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레믈의 서기장들 27

끄레믈의 서기장들(Ⅴ) 금주령

김태항(정치학 박사) 미하일 쎄르게이비치 고르바초프(Михаил Сергеевич Горбачев) 3 미네랄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당면한 주요 현안들은 농업 부진에 따른 대규모 곡물 수입, 경제 침체, 과학기술 분야의 후진성, 근로의욕 이완, 정치 냉소주의 만연, 지하경제의 팽배 등인데, 특히 곡물의 경우 불구대천의 원수인 미국으로부터 6년 동안 지속적으로 대규모 수입을 해야만 하는 굴욕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고르바초프 지도부가 야심 차게 들고 나온 깜짝 카드가 금주령인데, 이는 처참하게 실패한 정책으로 기록된다. 이들은 안드로뽀프의 후예들답게 음주에 따른 무단결근, 각종 사고, 범죄 등을 줄임으로써 노동 생산성을 늘리고자 했지만, 이 조치는 음주를 중단시키기는커녕 인민대중들을 불편하게 만..

끄레믈의 서기장들(Ⅴ) 뻬레스뜨로이카

김태항(정치학 박사) 미하일 쎄르게이비치 고르바초프(Михаил Сергеевич Горбачев) 2 스따브로뽈 시절 고르바초프 부부는 대학 졸업 후 1955년부터 스따브로뽈시에서 살기 시작했다. 당시 스따브로뽈시의 인구는 약 14만 명이었다. 이 도시는 스따브로뽈스키 끄라이(Ставропольский край)라는 지역의 지방 수도였는데, 스따브로뽈 지역의 크기는 스위스의 두배에 달했다. 고르바초프는 공산주의 청년조직인 컴싸몰(Комсомол)의 선전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고속 승진을 하여 1966년 35세 때 스따브로뽈시당 제1서기, 39세 때인 1970년에는 스따브로뽈 지역당 제1서기, 그리고 이듬해인 1971년엔 당시 정치국원 겸 서기이자 고르바초프와 동향인 표도르 꿀라꼬프(Ф. ..

끄레믈의 서기장들(Ⅴ) 최후의 레닌주의자

김태항(정치학 박사) 미하일 쎄르게이비치 고르바초프(Михаил Сергеевич Горбачев) -1 스따르쉰스트보(старшинство; seniority)의 붕괴 소련, 나아가 러시아의 슬라브 사회에는 예로부터 젊은 사람보다 연장자이자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지도적인 입장에 서야 한다는, 이른바 스따르쉰스트보(старшинство)라는 전통이 있다. 동양의 장유유서(長幼有序) 또는 경로우대와 유사한 문화인데, 자연히 소련공산당 정치국 내부에도 이러한 전통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나 짧은 기간 내에 고령의 서기장들이 연달아 사망하자, 정치국의 노인들도 이제는 스따르쉰스트보를 고집할 수가 없게 되었다. 80세의 찌호노프와 76세의 그로미코, 71세의 그리쉰 등이 정치국 내에서 힘 좀 쓰는 노인들이었는데..

끄레믈의 서기장들(Ⅳ) 김일성과의 만남

김태항(정치학 박사) 깐스딴찐 우스찌노비취 체르녠까(Константин Устинович Черненко) 김일성의 소련 방문 개인의 통치 철학은 고사하고, 대외정책상의 명확한 노선조차 없는 무기력한 체르녠까가, 희한하게도 김일성의 소련 방문 건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까게베(KGB)로부터 김일성이 남한의 군국주의를 압도하기 위해, 무기 원조 및 그 이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내용에 대해 사전 브리핑을 받았다. 체르녠까는 한국전쟁에 관한 예전 자료들을 검토했다. 1950년 외교문서에는 김일성이 1월 19일 한반도 무력 통일에 관한 문제를 모스크바에 제기했다는 사실이 적시되어 있었다. 이는 김일성이 당시 북한 주재 소련 대사였던 쩨렌찌 쉬띠꼬프(Т. Ф. Штыков)에게 남침 문제를 재차 강조했..

끄레믈의 서기장들(Ⅳ) : 브레쥐네프의 아바타

김태항(정치학 박사) 깐스딴찐 우스찌노비취 체르녠까(Константин Устинович Черненко) 미래를 상실한 체제 안드로뽀프의 사망으로 당과 정부의 고위 관료들에 대한 청소 등 이른바 ‘부패와의 전쟁’은 중단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찔리겐찌야들을 필두로 소련 인민들의 변화에 대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미 이전 서기장인 브레쥐네프 사망 이후 소련 사회의 저변에서, 변화를 향한 거대한 시계추가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73세의 역대 최고령이자, 반쯤만 살아있는 체르녠까가 권력의 정상에 오르자 정통 레닌주의자들, 사회민주주의자들, 마르크스 원리주의자들, 심지어 음성적 스딸린주의자들까지도 체제 붕괴의 조짐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체르녠까의 등장은 마치 먹구름과 함께 까마귀 ..

