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소나무를 빼놓고 한반도의 역사와 정취를 서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음은 해림 한정선 화가 겸 작가의 글로 소개된 홍소안 화가의 소나무 그림들이다.
쭉쭉 뻗은 황장목(금강송)이 아니라 가늘게 비틀어지고, 그러나 무지렁이 농투산이의 목숨줄처럼 생을 이어가는 낮게, 그러나 곧게 선 소나무들에 대한 그림과 글이다.
<돌아오는 길>(2018년, 홍소안)
"그대를 보고 돌아오는 길은 눈을 감아도 환했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온 몸에서 꽃피는 소리가 났습니다. 세상 모든 길이 그대에게로 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해림 한정선)
<내 사랑>(2012년, 홍소안)
소나무 화가로 화단에 알려진 홍소안 작가가 동료 화가인 해림(海林) 한정선 작가의 시를 넣은 도록을 겸한 시화집 <한국의 소나무 - 목신(木神) 사랑>을 발간했다.
이번 도록 겸 시화집에는 홍소완 작가가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1년 동안 그린 221편의 소나무 작품들에 한정선 작가가 쓴 시 24편이 실려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시간적 배경으로, 산과 들과 강과 해안 절벽 등에 서 있는 다양한 소나무들과, 그 소나무들에 감정을 입힌 시들을 접할 수 있다.
홍 작가는 30년 이상을 일편단심 소나무만 그려왔다. 대형 화폭 속 그의 소나무는 매우 생생하다. 홍 작가를 오랜 세월 지켜 본 한 작가는 홍 작가의 소나무에 대하여 “인간의 자존과 삶의 의지로서의 메타포”이며 “한계상황에 직면해 살아가는 존재임과 동시에 끈기의 표상”이라고 평했다.
한 작가는 “장엄한 얼굴로 감상자를 압도하는 대형 화폭 속 소나무는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영웅의 모습을 본다. 동시에 굴절된 가지와 갈라터진 껍질을 통하여 그 영웅의 내면에 감추어진 연약한 속살도 본다. 그런 의미에서 소나무는 화가의 페르소나(persona)”라고 말했다.
‘야생의 사고(untamed thoughts)’
<겨울을 나는 뿌리>(2017년, 홍소안)
겨울을 나는 뿌리 (해림 한정선)
죽을 만큼 목이 탔는지 땅 밖으로 기어 나온 굵은 소나무 뿌리들이 너럭바위 틈새로 비집고 구불구불 뻗은 모양새인 청계천 먹자골목. 어른 팔 세 폭 쯤 되는 비좁은 돼지곱창 집에, 비둘기 깃털 머리를 한 아재 몇이 소주병 터는 엄동설한 어스름 녘. 달곰한 소주 들이마시고도 한속이 드는지 오스스 어깨를 떤 아재가 부속품 납품일하는 앞자리 친구에게 요샌 좀 나아졌냐, 근근이 버티고 있다.
늦은 밤, 얼근하게 목을 축인 아재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소 대창 같은 골목을 나갔다. 갈증 난 나무 뿌리들이 밖으로 뻗어 나왔다가 다시 수맥을 찾아 땅을 후벼 들어가듯 아재들은 지하도 계단을 비척대며 내려갔다.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굵은 겨울 뿌리들이 따로 따로 갈라지기 전에 겨울 잘 넘기고 봄에 보자.
※ 전시회 : 한국의 소나무 - 목신 사랑
10월 23일~31일. 서울 한전아트센터 1층.
참조 : 고흐의 소나무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