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

개소리에 대하여, 프랭크퍼트 타계

미국의 윤리철학자이자 국내에서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의 저자로 알려진 프랭크퍼트(Harry G. Frankfurt, 94) 명예교수가 지난 7월 16일 타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평생에 걸쳐 인간의 의지와 기만에 관해 탐구했다고 전했다. 그를 세계에 널리 알린 소책자, ‘On Bullshit'에 관한 대목에서는 ’부정직(dishonesty)’을 키워드로 다루었다. 프랭크퍼트는 1929년에 미국의 어떤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유대계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됐으나, 어린 시절에 미국의 대공황이 덮쳐 양아버지가 실직하면서 가정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 언어학자의 딸이자 미국 템플대에서 음악을 전공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어릴 적에 배울 수..

책소개 2023.08.10

정치무당 김어준과 정치무속의 세계

예리한 언론비평과 인물평으로 저명한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가 이란 책을 냈다. 저자는 딴지일보 총수 시절부터 최근 뉴스공장 진행까지 20여년에 걸친 김어준의 행적을 정리하면서, 명랑사회 구현의 선구자(1998~2012)-팬덤 정치와 증오·혐오 마케팅(2012~2020)-민주당을 장악한 교주(2021)-민주당과 한국정치에 끼친 해악(2022)으로 시기를 구분하여 김어준의 정치적 성격을 평가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김어준은 tbs 뉴스공장에서 부정확한 사실과 무리한 해석으로 선동하면서 이른바 ‘조국수호운동’의 총사령탑이었다. 강 교수는 이런 선동만 없었어도 조국사태의 양상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피해호소인’으로 매도를 당했던 여성에 대한 음모론이나 정치적..

책소개 2023.02.07

최영미 시인, ‘위선 실천문학’ 일갈

최영미 시인이 90대 원로시인의 작품활동 재개에 관해 “(문단)권력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문학계 미투’와 관련해서 고은 시인은 최 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2심에서 패소하자 대법원에 항고하지 않았다. 당시 2심 재판부는 최 시인의 일기장을 핵심증거로 채택하고, “최 시인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최 시인은 에 기고한 글에서 고 시인의 작품활동 재개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문단 권력과 관계된 구조적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특히 문단의 모호한 태도 속에 뻔뻔함이 가득하다는 실망감을 드러냈다. “지난 월요일 아침부터 고은 시인의 문단 복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들의 문자와 이메일이 쏟아졌다. 등단 65주년 기념 시집과 대담집을..

책소개 2023.01.16

정호승 시인, “정치가 진영논리에 함몰돼 진실과 사실을 외면한다.”

(기자) 한국의 정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시인)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수준이 올라갔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좋아졌다. 그런데 정치는 낙후됐다. 국민의 이익을 구한다는 핑계로 자기의 집단적 이익만을 추구한다. 신뢰하기 어렵다. 정치가 진영논리에 함몰돼서 진실과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진영을 따지지 말고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사실인지, 그것을 찾아내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 진실과 사실과 정의는 하나다.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거짓이고 이기주의다.” (기자) 삶의 목적이 있다면 무엇인가. (시인)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1973년 등단한 이후 1980년대까지는 시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시를 쓴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인간인 나 ..

책소개 2022.12.22

마네의 모더니즘, 리얼리즘, 휴머니즘

는 시대와 불화했던 마네를 따뜻한 시각으로 보다 온전하게 살펴보려는 저자의 마음씨가 배여 있다. (2010)의 저자 홍일립은 국내에서 모네, 고흐에 비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마네를 모더니즘의 선구로 다시 세운다. 2010년 인상주의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를 총괄한 이후 12년만이다. 이번에도 근대의 여명기에 파리의 화랑가를 강타했던 청년 작가들의 걸출한 작품들을 풍부하게 실었다. 모더니스트 마네 : 시대와의 불화, 모더니즘의 선구자 어떤 평론가들은 “마네의 작품은 어떤 심사에서는 전원 일치로 거절당할 수 있는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말로 평단의 반응을 요약했다(92쪽). 올랭피아에 대한 혹평은 어찌나 드셌던지 당대를 풍자했던 마네가 도리어 풍자를 당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올랭피아는 후대의 수많은..

