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

북핵협상 중간단계(interim steps) 불가피 : 핵동결, 군비통제, 군축회담

twinkoreas studycamp 2024. 3. 14. 10:52

폴 러캐머라(Paul LaCamera) 한미연합군사령관은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인터뷰에서 대북 전략의 초점이 조선의 '핵개발 저지'에서 '핵사용 저지'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폴 러캐머라

 
 
한미핵협의그룹(NCG)에 참여하는 비핀 나랑(Vipin Narang) 미 국방부 우주정책 수석부차관보는 자신의 저서에서 조선이 중국의 지원을 받지만 중국의 압력으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을 희박하다고 보고, 오히려 핵 생존력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유사시에 조선의 선제적인 핵발사 압력이 급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Vipin Narang, Nuclear Strategy in Modern Era).
 

비핀 나랑


 
 
비대칭적 억제관계에서 ‘강 대 강’에 내포된 위험
 

애덤 마운트

 
애덤 마운트(Adam Mount) 미과학자협회(FAS) 연구원은 3월 4일 미국평화연구소(USIP)에 기고한 'Increasing Stability in a Deterrence Relationship with North Korea'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현실적 방안으로 군비통제(arms control)를 역설했다.
 
마운트는 과거 대칭적 억제관계였던 미·소와 달리 조선과 미국은 비대칭적 억제관계라고 강조하고, 이러한 차이를 간과한 군사력 증강 위주의 접근법은 미·소의 결말과 다른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극도로 비대칭적 억제관계(extremely asymmetric deterrence relationship)일수록 태생적으로 안정성이 낮다는 점에서 한·미의 군사적 강화로 조선이 취약성을 인지할수록 우발적인 선제 핵공격의 가능성은 오히려 커진다고 강조했다. 즉 대칭적 억제관계였던 미·소의 군비경쟁은 소연방의 선제 핵공격 의도에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비대칭적 억제관계의 조선은 다르기 때문에 최근 한미동맹의 억제정책은 안정이 아니라 불안정을 증진한다는 것이다.
 
마운트는 조선이 중진국 수준 핵보유국의 일반적 경로를 벗어나 필수적 억제능력 이상의 광범한 무기체계 확장에 나서고 있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기현상의 원인을 한미동맹의 정찰 및 타격 구상을 교란하려는 의도이거나, 일부 시스템이 기술적 결함이나 연합 사이버 공격 등으로 위태롭게 되는 것에 대비하거나, 대내외적으로 고도화된 핵무장국가의 면모를 과시하려는 열망의 산물일 것으로 추정했다.
 
억제란 서로 자제하는 동안에 안보의 여유를 보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면서 충돌로 비약할 만한 동기를 진정시킬 수 있을 때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마운트는 최근 한미동맹이 억제의 요구조건을 점차 안정의 증진보다 저하로 오독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조선의 동향과 맞물려 한·미도 필수적인 억제능력 이상으로 태세를 강화함으로써 한반도 안정에 역행하는 역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러한 억제방식은 지속적으로 깨지고 부러지기 쉬우며 주기적 위기를 반복하면서 궁극적 목표인 비핵화와도 거리가 멀어진다”고 주장했다.
 
냉전시기에 미·소는 군비통제를 통해서 서로 중요한 정보들을 취합하고 상대의 능력을 파악하여 불안정을 초래할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을 자제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군비통제는 비현실적인 목표인 조선의 급격한 군축(Disaarmament))이 아니라 일련의 협상과정에서 평화롭고 일관되게 쌍방의 무기를 제한함으로써 한반도의 안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는 한미동맹이 예상되는 북의 공격에 대해 적정선을 넘어 양적 증강에 골몰하는 것보다 위기의 시작과 비약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무기체계에 대해 질적으로 새로운 과제를 부여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군비통제가 경제제재 완화 및 금전적 반대급부가 없이도 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마운트는 결론적으로 한반도의 핵위기를 감소시키려면 안정유지 전략을 폄하하지 말고 유지해야 하며, 비대칭적 억제관계일수록 군비통제가 중요하고 어려운 난제이지만 전술핵에 초점을 둔 과하지 않은 계획(modest initiatives)으로 안정적 평화를 지탱하면서 장차 원대한 목표(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길이 최선이라고 주장했다.
 
