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전쟁의 양상 4

미군 로이 드로이터 유해, 72년만에 귀향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의 최장기 송환기록이 다시 경신됐다.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유해가 4월 22일 미국 메릴랜드주 헤이커스타운에 안장됐다. 미 제7보병사단 제32보병연대 1대대 소속 로이 드로이터(Roy DeLauter)는 중국 인민지원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으나 당시에 수습되지 못했다. 미 DPAA¹⁾에 따르면, 그의 유해는 2018년 7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추가송환 절차에 따라 북측이 넘긴 유해상자에 포함돼 있었다. 미 국방부는 유전자 감식 등을 통해서 4년여만에 신원을 최종 확인했다. 하와이 호놀룰루 국립묘지의 실종자 표지석에 새겨져 있는 그의 이름 옆에는 로제타(장미문양)이 부착됐다. 이제부터 실종자가 아니라 전사자라는 미 정부의 공식적 표식이다..

1951년 4월 임진강전투, 가평전투 70주년

2020년에서 2023년까지는 한국전쟁 3년에 벌어졌던 일들이 차례로 70주년을 맞이한다. 지난해는 한국전쟁 발발 70주년 행사, 올해는 1.4 후퇴 이후 전투와 관련된 70주년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2023년에는 정전협정 70주년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4월을 맞이하여 한국 정부는 영국과는 임진강전투, 호주․캐나다와는 가평전투의 7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1951년 : 오산과 미비로 인한 전쟁 연장 1951년이 70년 후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인가? 쌍방이 1년에 끝낼 수도 있었을 전쟁을 3년 동안 연장한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1950년 9월 27일 미 합동참모본부는 세 가지 명령을 하달하였다. “첫째, 조선 인민군을 분쇄하라. 둘째, 최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체제로 한반도를 통일시켜라. 셋째, 소연방(..

전쟁 이후 군사적 국가주의 강화 : 정전협정 위반 사건들

과거사에서 비극 자체에 함몰되지 않고 자주국방의 원천을 찾는 것은 후대의 정당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다. 북과 남의 정전협정 위반사건들과 교전사건들은 쌍방의 세뇌교육과 국가주의를 공고히 하면서 군사적 역량을 증진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조선의 군사적 도전에 대응하면서 한국의 무기체계와 방어태세가 강화되었다. 또한 일련의 비극적 사건들은 쌍방의 국가주의를 강화시키고 종국적으로 군사강국화로 귀결되었다. 한국의 언론이 보도한 조선의 정전협정 위반은 1960년대가 295건으로 가장 많았다. 분단 이후 전쟁(1950~53)을 제외한 2015년까지 총 677건의 50%에 가깝다. 정부자료에서도 북의 주요한 정전협정 위반은 1967년에 300건을 넘었고 1968년에 378건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였다. 북은..

한국전쟁 70년 : 미비와 오판의 전쟁

2020년에 70주년이 되었던 한국전쟁을 끊임없이 사유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이라는 점에서 ‘카인과 아벨’의 서사를 불러들이는 민족적, 국가적 비극이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데미안’에는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카인이 절대악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1차세계대전을 반대했던 헤세는 전쟁의 당사국들이 서로 상대를 카인으로 간주하는 것을 은유했는지도 모른다. 새롭게 공개되거나 밝혀진 사실들을 통하여 한국전쟁의 전말을 사실에 기초하여 기억하고, 한국전쟁에 대한 양측의 입장과 태도에서 어디까지 화해할 수 있고 앞으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1950년 이후에 태어난 전후세대, 아니 194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한국전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