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레믈의 서기장들/브레즈네프 6

끄레믈의 서기장들(Ⅱ) : 노인정치 시대

김태항(정치학 박사) 레오니트 일리취 브레쥐네프(Л. И. Брежнев, 1964~1982 재임) 6 게란따 끄라찌야(геронтократия ; 노인정치) 폴란드 출신의 소련 전문가인 리처드 파이프스(Richard Pipes) 전 하버드대 교수는, 브레쥐네프가 집권 말년에 노인성 치매 증상을 뚜렷이 보였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브레쥐네프의 건강 문제는 1971년부터 시작된 고질적인 문제였고, 1974년 몇 차례의 뇌출혈에 이어, 1976년부터는 이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육체와 정신이 골고루 망가진 상황이었다. 이로부터 6년간 소련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거의 반쯤은 죽어있는 사람이 통치한 것이다. 물론 브레쥐네프의 늙은 동료들인 안드로뽀프, 우스찌노프, 그로미코 등 끄레믈의 알리가르히(олигарх..

끄레믈의 서기장들(Ⅱ)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바웬사

김태항(정치학 박사) 레오니트 일리취 브레쥐네프(Л. И. Брежнев, 1964~1982 재임) 5 중국의 친미·반소전략 마오쩌둥은 1972년 닉슨의 중국 방문 당시 발표한 ‘상하이 공동선언’, 그리고 같은 해 일본과의 수교 공동선언에서 소련의 패권주의 저지라는 문구를 명문화하는 데 성공했다. 마오는 닉슨의 방문을 기뻐하면서, 자신의 주치의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닉슨은 기탄없이 말하는 아주 솔직한 사람이야. 좌익들과는 확연히 다르지. 닉슨은 나에게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우리와의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고 했어. 이 얼마나 솔직한 사람인가? 그는 눈앞에서는 도덕성을 말하면서, 돌아서면 음험한 음모를 꾸미는 자들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야. 우리가 미국과 관계 개선을 꾀하는 것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끄레믈의 서기장들(Ⅱ) : 중국의 친미 행보

김태항(정치학 박사) 레오니트 일리취 브레쥐네프(Л. И. Брежнев, 1964~1982 재임) 4 소련의 베트남이 된 아프가니스탄 ‘세계의 지붕’이라는 별칭을 가진 ‘파미르 고원’에 걸쳐있는, 척박한 산악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북쪽으로는 끼르기즈스탄, 우즈베끼스탄, 따쥐끼스탄 등 소비에트 연방이, 서쪽은 이란, 남동쪽은 파키스탄과 중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다. 소련의 가장 큰 우려는 친미 성향의 파키스탄을 통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사실상 대소(對蘇) 전초기지로 사용하거나, 아프가니스탄이 이란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변질되면서, 북쪽 국경선에 위치한 소비에트 연방 국가들에게도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1979년 9월 아민이..

끄레믈의 서기장들(Ⅱ) : 덫에 걸린 시베리아 불곰

레오니트 일리취 브레쥐네프(Л. И. Брежнев, 1964~1982 재임) 3 김태항(정치학 박사) 레닌주의자(Leninist)들을 압도한 레넌주의자(Lennonist) ‘프라하의 봄’이 소련제 탱크에 의해 뭉개져 ‘프라하의 겨울’로 변했지만, 엄혹한 한파 속에서도 꽃은 피어나고 있었다. ‘프라하의 봄’이 짓밟히던 그즈음에 조직된, 체코의 언더그라운드 락 밴드인 ‘Plastic People of the Universe’의 에피소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경찰을 피해 다니며 몰래 게릴라식 연주를 하다가, 결국 1976년에 체포되었다. 그러나 이 밴드에 대한 터무니없는 재판은 수백 명의 지식인들을 자극했고, 이들은 1977년 1월 1일 공개된, 이른바 ‘77 헌장’ 선언문에 서명하게 된다. 체코의..

끄레믈의 서기장들(Ⅱ) : 프라하의 봄

레오니트 일리취 브레쥐네프(Л. И. Брежнев, 1964~1982) 2 김태항(정치학 박사) 알코올 중독자들의 창궐 전시(戰時)를 제외하고, 정치적 숙청과 정책적 실패로 스딸린이 집권 30년 동안 죽인 사람들의 숫자는 1년 평균 100만 명 이상을 상회하는데, 스딸린에 버금가는 또 다른 대량 학살자는 보드카였다. 보드카 역시 매년 100만 명 정도의 소련 인민들을 죽였다.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수명이 짧아진 나라는 소련뿐이었다. 일반 노동자들도 술 냄새를 풍기며 일을 했지만, 근무 중 음주 전통은 까게베(КГБ; KGB) 요원들과 정보원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1930년대 스딸린의 대숙청 기간에 본격화된 근무 중 음주는, 당시 고문 기술자들과 처형 담당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날마다 유혈이 낭자..

끄레믈의 서기장들(Ⅱ) : 조롱받는 지도자

김태항(정치학 박사) 레오니트 일리취 브레쥐네프(Л. И. Брежнев, 1964~1982) 스딸린의 적자들 1964년 10월 흐루쇼프의 핵심 측근이었던 브레쥐네프는, 휴가 중이던 흐루쇼프를 정치국 긴급회의에 소환했다. 표결 결과 보직 해임된 흐루쇼프는, ‘건강이 좋지 않아’ 자발적으로 은퇴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한 흐루쇼프는, 상황을 조용히 인정했다. 이후 흐루쇼프는, “아마도 내가 이룩한 가장 큰 업적은 바로 이와 같은(물러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표결로 저를 제거할 수 있었지만, 스탈린 같았으면 그 자들을 모조리 체포했을 것입니다”라고 빈정거리듯 이야기했다. 흐루쇼프가 키워준, 흐루쇼프의 부하이자, 흐루쇼프 축출의 주범인 브레쥐네프는 1906년 제정 러시아의 까멘스꼬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