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영세무장중립/한반도 중립화 논의

한반도 중립화 논의(3) 헌법의 침묵과 새로운 접근

twinkoreas studycamp 2021. 5. 5. 17:52

 

1980년대~2020년대

 

1983년 오란 영(Oran R. Young)은 한반도가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처럼 중립화되면 국제적 매력을 가질 것이고, 남·북은 외부의 침략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조건을 중립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허담과 장세동

 

1985년 10월 17일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일성 DPRK 주석은 비밀리에 방문한 장세동 안전기획부장과의 면담에서 중립노선과 중립화를 강조했다.

 

이에 앞서 9월 5일 경기도 기흥에 있는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의 별장에서 전두환 ROK 대통령은 비밀리에 방문한 허담 과의 면담에서 조속한 통일의 필요성을 타진하였다.

 

MBC

1987년 그레고리 핸더슨은 방미한 김정기 한국외대 명예교수에게 자신을 한국사 연구로 인도한 매쿤(George McCune)이 ‘중도적인 코리아’가 되기를 희망했으며, 매쿤의 바람처럼 되었다면 한반도의 통일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술회하였다.

 

1987년 12월 김일성 주석은 고르바초프 소연방 서기장을 통해서 레이건 대통령에게 ‘한반도 중립화 및 완충지대’를 제안하였다.

 

<한반도 완충지역 설정 및 중립국 창설을 위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제안>(1987.12.9)

 

1989년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광주교대 강연에서 “한반도가 통일되면 오스트리아와 같은 영세중립국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89년 해리슨(Selig S. Harrison)은 주한미군 철수와 4강과의 거리두기를 통해서 군사동맹 관계와 이로 인한 긴장을 유화시키고 남과 북에 주도권을 부여함으로써 사실상의(de facto) 중립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페이지(Glenn Paige) 등이 한반도 중립화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1991년 남·북의 UN 동시가입으로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가 국제적으로 공인되었다.

 

1999년 매닝(Robert Manning)은 코리아의 역사에서 스위스와 같은 영세중립국은 어울리지 않고, 통일이 되면 코리아의 국력이 오히려 약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 20년 동안 리영희 전 교수, 김용운 전 교수 등 원로들이 영세중립을 유언처럼 당부하고 생을 마쳤다. 문화예술계에서는 최인훈, 이병주, 황석영, 조정래 작가 등이 직간접적으로 중립국에 관한 사유를 드러냈다.

 

 

이론적인 측면에서는 황인관 전 교수, 강종일 한반도중립화연구소장, 곽태환 전 통일연구원장 등이 영세중립 논의를 이어갔고, 중견세대들이 그 맥을 계승해나갔다.

 

대표적으로 곽태환 전 통일연구원장은 ‘한반도 중립화 5단계 통일방안(2010)’을 제시하였다.

 

"1단계(남북화해, 협력관계발전/남북기본합의서 실천이행/비핵화 실현/4자(미중남북) 평화조약 체결)-2단계(남북경제·평화공동체건설/남북 중립화통일 기본조약체결 : 남북연합단계 진입)-3단계(남북과 미·중·러·일 4강의 중립화 국제조약 체결 : 남북 연방단계 진입)-4단계(남북한 중립화통일헌법 채택 : 한반도 총선거)-5단계(통일코리아 중립화 국가건설/유엔 회원국 등록)" - 원 코리아 중립화 통일방안 -

 

 

북한의 중립화 제안

 

북한(이하 조선)은 1954년 6월 평화협정 제안, 1962년 외국군 철수와 평화협정 제안, 1974년 미국과의 평화협상 제안 등을 지속하였다. 김일성 전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는 중립통일 및 중립화에 관해 서른 번 정도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 제6차 조선로동당 전당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 김일성 주석은 중립화통일을 공식적으로 제기하였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은 어떠한 정치와 군사적 동맹이나 블록에도 가담하지 않는 중립국이 되어야 한다.” 1983년 9월 9일 ‘공화국 창건일’ 기념연설에서도 재통일된 연방국은 비동맹 중립국의 외교정책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5년 10월 장세동 안전기획부장과의 면담에서도 중립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는 것이 외교문서 기밀해제로 밝혀졌다.

