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중립화 9

한반도 중립화 논의(9) 오스트리아가 분단과 전쟁을 겪지 않은 이유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오스트리아 국빈방문을 했다. 오스트리아는 한국과 인연이 없는 먼 나라로 여겨질 수 있지만 과거에 사돈지간이었다. 오스트리아(Republic of Austria)는 이승만 대통령의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모국이었다는 점과 1950~60년대의 영세중립 논의에서 주요한 모델로 거론되었다는 점에서 한국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한국전쟁에서 한국군이 평양을 점령해서 은닉된 금괴를 노획했다는 비화를 후세에 남겼다. 조선 인민군도 서울을 점령했을 때 한국 정부가 수도를 옮기면서 미처 빼가지 못한 금괴를 노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Sebastian Kurz) 오스트리아 수상은 2017년 총선결과와 연립내각 구성에 따라 당시 31..

한반도 중립화 논의(8) 바르트의 중립에 관한 사유

바르트의 중립에 관한 사유 과거에 덜레스 미 국무장관은 중립주의(neutralism)를 부도덕하다고 비난하였고, 소연방(Soviet Union)은 중립주의자(neutralist)를 자본주의국가들의 들러리라고 조롱하였다. 특정한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사람들에게 중립은 개인주의, 보신주의, 퇴행적, 민족이나 계급에 대한 무관심, 정치적 무심, 회색분자로 받아들여졌다. 바르트(Roland Barthes)는 사회적 의미에서 중립은 영광 밖에 있지만 숙고되어지고 수용되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중립의 반대로 독단·전염·유일화의 개념을 지목하였다(Neutre : notes de cours au college de France, 1977~78/중립, 김용권 역) 그에게서 중립은 광기와 열광과 같은 사회적 바이러스(soc..

한반도 중립화 논의(7) 영세중립선언 의미와 한계

2021년 3·1절에 사회원로들과 시민들이 독립선언문을 공표했던 태화관 터에서 한반도 영세중립화 선언을 제창했다. 영세중립화 선언의 골자는 남과 북이 서로의 체제를 완전하게 인정하고 중립화를 통해서 ‘코리아 국가연합’을 이루자는 것이고, 이를 위하여 미·중과 세계 각국의 한반도 중립화 지지를 요청한 것이다. (전문) 우리 민족의 미래는 우리가 결정한다. 이제 우리는 한반도의 중립화를 선언한다. 우리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8000만 겨레의 염원과 의지를 담는 한반도의 영세중립화를 세계만방에 엄숙히 선언한다. 단언컨대, ‘한반도의 중립화’만이 70년 세월 이 땅에 지속된 한민족 내부의 갈등과 대립을 청산하고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전쟁의 위협과 공포에서 벗어나는 길이자, 동북아시아의 ..

한반도 중립화 논의(6) 스위스, 오스트리아 영세중립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 국제기구들이 밀집한 모습은 영세중립국가의 위엄을 상징하는 듯하다. 남과 북이 그러한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다. 한반도 국가는 각자 혹은 공동의 노력으로 한반도 중립화에 대한 국제적 동의와 지지를 구할 수 있는 연대와 협력의 네트워크는 잠재성이 큰 편이다. 동아시아에서 베트남과 몽골은 남·북과 가장 우호적인 관계를 공유하는 국가이고, 북의 과거 비동맹운동 역사와 최근 남의 공적원조(ODA) 및 인도적 교류협력은 잠재적으로 한반도 중립화에 대한 전지구적 협력을 기대하게 한다. 한반도 중립화는 DMZ의 평화적 개발에 주변 4대강국과 협력국가들의 참여를 촉진하여 궁극적으로 평화유지군이 필요 없는 비무장지대로 탈바꿈할 수 있는 잠재력의 원천이다. 한반도의 가슴에 박힌 철조..

