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취임 이후 첫 아시아 국가로는 한국을 가장 먼저 방문한 카를로스 알바라도(Carlos Alvarado Quesada)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국정연설에서 자국이 ‘아메리카대륙의 독일이나 한국’으로 불리길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자국이 ‘아메리카대륙의 스위스’로 알려져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제는 아메리카대륙의 한국(Corea del Sur de América)으로 알려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남미에서도 중미에 속하는 소국인 코스타리카는 아메리카대륙에서 사실상 유일한 중립국로서 ‘비무장 영세중립’과 ‘적극적 중립’을 견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시절부터 아리아스 코스타리카 대통령과 교분을 쌓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 코스타리카를 방문했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국의 대통령이 코스타리카를 방문한 적이 없다.
비무장 영세중립과 적극적 중립
현존하는 영세중립국은 유럽의 스위스(1815), 바티칸(1929), 오스트리아(1955)와 중남미의 코스타리카(1983), 중앙아시아의 투르크메니스탄(1995)으로 사실상 5개국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 코스타리카 공화국(Republic of Costa Rica)의 영세중립은 한반도 중립화에 양가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허약한 완충국가의 운명을 비무장 영세중립으로 극복했다는 점에서 외부의 시각에서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비쳐질 수 있는 성과가 실제로 장기간 보존되고 지속된다는 점이다. 둘째, 자국의 중립과 평화를 유지하려는 소극적인 고립노선이 아니라 주변국의 분쟁예방 및 중재에 적극 나서는 적극적 중립노선으로 역내 평화와 세계평화에 관여했다는 점이다.
한반도 중립화 논의에서 코스타리카의 비무장 중립화는 한반도 지정학에 부적합한 모델로 간주되지만, 이 나라의 적극적 중립은 동북아에서 한반도 국가의 전략적 역할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코스타리카는 군대를 폐지하고 안팎의 무장충돌 위기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면서 ‘비무장 영세중립 체제’를 정립하는데 성공했다.
1821년 코스타리카는 스페인의 지배에서 독립했지만 멕시코에 병합되었다가 1948년에 와서야 실질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1948년 대통령 선거에서 정부와 군부가 대립하다가 군부가 실권을 장악했으나, 내전이 6주 동안 지속되면서 2천여명이 숨졌다.
페레르(Jose F. Ferrer) 과도정부 수반은 오초모고협약(Pacto de Ochomogo)으로 내전을 종식하고 군대폐지에 나섰고, 1949년 11월 의회에서 평화헌법을 채택하고 군대를 해산했다.
새로운 평화헌법은 군대를 보유하지 않고 치안과 국경경비를 위한 시민경비대(Civil Guard) 창설을 규정하였다. 또한 중립국 의무에 대해서 전쟁을 개시하지 않을 것, 무력행사 및 위협 또는 군사적 보복을 하지 않을 것, 제3국의 전쟁에 참가하지 않을 것, 코스타리카의 물질적‧법적‧정치적‧도덕적 수단을 통해서 영세중립과 자주독립을 효과적으로 옹호할 것, 군사분쟁에 개입하지 않고 영세중립에 기초한 외교를 추구할 것, 영세중립 의무를 타국에 전가하지 않고 타국의 내분과 무력분쟁에 참가하지 않을 것을 명시했다.
이후 코스타리카 정부는 군인의 수만큼 교사를 둔다는 국민적 합의에 기초해서 예산의 30%를 교육에 투입하고, 1980년에 UN평화대학을 설립했다. 1983년 몬헤(Luis Monge) 대통령은 ‘비무장 영세중립’과 주변국의 군사적 충돌을 종식하기 위해서 ‘적극적 중립’을 선언했고, 1987년 오스카 아리아스(Oscar Arias Sanchez) 대통령이 3국의 평화협정(니카라과·과테말라·엘살바도르)을 중재했다.
이러한 기여로 아리아스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한국의 야당 정치인이었던 김대중 전대통령과 교분을 쌓게 되었다.
2003년 코스타리카 헌법재판소는 이라크전쟁에 대한 정부의 지지표명을 위헌으로 판결하여 중립을 헌정질서의 요체로 확인했다.
코스타리카는 인구 500만명 수준의 소국으로 니카라과와 파나마의 중간에 자리잡은 2면 육지, 2면 해양의 반도국가적 성격을 갖고 있다. 경제적으로 중하위권 수준이지만 현 대통령은 제조업 선진국인 독일과 IT 선진국인 한국을 모델로 삼아 새로운 경제도약을 추구하고 있다.
‘중미의 스위스’라는 코스타리카가 ‘중미의 한국’을 지향한다는 경제적 지향점을 밝힌 것은 역설적으로 한반도 국가도 경제성장(남)과 핵무장(북)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동북아의 스위스’와 같은 지정학적 지향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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