 

“조선 민족은 동서대결의 전초전과 대리전을 하였고 열강들의 각축에 희생이 되었음으로 우리가 동서 열강에 말려들지 말고, 진정한 중립이 되어 어느 블럭에도 참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열강의 각축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중립적 입장을 가지고 큰 나라에 붙자고 하지도 말며, 큰 나라로부터 완전한 민족적 자립, 경제적 자주, 정치적 독립을 가지고 어느 나라에도 편중하지 않은 중립적 나라가 되어야 한다. 남북이 통일된 중립국가를 선포하면 군대는 20만 명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면하면 남북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불가침 선언하고, 중립국으로서 블럭에 가입하지 않고, 두 제도를 그대로 두면서 한 개의 통일 국가를 형성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 만방에 통일되고 중립된 평화적 나라를 건설해야 하겠다고 발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머저리가 되고 말 것이다.”

 

1993년 조선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 회의에서 채택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은 “전민족의 대단결로 자주적이고 평화적이며 중립적인 통일국가를 창립해야 한다”(제1강령)고 명시하였다.

 

2018년 외교부가 기밀해제한 ‘한반도 완충지대 설정 및 중립국 창설을 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안’에서 조선은 남과 북의 병력을 10만명 미만으로 감축하여 ‘민족군’으로 통합하고, 핵무기 및 외국군의 철수, 불가침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민족적 원칙에 위배되는 협정 및 조약의 폐기, 연방공화국 창설, 중립국가 및 완충지대 선언을 담은 헌법채택, 단일한 국호를 통한 UN가입을 제안했다.

 

외교부 비밀해제 문서

 

<한반도 완충지역 설정 및 중립국 창설을 위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제안>(1987.12.9)

 

1. 남북은 오직 자위의 목적을 위해서만 필요한 정도의 규모로 단계적인 감군 단행, 즉 남북한이 각각 10만 미만의 병력유지 및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외국 군대의 철수

 

남북이 서명하는 불가침 선언,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 중립국 감시위원회의 권한을 강화하여 감군 절차를 감독할 수 있는 권한 부여. 남북한 군을 단일한 민족군으로 통합

 

2. 군사협정을 포함하여 남북한이 제3국과 체결한 국가적 단합에 위배되는 모든 협정 및 조약의 폐기

 

3. 남북한으로 구성한 연방 공화국을 창립하고 동 공화국이 중립국가 및 완충지역임을 선포하는 헌법 채택

 

4. 연방공화국이 단일국호로 국제연합 가입

 

2001년 김명철 조미평화센터 소장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스위스식 무장중립’(Swiss like armed neutrality)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Kim Myong Chol, Kim Jong Il's Perspectives on the Korean Question, The Brown Journal of World Affairs, Winter/Spring 2001 Vol. VIII, Issue 1).

 

김명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비동맹 무장중립 노선이 필요하고 가능한 근거를 냉전체제의 종말(The demise of the Cold War regime), 한반도의 평화애호 전통(Peace-loving tradition), 한국전쟁을 겪은 나라로서 전쟁 피로감(War weariness),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Geopolitical location), 만약의 침공에 필적할 만한 잠재력 방어능력(Sufficient defense potential)에서 찾았다고 한다.

 

 

영토조항의 효력정지(어베이언스)와 새로운 접근들

 

2010년대 이후로는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접근이 확산되었다. 최장집 명예교수는 남과 북의 헌법상 영토조항이 사실상 효력정지 상태에서 ‘헌법의 침묵’이 지속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최 교수는 “헌법 제3조 영토조항(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은 현실이 아니다. 하부구조가 바뀌면 상부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생산력이 변화하면 생산관계가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헌법 조문은 남아 있으나 실제로 적용하지 않는 일시적 중단, 어베이언스(abeyance) 상태에 있다”고 밝혔다(시사IN, 2018.5.28).

 

최 교수는 결론적으로 “한반도에서 남북의 평화공존은 통일로 가는 전 단계가 아니다”라고 일갈하고, “한국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은 적대적 두 민족국가의 지속과 통일국가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적대적 두 민족국가 사이의 평화공존이라는 두 민족국가 간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문제제기의 핵심은 한반도 국가의 한 쪽에서 민족국가의 복수성을 실효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대변화를 고려하여 기존의 중립화통일 방안이나 통일지상주의(One Korea)에 대한 대안적 접근이 등장하였다.

 

윤태룡 교수는 한국이 선제적으로 중립화하여 한반도 중립화를 선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하였고, 김상준 교수는 코리아 양국체제론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밖에도 한반도 좋은 이웃국가, 한반도중심축국가 등이 산발적으로 등장하였고, 2021년에는 시민사회의 영세중립선언이 공표되었다.

 

그러나 한반도 2국가론, 두 민족국가론, 양국체제론, 이웃국가론 등에 대한 민족주의적 비판이 엄존한다.

 

분단체제론의 거두 백낙청 명예교수는 “주창자들의 의도와 별도로 분단체제의 기득권 수호라는 기능을 수행하기 십상”이라고 일축하고, 이러한 논의들에 대해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할 방책이 부재한 탁상공론으로 규정하였다(프레시안, 2018.7).