한반도 중립화 논의(5) 코스타리카의 적극적 중립

2018년 취임 이후 첫 아시아 국가로는 한국을 가장 먼저 방문한 카를로스 알바라도(Carlos Alvarado Quesada)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국정연설에서 자국이 ‘아메리카대륙의 독일이나 한국’으로 불리길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자국이 ‘아메리카대륙의 스위스’로 알려져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제는 아메리카대륙의 한국(Corea del Sur de América)으로 알려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남미에서도 중미에 속하는 소국인 코스타리카는 아메리카대륙에서 사실상 유일한 중립국로서 ‘비무장 영세중립’과 ‘적극적 중립’을 견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야당 시절부터 아리아스 코스타리카 대통령과 교분을 쌓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 코스타리카를 방문했다. 이후 이명박..

한반도 중립화 논의(4) 오스트리아 영세중립 재조명

분단과 전쟁 이후 한반도 중립화에 대한 논의가 지속된 것은 허약한 완충국가의 운명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과 평화번영을 누릴 수 있는 국가의 존재양식으로서 영세중립국이 갖는 매력 때문이었다. 또한 영세중립은 분단과 전쟁의 원인이었던 남과 북의 적대적 관계를 하나의 국가의 틀 속에서 평화적으로 해소하고 재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매력과 매혹은 빛을 잃어갔다. 장면 정부 이후 역대 정부의 냉소 속에서 대중의 관심과 열의가 뒷받침되지 않는 중립화 논의는 일부 민족지사들의 고색창연한 민족주의 담론처럼 점점 고립화되었다. 1955년 오스트리아의 영세중립은 한국의 중립화 논의에서 오랫동안 하나의 대안적 모델로 인용되었다. 한반도와 오스트리아의 다른 점보다는 비슷한 ..

한반도 중립화 논의(3) 헌법의 침묵과 새로운 접근

1980년대~2020년대 1983년 오란 영(Oran R. Young)은 한반도가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처럼 중립화되면 국제적 매력을 가질 것이고, 남·북은 외부의 침략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을 중립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1985년 10월 17일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일성 DPRK 주석은 비밀리에 방문한 장세동 안전기획부장과의 면담에서 중립노선과 중립화를 강조했다. 이에 앞서 9월 5일 경기도 기흥에 있는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의 별장에서 전두환 ROK 대통령은 비밀리에 방문한 허담 과의 면담에서 조속한 통일의 필요성을 타진하였다. 1987년 그레고리 핸더슨은 방미한 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에게 자신을 한국사 연구로 인도한 매쿤(George McCune)이 ‘중도적인 코리아’가 되기를 희망..

한반도 중립화 논의(2) 광복∼1970년대

1945년 광복 이후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중립화를 거론하기 시작했고, 1947년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로 중국내전에 관한 대책을 수립한 앨버트 웨드마이어(Albert Wedemyer)는 미·소가 철군하면 한반도의 영세중립을 보장할 것을 건의하였다. 좌우합작을 주장했던 김규식을 비롯한 중도파의 ‘우측 8원칙’은 남북 및 좌우의 합작으로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방안을 포함했는데, 임시정부가 미국과 소연방(Soviet Union)의 지지를 받으려면 군사적 중립화와 함께 쌍방의 이념적 접근 및 중도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에도 미 국무성은 한반도의 ‘비무장중립화’를 검토하였고, 이후 미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하자 조선과 중·소의 국경지대를 따라 중립 및 안전보장 지대를 설정하는 ..

한반도 중립화 논의(1) 대한제국(1897~1910)

조선의 중립화를 제기한 유길준(1856~1914)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을 아시아의 인후(throat)로 비유하면서 벨기에의 지정학적 조건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아시아의 인후에 위치하고 있어 마치 유럽의 벨기에와 같고, 그 국제적 지위로는 중국의 공방이어서 불가리아와 터키의 관계와 같다. 불가리아는 동등지례로 세계 각국과 조약을 체결할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하지만 우리나라는 갖고 있다. 공방의 반열에서 외국의 책봉을 받는 일은 벨기에의 경우는 없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일이 있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의 체세는 실로 벨기에와 불가리아 양국의 전례를 겸하고 있다. 불가리아를 중립화한 조약은 유럽의 강대국들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고 한 계책에서 나온 것이고, 벨기에를 중립화한 조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