 비롯한 두 개의 코리아의 불안한 현상유지(status quo minus)에서 벗어나려는 보다 획기적이고 보다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통일이 아니면서도 통일을 통해서 얻으려고 했던 효과, 핵심적으로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의 제도화를 실현할 수 있는 현상유지 플러스(status quo plus)’에 도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남과 북이 영세무장중립에 동의한다면 단기적으로 북핵의 동결 및 중립의 전기가 되고 조선의 경제적 이행(Economic Transition)의 지평이 열릴 수 있다. 또한 궁극적으로 한반도 및 동북아의 비핵지대(NWFZ)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중립화를 평화통일이라는 국가이상의 하위적·수단적 개념으로 바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한국과 조선의 영세무장중립을 한반도 국가의 새로운 존재양식(New Being Mode of Korean States)으로 승인하는 방안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가 필요하다.”(트윈 코리아, 352)

 

 

쿠바이민을 소재로 한 영화 '애니깽'

 

 

< 15회 세계 한인의 날 기념사 > (전문)

 

존경하는 750만 재외동포 여러분, 세계 각국의 한인회장 여러분

15회 세계 한인의 날기념식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우리는 만날수록 힘이 나는 민족입니다. 지난해 코로나 때문에 세계한인의 날 기념식을 치르지 못한 채 서로의 자리에서 그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먼 길을 와 주신 동포 여러분께 뜨거운 환영 인사를 드립니다. 대면으로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 속에서 온라인으로 더욱 진한 동포애를 보내 주고 계신 재외동포 여러분께도 안부 인사를 전합니다.

 

우리 겨레는 세계 어디서든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별입니다. 서로 믿고 의지하고 그리워하며 희망과 회복의 힘을 키워왔습니다. 코로나의 대유행 속에서도 하나가 되어 더 크게 빛난 재외동포와 한인회장단, 유공자 여러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동포 여러분

 

오늘 기념식에 쿠바 이주 100주년을 맞아 차세대 동포 임대한 님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임대한 님의 증조부 임천택 선생은 쿠바 한인 1세이자 독립운동가였고, 후손들이 그 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재외동포 1세대 선조들은 간도와 연해주, 중앙아시아, 하와이, 멕시코, 쿠바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당당한 도전과 성취의 역사를 썼습니다.

 

동포들은 고된 타향생활 속에서도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을 후원했습니다. ‘힘이 있으면 힘을, 돈이 있으면 돈을 내자는 정신으로 모금 운동을 벌였습니다. 온 민족이 함께 힘을 모아 마침내 독립을 이뤄낸 역사적 경험은, 해방 후에도 대한민국이 전쟁과 가난, 독재와 경제위기를 이겨내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앞에서 우리의 저력은 다시 한번 빛났습니다. 동포들은 모국에 방역물품과 성금을 보내 주셨습니다. 또한 거주국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비롯한 취약계층에게 마스크 등 방역필수품을 나눠드렸고, 어려운 동포와 이웃을 도왔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격언을 실천해온 동포 여러분 덕분에 대한민국의 위상도 높아졌습니다. 각국 정부와의 협력도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뛰어난 민간외교관 역할을 해 오신 재외동포 한 분 한 분이 참으로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조국은 여러분이 어렵고 힘들 때, 언제나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조국에 자부심을 가지실 수 있도록 정부는 더욱 세심하게 노력하겠습니다. 정부는 해외 체류 국민과 재외동포의 보호와 지원을 주요 국정과제로 선정해 실천해 왔습니다.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을 영사실로 승격시키고, 해외 사건사고 전담 인력도 대폭 확충했습니다. 2018년 문을 연 해외안전지킴센터는 36524시간 재외국민의 안전을 위해 실시간 운영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무엇보다 코로나 확산 속에서 동포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인회와 협력하고, 현지 정부와 공조하여 막힌 하늘길을 열었습니다. 지금까지 122개국 62200명의 재외국민을 안전하게 귀국시켰고, 46개국 22500명의 재외국민을 거주국으로 안전하게 복귀시켰습니다.