 
중간단계 :  제재완화 및 핵동결, 군비통제 및 군축회담
 

미라 랩-후퍼

 
3월 4일 미라 랩-후퍼(Mira Rapp-Hooper)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 선임 국장은 비핵화로 가는 장기적 과정에서 ‘중간단계(interim steps)’가 있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다음 날 정 박(Jung H. Pak)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도 핵동결(nuclear weapons freeze)에 관한 질의에 대해 비핵화로 향하는 과정에서 ‘중간단계’는 당연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북전략이 크게 선회하는 조짐이 아니라 비핵화를 위한 여러 단계의 협상을 지칭한 것으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대화의 문턱을 낮추려는 실무선의 립서비스로 수뇌부의 힘이 실리지 않은 사견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드러냈다.
 

정 박

 
 
하지만 박 부차관보는 협상해야 할 무기가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실제로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러한 관점은 올해 미국 대선을 거치면서 바이든 혹은 트럼프의 새로운 행정부에서 대북 협상전략의 우선순위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비커밍 김정은(Becoming Kim Jong Un)'의 저자이기도 한 박 차관보는 최근 러시아의 공조를 조선의 우선적 목표인 체제안보를 위한 전략적 시프트로 이해하고, 조선이 한·미와의 협상에서 이런 목표를 실현하기 어렵다고 본다는 점에서 비핵화를 실현할 가능성이 당장은 매우 희박하다고 전망했다.
 
 
통일부 장관, “핵을 용인하는 군축회담 어렵다.”
 
중간단계에 관한 논의에 대해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북핵을 용인하는 군축회담은 받아들이기 굉장히 어렵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북핵을 용인하면 핵 도미노를 초래하고 핵확산금지 규범이 무너져 국제정세를 더 불안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반응은 미 행정부 담당자들의 중간단계 언급을 군축회담으로 이해한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군축회담은 기존의 무기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개발 및 증강을 제한하는 동결 및 통제에 대한 합의를 넘어서는 고도의 협상단계이기 때문에 중간단계 논의에 대한 적확한 반박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최근 상황에서 군축을 반대한다는 것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물을 마시는 격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입장과 별개로 차기 미 행정부에서 중간단계 및 핵동결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의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북핵동결과 대북제재 완화를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는 트럼프의 재임 중에도 핵동결과 제재완화에 관한 구상들이 여러 차례 거론됐다는 점과 트럼프 노선이 중국과의 경쟁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이 보도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례적으로 빠르게 가짜 뉴스라고 반박했다. 폴리티코의 오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북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동결협상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트럼프 캠프의 선제적 대응이라는 시각도 있다. 또한 트럼프도 비핵화를 포기한 적이 없고, 다만 장기적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바이든과 트럼프의 근본적 차이는 없다.
 
 
핵동결(nuclear freeze)의 관점 및 논의
 

리처드 하스

 
하스(Richard Haass) 전 미 외교협회장은 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은 조선의 특이한 움직임이 아니라 미 행정부의 전쟁위협으로 고조되었고, 또한 미 행정부는 그런 위협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비핵화의 키메라’(chimera of denuclearization)에 대한 만족에 안주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비핵화의 키메라’는 핵확산금지라는 얼굴에 대북적대정책·전략적 인내·현상유지·세력균형·최적 긴장·군산복합체·대중견제·미중갈등 등이 짬뽕이 된 ‘정체불명의 비결정 상태’를 풍자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공격적 현실주의자 월트(Stephen M. Walt)는 세계에 핵억지론(nuclear deterrance theory)이 정립되면서 각국은 어떤 종류의 핵전쟁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것을 현대 국제정치의 중대한 변화로 꼽았다.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를 비롯한 공격적 현실주의자들은 완전하고 영구적인 비핵화를 실현성이 희박한 목표로 간주하고, 차선책으로 핵과 미사일의 능력을 동결하면서 신뢰와 협력을 증진하는 제한적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2018년 토비(William H. Tobey) 미 국가핵안전국(NNSA) 핵확산담당 부국장은 핵물질 생산이야말로 ‘위협의 추동체’라고 강조하면서 북핵문제에서 핵물질 생산의 동결이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한국과 미국은 당장에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한 완전한 비핵화만 주장하면서 핵물질 생산을 사실상 방치하여 북핵의 고도화(실험 및 발사, 경량화, 다량생산)를 초래한다는 비판과 같은 맥락이다.
 

