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정치질서와 정치쇠퇴'

twinkoreas studycamp 2022. 3. 28. 17:01

정치적 쇠퇴는 현직에 있는 정치주역들이 정치시스템 안에 견고하게 담을 쌓고 제도적 변화의 가능성을 봉쇄할 때 생긴다.”(Political decay occurs when incumbent political actors entrench themselves within a political system and block possibilities for institutional change.)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헌팅턴의 정치쇠퇴 이론의 연속선상에서 ‘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2015)를 집필하면서, 정치발전은 인간의 사회경제적 발전의 광범한 현상의 한 측면이므로 정치제도의 변화라는 것도 경제성장, 사회적 이동, 정의와 정통성에 관한 이념의 힘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 정치는 21세기 이후 모두 다섯 차례의 대선(2002, 2007, 2012, 2017, 2022)을 거치고도 국민들에게 속 시원한 진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이름표만 바꿔 단 정치주역들이 정치발전의 가능성을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보수논객 후쿠야마의 문제의식을 빌려 보면, 현대국가의 재가산화와 제도화된 부패 및 정치양극화로 인한 유능한 정부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현시대 한국정치의 고질적 문제이기도 하다. 

 

 

 

현대국가의 쇠퇴 : 재가산화(re-patrimonialism)

 

후쿠야마가 말하는 정치발전은 현대국가, 법치, 민주적 책임성이라는 세 가지 핵심요소로 이뤄진 하나의 셋트(set)로 이뤄진 정치제도의 발전을 의미한다.

 

먼저 그는 국가와 관련해서 미국의 재가산화 경향을 비판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 정부가 가산제(patrimonialism)¹에 기초한 착취적 성격을 가졌지만, 몇몇 선도적인 국가를 중심으로 점차 가산제에서 탈피했다.

 

헌팅턴(Samuel Huntington)에 따르면, 정치제도는 좀더 복잡하고 적응적이며 자율적이고 일관됨에 따라 발전한다. 그러나 정치제도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실패하면 정치적 쇠퇴가 시작된다.

 

후쿠야마는 미국과 같은 현대국가에서 중산계급이 민주주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중하지만, 새로운 산업의 발전과 세계화 등으로 인해서 중산계급이 줄어들면서 제도적 경직성과 재가산화(repatrimonialism)²가 심화되고, 궁극적으로 정치적 쇠퇴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이 신가산제(Neo-patrimonialism)로 병들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을 미국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느 정도 보편적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공공의 목적에 복무하기 위해 제도화된 정부기관들이 강력한 사적 이익에 의해 포획되는 경향이 나타나면서 이들을 통제해야 할 국민들은 곤란과 무력감을 겪었다.

 

다음은 법치(rule of law)의 문제다. 만약 통치자(최고지도자 및 집권당)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법을 바꿀 수 있다면 법치는 존재할 수 없다. 비록 그들의 법이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단일하게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한국에서도 법치가 법에 의한 통치(rule by law)로 변질되면서, 법의 집행이 권력자를 대변하면서 정작 통치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내로남불(我是他非)’이 만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책임성이다. 오늘날 민주적 책임성이란 전형적으로(일차적으로) 절차적 책임성으로 이해된다. 즉 주기적인 자유롭고 공정한 다당제 선거로 모든 시민이 자신의 통치자(최고지도자 및 집권당)를 선택하고 징계할 수 있어야 한다.

 

 

제도적 부패 : 재량-책임=부패

 

후쿠야마는 국가의 실패를 부패의 문제를 연관해서 파악했다. 볼펜슨(James Wolfenson) 전 세계은행 총재는 빈국의 경제발전에서 중요한 장애를 부패암(cancer of corruption)’이라고 명명했다.

 

클리트가드(Robert Klitgaard)부패(Corruption)=재량(Discretion)-책임(Accountability)’라는 정식을 제기했다.

 

경제학자들이 지대추구(rent-seeking)’라고 명명한 것도 사익을 위해 정치시스템을 농락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특권계층에게 선호되는 것은 광범한 국민에게 적용되는 공공재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적합한 것들이다. 이를테면 공직이나 뇌물, 혹은 석방이나 사면과 같은 것들이다.

 

후견시스템은 상호 간에 광범한 호의의 교환을 포함하고 종종 중간매개의 위계를 요구한다. 이러한 체제에서 정치인들은 지지자들의 투표에 개별적 이익만을 주고 받을 뿐이다. 개별적 이익은 공공부문에서의 일자리, 금전적 보상, 정치적 호의, 지지자들에게 제공되는 학교나 병원과 같은 공공재를 포함한다.