끄레믈의 서기장들(Ⅲ) KAL 007편 격추사건

김태항(정치학 박사) 유리 블라지미라비취 안드로뽀프(Юрий Владимирович Андропов) 2 KAL 007편 격추사건 안드로뽀프 시기의 소련은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황이었다. 안드로뽀프보다 나이가 세 살 많지만, 훨씬 건강하고 정력적인 레이건(R. W. Reagan)이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규정하면서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더욱이 소련 경제를 겨우 지탱해주었던 유가가 급락을 하자 성장률은 급강하했고, 아프가니스탄은 유혈사태의 장기화로 돈 먹는 하마가 됐으며, 무엇보다도 소련 지도부를 패닉 상태에 빠지게 만든 것은, 이른바 스타워즈(Starwars) 계획으로도 불리는 레이건의 전략방위구상(SDI)이었다. 우주 공간에서 레이저 탑재 인공위성 등을 이용해 소련의 모..

끄레믈의 서기장들(Ⅲ) : 병상 정치

김태항(정치학 박사) 유리 블라지미라비취 안드로뽀프(Юрий Владимирович Андропов) 1 끄레믈의 중환자들 18년간 끄레믈의 두목 자리를 지켰던 브레쥐네프는 1982년 11월 10일 사망했고, 그의 계승자인 안드로뽀프는 1984년 2월 9일 사망함으로써, 정확히 15개월 동안 서기장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그는 서기장으로서의 직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했다. 건강이 나빠 재임 전반기에는 일과 치료를 병행했고, 후반기 약 6개월 동안은 병상에 누워서 업무를 봤다. 이와 관련하여, 소비에트 연방의 역대 서기장들의 건강은 흐루쇼프와 고르바초프를 제외하고는 좋지 않았다. 소련을 기획하고 건설한 레닌은 말년에 여러 차례 뇌경색과 뇌졸중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사망했다. 스딸린은 ‘강철’이..

끄레믈의 서기장들(Ⅱ) : 노인정치 시대

김태항(정치학 박사) 레오니트 일리취 브레쥐네프(Л. И. Брежнев, 1964~1982 재임) 6 게란따 끄라찌야(геронтократия ; 노인정치) 폴란드 출신의 소련 전문가인 리처드 파이프스(Richard Pipes) 전 하버드대 교수는, 브레쥐네프가 집권 말년에 노인성 치매 증상을 뚜렷이 보였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브레쥐네프의 건강 문제는 1971년부터 시작된 고질적인 문제였고, 1974년 몇 차례의 뇌출혈에 이어, 1976년부터는 이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육체와 정신이 골고루 망가진 상황이었다. 이로부터 6년간 소련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거의 반쯤은 죽어있는 사람이 통치한 것이다. 물론 브레쥐네프의 늙은 동료들인 안드로뽀프, 우스찌노프, 그로미코 등 끄레믈의 알리가르히(олигарх..

끄레믈의 서기장들(Ⅱ)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바웬사

김태항(정치학 박사) 레오니트 일리취 브레쥐네프(Л. И. Брежнев, 1964~1982 재임) 5 중국의 친미·반소전략 마오쩌둥은 1972년 닉슨의 중국 방문 당시 발표한 ‘상하이 공동선언’, 그리고 같은 해 일본과의 수교 공동선언에서 소련의 패권주의 저지라는 문구를 명문화하는 데 성공했다. 마오는 닉슨의 방문을 기뻐하면서, 자신의 주치의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닉슨은 기탄없이 말하는 아주 솔직한 사람이야. 좌익들과는 확연히 다르지. 닉슨은 나에게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우리와의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고 했어. 이 얼마나 솔직한 사람인가? 그는 눈앞에서는 도덕성을 말하면서, 돌아서면 음험한 음모를 꾸미는 자들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야. 우리가 미국과 관계 개선을 꾀하는 것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끄레믈의 서기장들(Ⅱ) : 중국의 친미 행보

김태항(정치학 박사) 레오니트 일리취 브레쥐네프(Л. И. Брежнев, 1964~1982 재임) 4 소련의 베트남이 된 아프가니스탄 ‘세계의 지붕’이라는 별칭을 가진 ‘파미르 고원’에 걸쳐있는, 척박한 산악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북쪽으로는 끼르기즈스탄, 우즈베끼스탄, 따쥐끼스탄 등 소비에트 연방이, 서쪽은 이란, 남동쪽은 파키스탄과 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다. 소련의 가장 큰 우려는 친미 성향의 파키스탄을 통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사실상 대소(對蘇) 전초기지로 사용하거나, 아프가니스탄이 이란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변질되면서, 북쪽 국경선에 위치한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에게도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1979년 9월 아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