수전 라이스

 
오바마 행정부의 라이스(Susan E. Rice)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핵동결에서 출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견해를 밝혔고, 젠킨스(Bonnie Jenkins) 전 국무부 위협감소 프로그램 조정관도 일단 핵동결에 초점을 맞추고 핵물질 생산중단 및 동결, 이에 대한 검증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보니 젠킨스

 
2019년 한미일 등 주요 국가 연구자 14명이 참여했던 미과학자협회의 ‘대북정책 연구그룹’의 보고에서도 단기에 조선의 핵무기 포기는 비현실적이므로 군비통제와 신뢰구축을 통해 위협을 줄이고 안정을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해에 이뤄진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깜짝회동 직후에 트럼프 행정부가 현상유지의 관점에서 핵동결을 고려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Michael Crowley and David E. Sanger, In New Talks, U.S. May Settle for a Nuclear Freeze by North Korea, The New York Times, 2019.6.30.). 요지는 미 행정부가 일단 핵동결을 통해 실질적인 사찰과 핵물질 생산금지의 효과를 거두는 새로운 접근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탈북민 이현서가 쓴 ‘7개 이름을 가진 소녀’를 통해 ‘비욘드 유토피아’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수 미 테리(Sue Mi Terry) 전 윌슨센터 아시아 국장도 조선의 민생분야와 관련된 제한적 제재완화와 영변 핵시설 등에 대한 추가적 양보를 받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북핵협상 대표였던 비건(Stephen E. Biegun)이 “정확한 것은 새롭지 않고, 새로운 것은 정확하지 않다”(What is accurate is not new, and what is new is not accurate)고 토로했던 것처럼 비핵화에 대한 쌍방의 정의가 다른 상태에서 하노이 노딜은 예정된 것이었다, 그에 비하면 핵동결은 그나마 정의라도 명확하다.
 
 
50년~100년 내다보는 세대초월적 과제
 
조선이 핵동결에 동의할 가능성은 있지만, 조건에 따라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영국의 홍콩 조차(concession)의 반환은 100년이 걸렸고, 한국전력의 해외 석탄화력발전사업 만료시점은 2050년이라고 한다.
 
전력회사의 주력분야를 바꾸는데 50년이 걸리는데, 하나의 체제가 필사적으로 개발한 생존무기를 폐기하는데 적어도 50년~100년은 상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즉 장기적 관점에서 핵동결을 추진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상호 인정과 신뢰의 축적 속에서 새로운 환경 및 질서를 통해 실현 가능한 목표로 전환시키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핵동결은 군비통제 및 군축회담과 연결될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국가의 중립노선 혹은 중립화와 연계하는 상상력을 요구한다.
 
군비통제, 군축, 핵동결 및 중립노선으로 가는 경로는 기복과 굴곡이 불가피하겠지만, 그 과정 자체가 평화와 공존의 가치에 부합하는 장기국면이 될 것이란 점이 실은 더 중요하다.
 
러캐머라 사령관의 ‘핵사용 저지’ 발언은 최근 미국의 40대~50대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중간단계(interim steps)’와 동전의 양면이다. 핵 능력의 증진을 막을 수 없는 조건에서 억제전략의 무게중심이 핵사용 가능성을 막는 것으로 이동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지만,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간단계 및 핵동결의 설득력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의 수뇌부는 이러한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30~40년은 더 살아가야 하는 세대와 건강수명(활동연령)이 길어야 10년 정도 남은 세대가 똑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최근 미국의 소장파 학자들과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의 정책담당자들이 새로운 길을 주창하는 양상은 미래의 가능성을 두드리며 전진해 온 인류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현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