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전제정치(despotism) 체크리스트

twinkoreas studycamp 2025. 2. 7. 13:47

 
유시민 전 장관이 김부겸 전 총리에게 독서를 권하자 김 전 총리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번역서를 들고 “제대로 읽어 보겠다.”고 응수했다. 이 책은 유 전 장관도 일독을 권했던 적이 있다.
 
최근 유 전 장관은 김동연 경기지사에게 “이재명 대표에게 붙어서 도지사가 된 사람이 배은망덕하다.”고 비방하고, 김경수 전 경남지사에게 “지도자 행세하지 말라.”고 폄하했다. 또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다른 직업을 모색하라”고 조롱했고, 김부겸 전 총리에게 “자신의 역량을 넘어서는 자리를 이미 했다. 책과 유튜브를 많이 보라”고 훈계했다. 이런 비방, 폄하, 조롱, 훈계를 받은 당사자들에게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언어의 조합이다.
 
 

김부겸 전 총리

 
 
 
유 전 장관은 책을 많이 쓰는 편이기에 책도 많이 읽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권한 책 중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제대로 읽었는지 의문이다. 김 전 총리가 이 책을 들고 ‘제대로 읽어 보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 책은 정당정치의 여과기능(필터링)이 부실해지고 마비될 때 민주적인 정당이 포퓰리즘 아웃사이더를 전제주의 지도자로 키워 스스로 파멸하는 역사적 교훈을 실증적으로 검토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최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두 번이나 당선된 것도 미국 공화당의 여과기능이 마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자가 같은 내용의 책을 읽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관점의 차이 혹은 이해관계의 상충에서 기인한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국내 실정에 비추어 여당 지지층은 이 책을 읽고 정당의 여과기능의 실패로 이재명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고, 야당 지지층은 이 책을 잃고 정당의 여과기능의 실패로 윤석열을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중도적·다원주의적 관점의 독자라면 이 책을 잃고 정당의 여과기능의 실패로 윤석열과 이재명을 모두 떠올릴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유시민과 김부겸은 이 책 속에 담긴 내용을 놓고 서로 다른 생각을 품을 것이다.
 
 
전제주의(專制主義) 행동에 관한 경고신호
 
일찍이 린츠(Juan Linz)는 <민주주의 정권의 몰락(The breakdown of democratic regimes)>에서 반민주적인 정치인을 식별하는 기준을 세우려고 했다. 최근에는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지블렛(Daniel Ziblatt)이 린츠의 문제의식에 착안하여 잠재적인 독재자를 감별하는 ‘전제주의 행동’에 관한 경고신호를 체계화했다(Levitsky et al, How Democracies Die).
 




 
 
전제주의(despotism)는 민주주의·입헌주의·공화정의 반대되는 개념이다. 1인 혹은 소수의 절대 권력이 지배하는 독재정치로서 역사적으로 광범하게 나타났다.
 
고대 유럽의 참주정치(tyranny), 중세의 전제군주 및 귀족정치(autocracy), 중국의 천자와 환관정치, 러시아의 차리즘(tsarism), 현대의 파시즘․나치즘, 스탈린 등의 전체주의, 과거 한국과 남미의 군사독재 등은 모두 전제주의 및 전제정치에 해당한다.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지블렛(Daniel Ziblatt)는 선거로 집권한 정치인이 사실상 선거를 철폐하고 독재체제를 구축하여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현상이 세계적으로 빈발하는 이유를 ‘정당의 여과작용 실패’에서 찾았다. 쇠퇴하는 기성 정치세력이 대중적 인기를 모으는 잠재적 독재자와 동맹을 맺고, 선거승리로 가는 문을 열어주고 장차 전제정치가 득세하게 된다는 것이다.
 
레비츠키와 지블렛은 민주적인 정당이 잠재적 독재자를 키워서 스스로 파멸을 초래하는 사례를 무솔리니·히틀러·차베스의 정치적 성장과정을 통해서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들은 또한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에서 온건한 보수우파가 극우세력의 발흥(rising)을 차단하기 위하여 중도좌파와 연대하고 독재의 출현을 예방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공저자는 결론적으로 선거를 통한 합법적인 독재자를 막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최초로 관계를 맺은 정당의 내부에서 걸러내는 것이 중요하고, 이차적으로 해당 정당이 타 정당과 연대해서 독재자의 최종적 승리를 차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공저자는 잠재적 독재자를 식별하는 ‘전제주의 행동’의 첫 번째 신호를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혹은 준수 의지의 미흡으로 규정하였다.
 
 
전제주의 행동의 체크리스트(Check List) : 네 가지 신호와 포퓰리즘 아웃사이더
 
첫번째 신호 :  헌법을 부정하거나 위반하려는 의도가 있거나, 선거제도 철폐를 비롯해서 헌법 위반, 정부기관 폐쇄, 시민 기본권 및 정치적 권리의 제한을 주장하거나, 권력장악을 위해 군사쿠데타와 폭동과 같은 헌법을 초월한 방법을 시도 혹은 지지하거나, 선거불복과 같이 선거제도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 신호 : 정치적 경쟁자에 대한 부정이다. 구체적으로 경쟁자를 전복세력이나 헌법질서 파괴자로 비난하거나, 경쟁자가 국가안보나 국민의 삶을 위협한다고 주장하거나, 상대 정당을 근거 없이 범죄집단으로 몰아세우면서 법률위반(혹은 가능성)을 문제 삼아서 정치무대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경쟁자를 근거 없이 은밀한 외국 스파이로 주장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신호 : 폭력의 조장 혹은 묵인이다. 무장단체․준군사조직․군대․유격대 혹은 폭력과 연관된 조직과 연관성이 있거나, 개인적으로 혹은 정당을 통해서 정적에 대해 폭력행사를 지원 혹은 조장하거나, 폭력에 대한 비난이나 처벌을 부인함으로써 지지자들의 폭력행위를 암묵적으로 동조하거나, 과거 혹은 해외의 심각한 정치폭력을 칭찬하거나 비난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신호 : 언론 및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이다. 명예훼손과 비방 및 집회를 금지하거나, 정부 및 정치조직을 비난하는 것에 대한 시민의 자유권을 억압하는 법률이나 정책을 지지하거나, 상대당과 시민단체 및 언론에 법적 대응으로 협박하거나, 과거 혹은 해외에 나타난 정부의 억압 사례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공저자는 네 가지 경고신호 중에서 하나라도 충족하는 정치인이라면 전제주의 리트머스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타난 것으로 간주하고 '요주의 인물'로 규정하였다. 국내 정치에서 누가 해당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공저자는 또한 역사적으로 잠재적 독재자의 유형은 차베스·트럼프와 같이 ‘포퓰리즘 아웃사이더’가 많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국내 정치에서 누가 해당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역시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