 

2021년은 한국(ROK)과 조선(DPRK)가 UN 동시가입(1991) 30주년을 맞이하는 전환적 시점이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헌법에 명시된 영토조항이나 조선이 노동당 규약에 명시한 전국적 단위의 혁명완수는 일시적 중지(abeyance), 즉 사실상 효력정지에 도달하였다. 이에 따라 남과 북의 ‘헌법과 규약의 침묵’이 무한 연장되고 있다.

 

1991년 UN 동시가입 이후 30년 동안 한국 헌법의 영토조항과 조선 로동당 규약의 전국적 혁명 목표는 사실상 효력정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방은 때론 호시탐탐 상대의 취약점을 노리고, 때론 은연 중에 상대의 붕괴나 내적 분열을 기다리며 ‘반토막 민족주의’와 ‘반국의(half country) 국가주의(statism)’로 공고화된 체제를 상대에게 강요하거나 적응시키려는 동상이몽의 통일론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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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언 : 쌍둥이 남매국가의 영세무장중립화

 

일찍이 블랙(Cyril E. Black)은 중립화를 특정지역에서 특정한 국가의 침입을 제한하도록 고안된 ‘특별한 국제적 지위’로 규정하였다(Neutralization and World Politics, 1968).

 

따라서 신생국가, 분단된 독립국가, 강대국의 경쟁적 간섭을 받거나 받을 가능성이 있는 국가, 지리적으로 강대국과 강대국을 연결하는 교량적 위치에 있는 국가는 중립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현존하는 국가들 중에서 분단국, 주변 강국의 패권 다툼에 의한 희생양, 강대국에 포위된 나라, 강대국 사이의 교량적 위치 등에 모두 해당하는 나라는 한반도 국가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한반도 국가는 재통일의 필요성과 정당성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이란성 쌍생아(지정학적·체제적 단층화)로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역량과 조건의 미비를 드러냈다.

 

기존의 중립화통일 방안은 지정학적 요인, 남과 북의 경제력·군사력의 변화 및 체제의 문제, 북핵 문제, 주변국의 역학변화를 소거하는 편의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동력을 상실하였다.

 

또한 영세중립을 통일의 방편으로 간주함으로써 체제의 상이성과 한국의 내적 균열을 부차화하였고, 2017년 이후 조선의 핵무장 태세와 완고한 비핵화 프레임의 충돌을 조정할 수 있는 기제가 미비하여 대내외적 정당성과 호소력이 약화되었다.

 

한반도 국가는 열정과 혼란의 연대에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신념의 윤리가 인간 및 사회에 대한 이해에 기초한 책임의 윤리를 압도하면서 처절한 동족상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지나도록 남과 북은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감에 있어서 역사적 성찰에서 우러나오는 실력과 덕성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 단적인 사례가 네 차례의 정상회담 후에 발생한 대북전단 문제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사건이고, 북쪽으로 표류한 공무원의 사살사건이다.

 

원 코리아(One Korea)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의 낮은 신뢰 수준과 서로 국가로 불인정하는 상태(헌법의 침묵)가 지속되는 가운데 북핵문제와 미·중의 패권경쟁까지 중첩된 조건을 고려하면, 한반도 국가의 연방제 혹은 국가연합 방식의 통일이나 영세중립화 통일은 가망성이 희박해졌다.

 

한반도 국가의 전쟁상태(정전체제)에 대한 영속적 회피 및 비결정과 최적 긴장의 무한 연장을 초래한 미·중의 지정학적 길항관계를 조정 및 해소하는 실질적인 대안이 부재한 조건에서 중립화와 통일의 관념적 일체화는 더 이상 현실성을 갖기 어려워졌다.

 

결론적으로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being mode)에서 민족국가의 복수성(plurality)에 대한 수용과 국가로서 상호 인정에 기초하여, 통일과 중립의 결박을 풀고 각자 영세무장중립을 통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재탄생을 추구하는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한반도 국가의 재구성을 향한 역사적 전환을 위해서 한반도 지정학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 북핵을 비롯한 남과 북의 군사력에 대한 평가, 핵무기 동결에 기초한 북핵의 중립화와 소극적 안전보장(NSA), 한반도 비핵지대화에 대한 구상이 이뤄져야 한다.

 

나아가서 북의 경제적 이행(economic transition), 영세무장중립의 물적 토대와 국제적 조건, 쌍방의 평화와 중립수호의 공동역량을 위한 무위(armed suasion)와 현시(showing the flag)의 방책 등에 대한 연구와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에 도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