책소개 2022.08.20

로저 스트링햄의 한국전쟁 스케치

청년시절에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로저 스트링햄(93)이 당시 전선에서 스케치했던 그림들이 뒤늦게 공개되었다. 한국전쟁유업재단(Korean War Legacy Foundation) 홈페이지에 수록된 60여점 중에서 일부를 소개한다. [출처] https://koreanwarlegacy.org/roger-stringham-artwork Roger Stringham He was born and raised in Berkeley, California, where he developed an affinity for art at an early age. Pursuing his artistic interests, he enrolled in an art school upon graduation from Berkeley H..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정치질서와 정치쇠퇴'

“정치적 쇠퇴는 현직에 있는 정치주역들이 정치시스템 안에 견고하게 담을 쌓고 제도적 변화의 가능성을 봉쇄할 때 생긴다.”(Political decay occurs when incumbent political actors entrench themselves within a political system and block possibilities for institutional change.)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헌팅턴의 정치쇠퇴 이론의 연속선상에서 ‘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2015)를 집필하면서, “정치발전은 인간의 사회경제적 발전의 광범한 현상의 한 측면이므로 정치제도의 변화라는 것도 경제성장, 사회적 이동, 정의와 정통성에 관한 이념의 ..

한국의 소나무 : 목신(木神) 사랑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 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소나무를 빼놓고 한반도의 역사와 정취를 서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음은 해림 한정선 화가 겸 작가의 글로 소개된 홍소안 화가의 소나무 그림들이다. 쭉쭉 뻗은 황장목(금강송)이 아니라 가늘게 비틀어지고, 그러나 무지렁이 농투산이의 목숨줄처럼 생을 이어가는 낮게, 그러나 곧게 선 소나무들에 대한 그림과 글이다. (2018년, 홍소안) "그대를 보고 돌아오는 길은 눈을 감아도 환했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온 몸에서 꽃피는 소리가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독재자 경고 신호

미얀마에서는 선거결과를 부정하고 노골적인 폭력행사로 정치권력을 탈취하는 군사쿠데타가 발생하였지만, 대개의 나라에서 이런 현상은 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선거라고 하는 제법 공정한 절차를 거치는 나라에서도 독재자의 출현에 대한 우려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 해 미국에서는 선거로 선출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불복으로 커다란 혼란에 빠졌다. 일찍이 린츠(Juan Linz)는 에서 반민주적인 정치인을 식별하는 기준을 세우려고 했다. 최근에는 레비츠키(Steven Levitsky)와 지블렛(Daniel Ziblatt)이 린츠의 문제의식에 착안하여 잠재적인 독재자를 감별하는 ‘전제주의 행동’에 관한 경고신호를 체계화했다(Levitsky et al, How Democracies Die). 전제주의(despoti..

채현국 어른과 제대로 늙는 문제

지난 4월 2일 채현국 효암학원 명예이사장이 타계하였다. 고인은 평소에 스스로를 비틀비틀 살아온 인생이라고 하였지만, 세상은 그를 제대로 늙은 어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흔히 늙음은 곧 달아빠짐, 낡음을 연상케 하지만, 고인은 젊은이들에게 늙음이 곧 낡음이 아니라는 인상을 남겨주었다. 그는 평소에 젊은 세대에게 “저런 노인들을 잘 봐두라. 너희들도 까딱하면 저 꼴이 되니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잘 봐두라”고 경종을 울리곤 했다. “아비들이 처음부터 썩은 놈은 아니었어. 그놈도 예전엔 아들이었는데 아비 되고 난 다음에 썩는다고...” 고인에 대한 책으로는 (김주완)이 있지만, 서울대 철학과를 나온 고인은 자신에 대해서 한 권의 책도 쓰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 책을 쓰는 것을 스스로 미화하는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