 

이처럼 지대의 창출 및 착취와 후견제(clientalism)는 합법적 외양을 가진 제도적 부패라고 할 수 있다유럽에서는 20세기를 거치면서 영국 노동당, 독일 사민당과 같은 실용주의적 정당들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병폐를 감소시키면서 전반적으로 불평등이 줄어들었다.

 

러시아와 중국의 초기 혁명적 코뮤니스트는 후견제와 가산제에서 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들은 스스로 엄격하게 단련되었고, 권력을 장악하기 전까지 별로 분배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권력장악 이후 일정한 경제수준에 도달하면서 그들의 2대, 3대는 노멘클라투스와 태자당의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정치의 쇠퇴 : 정치양극화와 비토크라시

 

후쿠야마는 미국의 정치적 쇠퇴는 지배적 양당(즉 극단적 양당체제)와 연관된 것으로 파악했다.

 

미국 정치시스템은 견제와 균형의 전통적 시스템이 경직되면서 시간이 갈수록 쇠퇴했다. 날카로운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서 분권형 시스템은 점차 다수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고 이익집단과 활동가 조직의 관점에 과도한 대표성을 부여하게 됐다.

 

피오리나(Morris Fiorina)의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정치주도세력이 일반적인 미국인보다 훨씬 더 양극화됐다. 낙태, 학교예배, 동성결혼 등에 대한 조사결과에서 공중의 다수가 타협적 지점(compromise position)과 중도적인 방도(middle of the road)를 지지했지만, 미국의 양대 정당은 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극단적 지점(extreme position)을 고수했다.

 

결론적으로 후쿠야마는 현재의 미국 양당체제가 19세기말 이래 그 어느 때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극화되었다(polarized)고 보고, 양당의 정치양극화가 매디슨(James Madison)의 견제와 균형의 정치시스템과 악성결합하게 되면 비토크레시(Vetocracy)를 초래하여 미국 정치가 비결정과 불능으로 귀결된다고 경고했다.

 

 

후발국의 과제 : 유능한 정부와 실행의 규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전후에 독립한 후발 국가들의 과제는 명백하다. 현대국가, 법치, 책임성이 잘 이뤄진 나라를 지향하면서, 무엇보다도 유능한 정부의 유능한 행정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적이다.

 

(Michale Mann)은 국가의 인프라 파워(infrastructure power)를 정통성의 창출, 규칙의 강제, 안전·보건·교육 등 필수 공공재의 보급 등에서 능력과 효율성을 보여주는 국가적 능력 및 힘이라고 했는데, 이런 것들이야말로 유능한 정부의 기본적 구성요소들이다.

 

진정한 의미의 민주적 정치질서는 정부의 권력 오남용을 견제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민이 정부에 바라는 것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대중이 정부에 기대하는 것도 후발 국가의 과제와 마찬가지로 명백하다. 기본적으로 시민의 안전, 재산권의 보호, 유용한 교육의 제공, 공중보건 서비스, 민간경제 활동에 필요한 하부구조의 구축 등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공서비스를 원활하고 충분하게 제공하는 유능한 정부, 유능한 행정에는 개인의 실천윤리처럼 공공정책의 실행규범이 필요하다. 로스테인(Bo Rothstein)불편부당(不偏不黨, impartiality)’을 정부의 질 및 효율적 수행과 긴밀하게 연관된 규범적 특징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 까닭이다.

 

결론적으로 정부의 공공서비스는 공정과 공평의 원리가 작동해야 한다. 후쿠야마는 공공재의 고전적 사례로 깨끗한 공기국가안보를 들었는데, 만약 서로 다른 질의 공기와 안전을 제공하거나 강제한다면 공공재의 위기가 아니라 공화국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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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가산제(patrimonialism)는 권력자의 권한이 공사의 구분이 없는 체제를 말한다.(A form of political organization in which authority is based primarily on the personal power exercised by a ruler, either directly or indirectly. There is no distinction between the public and private domains.) 가산제의 특징은 사병(私兵), 군벌(軍閥)에서 잘 나타난다. 이러한 체제가 하나의 국가 단위를 확장하면 가산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²재가산화(re-patrimonialism)는 현대국가의 외양을 갖춘 다수의 국가와 특히 미국식 모델을 추종한 후발국에서 나타나는 가산제의 귀환이다. 정치와 공공영역에서 광범하게 제도화된 부패가 보장되면서 집행권력을 쥔 다양한 층위의 권력자들이 공과 사의 구분이 모호한 지점에서 국가의 돈이나 공적인 권한을 오남용하여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