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전쟁의 양상

미군 로이 드로이터 유해, 72년만에 귀향

twinkoreas studycamp 2022. 4. 29. 14:27

한국전쟁 미군 전사자 유해의 최장기 송환기록이 다시 경신됐다. 1950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유해가 422일 미국 메릴랜드주 헤이커스타운에 안장됐다.

 

미 제7보병사단 제32보병연대 1대대 소속 로이 드로이터(Roy DeLauter)는 중국 인민지원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했으나 당시에 수습되지 못했다.

 

DPAA¹에 따르면, 그의 유해는 20187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추가송환 절차에 따라 북측이 넘긴 유해상자에 포함돼 있었다. 미 국방부는 유전자 감식 등을 통해서 4년여만에 신원을 최종 확인했다.

 

하와이 호놀룰루 국립묘지의 실종자 표지석에 새겨져 있는 그의 이름 옆에는 로제타(장미문양)이 부착됐다. 이제부터 실종자가 아니라 전사자라는 미 정부의 공식적 표식이다.

 

(영화 인터스텔라)

 

드로이터 병장이 스물 한 살에 한반도에 파병되었을 때 세 살이었던 딸은 이제 74세의 할머니가 되었고, 그녀의 아빠는 72년만에 유골로 돌아왔다. 20대 초에 삶이 멈춘 드로이터와 딸의 재회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부녀가 재회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드로이터의 딸이 기다린 평생의 시간은 유한한 인생의 무상함이자, 전쟁의 멈춤상태(정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비운이다.

 

장진호 전역의 미군들

 

 

최악의 겨울전쟁 : 돌아오지 못한 전사자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

 

1950년 조선인민군은 가을이 오기 전에 전쟁을 끝내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미군도 인천상륙작전의 기세로 추수감사절까지 전쟁을 끝내려고 했지만 중국인민지원군의 역습으로 처참한 성탄절을 맞이했다.

 

전쟁 초기에 조선(DPRK)은 기갑부대를 앞세운 전격전으로 빠른 승리를 기대했지만, 낙동강전선의 교착과 인천상륙작전으로 역포위되면서 38선 이북으로 총퇴각하였다. 미국은 북상하면서 평양 등을 초토화시켰지만, 중국 인민지원군과의 겨울전쟁에서 밀려났다. 특히 군우리전투와 장진호전투에서 선봉부대들이 궤멸됐다.

 

처음에 만난 적은 추위였다. 1950년 겨울은 기온이 섭씨 영하 40도까지 내려갔다. 그런 추위는 생전 처음이었다. 우리 복장은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미군은 털을 누빈 코트를 입었는데 영국은 기껏해야 얇은 플란넬 셔츠에 조끼, 내복바지, 군복 위에 스웨터를 입는 게 다였다. 많은 병사가 동상에 걸려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랐다. 얼어 죽기도 했다.”(영국군 레스터셔연대 제1대대 전사자 호크리지 마이클)

 

한국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하면서 퓰리처상을 받았던 마가렛 히긴스는 장진호 전투를 취재하기 위해 미 해병대 본부중대까지 비행했으나 군 지휘관들의 강력한 만류로 되돌아갔다.

 

히긴스는 이듬해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정부가 깨어 있는 정통한 이론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면,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면, 우리 기자들에게 심하게 상처를 주는 진실을 말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표=한미우호협회)

 

 

장진호 전투에 앞서 맥아더와 알몬드(10군단)는 김밥을 잘라 놓듯 대오를 종렬로 길게 전진시켰고, 중국인민지원군은 김밥 사이의 틈을 차단하려고 했다. 쑹스룬(宋時輪) 부사령관 및 제9병단 총사령관은 일견 주저하는 듯 소강전을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거대한 포위망을 구축해서 일거에 대마(大馬)를 잡으려고 했다.

 

스미스 미 해병1사단장(소장)은 맥아더와 알몬드의 전략적 실수를 우려하고 3주 동안이나 북서방향 전진을 미루면서 본부중대에 임시 비행장 및 단축 활주로를 만들어 긴급수송에 대비했다. 그의 준비성은 부상병 후송과 최후의 탈출작전에서 주효했다.

 

훗날 스미스는 공격보다 더 힘들었던 장진호 후퇴작전을 회상하면서 칭기즈칸도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전쟁사가 헐버스타인은 장진호에서 해병1사단이 후퇴한 것은 군단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평가하면서, 특히 작전의 성공에서 스미스 소장의 공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진호 전투에서 선봉부대 및 후퇴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미 해병대원 561명이 사망하고, 182명이 실종됐다. 부상자가 2,894명에 달했고, 이탈 및 실종이 3,600명이나 됐다. 중국인민지원군도 4천여명이 전사하고 2만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전쟁의 거울에 반사된 적을 위한 기도

 

우리 주 하느님, 우리의 포탄이 적들의 몸뚱이를 산산조각 내도록 도와주소서. 저들이 뛰어노는 드넒은 들판이 저들의 애국자의 창백한 시체로 뒤덮이도록 하시고, 부상자들의 고통스런 비명소리가 천둥 같은 총소리마저 잠재우도록 도와주소서. 또한 저들의 안락한 가정을 불바다로 만들고, 죄 없는 저들 미망인의 가슴이 가눌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하도록 하소서. 주여, 당신을 찬양하는 우리를 대신하여 저들의 희망을 뭉개버리시고, 저들의 목숨을 거두어 주시고, 고난의 행군을 연장시키고 저들의 발걸음이 천근만근이 되도록 하시고 저들의 행선지를 눈물의 바다로 만들어 주시고, 하얀 눈밭이 저들의 상처 난 발에서 나온 피로 붉게 물들게 하소서! 구원을 찾는 자들의 영원한 피난처이며 친구이신 하느님, 시험에 들어 참회하는 심정과 사랑을 구하는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구하옵나이다. 아멘” (마크 트웨인)

 

 

)

 

¹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 공지내용

 

Sgt. Roy C. Delauter

 

The Defense POW/MIA Accounting Agency (DPAA) announced today that Army Sgt. Roy C. Delauter, 21, of Smithsburg, Maryland, killed during the Korean War, was accounted for Jan. 18, 2022.

 

In late 1950, Delauter was a member of Company D, 1st Battalion, 32nd Infantry Regiment, 7th Infantry Division. He was reported killed in action on Dec. 1, 1950, after his unit was attacked by enemy forces as they attempted to withdraw near the Chosin Reservoir, North Korea. Following the battle, his remains could not be recovered.

 

On July 27, 2018, following the summit between President Donald Trump and North Korean Supreme Leader Kim Jong-un in June 2018, North Korea turned over 55 boxes, purported to contain the remains of American service members killed during the Korean War. The remains arrived at Joint Base Pearl Harbor-Hickam, Hawaii on Aug. 1, 2018, and were subsequently accessioned into the DPAA laboratory for identification.

 

To identify Delauter’s remains, scientists from DPAA used anthropological and isotope analysis, as well as circumstantial evidence. Additionally, scientists from the Armed Forces Medical Examiner System used mitochondrial DNA (mtDNA) and autosomal DNA (auSTR) analysis.

 

Delauter’s name is recorded on the American Battle Monuments Commission’s Courts of the Missing at the National Memorial Cemetery of the Pacific in Honolulu, along with the others who are still missing from the Korean War. A rosette will be placed next to his name to indicate he has been accounted f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