 

올해 1월부터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이 본격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달부터 재외국민보호위원회가 출범합니다. 정부 열세 개 부처가 재외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더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 역량을 모을 것입니다.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도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에 대한 국가의 책무 역시 잊지 않겠습니다. 올해 1월 시행된 사할린동포 특별법에 따라 올해 말까지 350명의 동포들이 영주귀국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주귀국을 원하는 사할린 동포들을 순차적으로 모두 고국으로 모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동포 여러분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 주요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동포들에 대한 칭찬을 듣습니다. 한인사회가 모든 분야에서 큰 성취를 이루고, 그 나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고마워합니다. 동포사회의 차세대들은 선대들의 뒤를 이어 거주국의 당당한 리더이자 모국의 성장파트너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를 무대로 성공신화를 써온 한상들은 국내기업의 수출과 해외 진출에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세계한인정치인협의회를 비롯한 재외동포 정치인들은 거주국은 물론 전 세계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리더로 활약하며, 한반도 평화의 굳건한 가교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 동포 네 분이 미국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지난 9월 한국계 최초의 독일 연방 하원의원이 탄생했습니다. 동포사회뿐 아니라 겨레 모두의 긍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동포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유엔무역개발회의는 만장일치로 대한민국을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세계적으로 사상 최초의 일입니다. 지난 9월에는 UN 세계지식재산기구의 글로벌 혁신지수 평가에서 세계 5, 아시아 1위를 차지했습니다. EU의 글로벌 경쟁국 혁신지수 평가 1위와 블룸버그 혁신지수 세계 1위에 이어, ‘혁신 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재확인한 쾌거입니다.

 

무엇보다 문화·예술·스포츠를 통해 만든 대한민국의 소프트 파워가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나라를 뛰어넘는 공감과 연대의 힘으로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한류문화의 물꼬를 튼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재외동포분들입니다. 현지에서 축적한 공감과 유대의 기반 위에서 K-팝을 비롯한 K-드라마와 영화, 게임, 웹툰, K-뷰티와 푸드까지 한류의 물길을 끊임없이 이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알파벳 ‘K’는 이제 대한민국의 품격과 소프트 파워를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었고, ‘메이드 인 코리아는 세계인의 신뢰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더욱 반가운 것은 우리 동포들의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이 함께 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어와 한민족 역사를 배우고, 민족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 재외동포 사회에서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 역시 우리 미래세대들이 한민족의 핏줄을 잊지 않으면서, 그 나라와 지역 사회의 당당한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것입니다.

 

한글학교와 한국교육원 등 재외 교육기관의 신설과 지원을 더욱 확대하겠습니다. 모국 초청 연수와 장학사업도 확대하고 있습니다. 750만 재외동포의 역량 결집과 차세대 교육의 거점이 될 재외동포 교육문화센터의 건립도 차질없이 추진할 것입니다. 아울러, 동포사회의 차세대 인재들을 대한민국의 국가 인재로 유치하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존경하는 재외동포 여러분, 세계 각국의 한인회장 여러분

 

우리 민족은 수많은 위기와 역경을 힘을 모아 헤쳐 왔습니다. 포용과 상생의 정신을 실천하며, 국경을 넘어 연대와 협력의 힘을 발휘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분단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재외동포들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남북으로 나뉘어진 두 개의 코리아는 안타까운 현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립할 이유가 없습니다. 체제 경쟁이나 국력의 비교는 이미 오래전에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이제는 함께 번영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통일에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과 북이 사이좋게 협력하며 잘 지낼 수 있습니다.

 

한민족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동포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남과 북을 넘어 하나의 코리아가 갖는 국제적인 힘, 항구적 평화를 통한 더 큰 번영의 가능성을 동포들께서 널리 알려 주시길 바랍니다.

 

8천만 남북 겨레와 750만 재외동포 모두의 미래세대들이 한반도와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공감하고 연대하는 꿈을 꿉니다. 그 길에 750만 재외동포 여러분이 함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세계 어디에 가도 동포 여러분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해외순방 때마다 응원하며 힘을 주시는 동포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조국과 함께해 오신 750만 동포들께 깊은 경의를 표하며, 동포 여러분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대한민국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