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두 국가/Two States, Both States

김정은, '한국은 가장 적대적 국가' .. 대북 접근의 대전환 필요

twinkoreas studycamp 2026. 3. 24. 21:17

3월 24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은 23일 최고인민회의(15기 1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하고 가장 명백한 언사와 행동으로 철저히 배척하고 무시하면서 다루어나가며 우리 공화국을 건드리는 한국의 행위에 대해서는 추호의 고려나 사소한 주춤도 없이 무자비하게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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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핵 보유를 되돌릴 수 없게 영구화한 우리 국가의 전략적 선택과 결단이 얼마나 정당한가를 엄연히 실증하고 있다”면서, “더이상 우리 국가는 위협을 당하는 나라가 아니며 필요하다면 위협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국가의 존엄도 국익도 최후의 승리도 오직 최강의 힘에 의해서만 담보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발언은 러-우크라이나전쟁과 베네수엘라 마두로 압송, 미·이스라엘-이란전쟁, 양안(兩岸)의 폭발 가능성 등으로 인해 북의 선군(先軍)노선이 정당화될 뿐더러 더욱 강화될 것임을 시사한다.
 
반면에 대외노선 및 정책에서 새로운 접근을 강조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김 위원장은 “지난 시기의 낡은 기준, 낡은 자대에 맞추어졌던 외교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격과 국위에 상응한 외교전술과 대외활동 방식을 구사하여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중·러에 대한 밸런스와 함께 중·러와의 지정학적 연계를 넘는 글로벌 사우스(남반구 개발도상국)와의 다자외교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이 남쪽의 정체성에 대해 극도의 적대감을 표출하면서도 ‘남조선’이나 ‘남조선 괴뢰’ 따위의 옛스러운(?) 표현을 쓰지 않고, ‘한국’(대한민국의 약칭)이란 국호를 일관되게 호명한 것은 한국 정부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북이 ‘남한’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 것은 한반도 전체를 포괄하는 국호 대결에서 ‘조선’과 ‘대한’의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이며, 남에서도 그런 이유로 ‘북조선’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조선이 한국을 '남한'이라고 지칭하지 않고 한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최근 대만 정부가 한국의 'Taiwan(China)'이란 표현에 반발하여 '남한'이라고 표기하겠다는 것과 극적으로 대비된다.
 

한국은 국호에 관한 조선과 대만의 상이한 태도를 통찰하여 상대의 국호에 대한 지칭에서 '상호 존중'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혜안이 요구된다. 

 
남과 북의 정부는 각자가 상대를 포함하는 영토(국토)의 완정으로 한반도를 전일적(專一的)으로 지배 및 통제하겠다는 헌법 등 법제도의 언어적 표현으로 서로 ‘북한’과 ‘남조선’으로 지칭해 왔는데, 지난 몇 년간 북은 남을 지칭하여 ‘한국’ 혹은 ‘대한민국’이란 정식국호를 호명하고 있다.
 
조선의 대남 담론에 담긴 이중적 함의를 간과한 한국의 관성적 대북 접근법은 사실상 파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정부에서도 사실상 전임 정부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 남북관계 장기구상을 지속하고 있다.
 

대남통 장금철, 외무성 제1부상 기용의 시사점

 
조선의 대남 통일전선 담당 조직으로 알려진 10국이 외무성 산하로 편입되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지낸 장금철이 외무성 제1부상으로 기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변화는 종래 ‘민족내부의 특수한 관계’에 따라 통일전선부에서 전담했던 대남업무가 ‘적대적 두 국가’ 노선에 따라 외국과의 외교 및 통상 관계를 관장하는 외무성으로 귀속됐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향후 남북관계의 질적 전환이 이뤄지는 시점에 장 제1부상이 ‘조한관계’(조선과 한국)를 관장할 가능성이 높고, 한국의 통일부는 사실상 카운터 파트너가 사라진 비대칭적 조건에 갇히게 됐다.
 
장 제1부상은 문재인 정부 당시의 남북 협상에 주도적으로 관여했으나 하노이 노딜 이후 해임됐고, 최근 9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복귀했다.
 

통일부 주도 남북관계기본계획, 비대칭적 대응의 공허한 접근

 
 
3월 19일 이재명정부는 정동영 통일부장관 주재로 남북관계발전위원회를 열어 제5차 기본계획안(2026~2030)을 심의했다. 남북관계발전위원회는 통일부장관 등 정부위원 15명과 민간위원 15명으로 구성된다.
 

 
 
이 자리에서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정부의 평화공존정책이 적대 및 대결노선의 부정적 유산의 제거와 과 전시작전권 환수를 통한 자주국방의 실현이라는 두 개의 기둥으로 구성된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또한 ‘남북관계의 발전은 자주·평화·민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남북공동번영과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남북관계발전기본법 제2조를 환기시키면서 “자주·평화·민주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던 것에 대해 반성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날 회의에서 논의한 남북관계 기본계획의 기본방향은 ‘남북관계의 통일을 지향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관계로 재정립한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적대적 두 국가’를 전제로 대한민국을 동족에서 배제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북의 방침과 접점을 찾기 어려운 ‘관성적 접근’으로 평가된다.
 
남측에서 북측의 ‘적대적 두 국가’에 (비판적으로) 조응하여 ‘평화적 두 국가’를 목표로 명시하는 대칭적 기조를 수립하지 않고, 선문답을 연상케 하는 비대칭적 기조를 지속하는 것은 남북관계의 작동이 상대의 호응에서 시작된다는 기본원리를 간과한 공허한 접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비전으로 ‘한반도 평화공존과 공동성장’을 제기했으나, 이 역시 관례적이고 상투적인 어법으로 질적 전환기에 들어선 남북관계를 반영한 전환적 발상을 담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
 
남북관계의 목표는 방향이나 비전보다 좀더 현실반응적이고 실현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위원회가 제시한 3대 목표는 남북 간 평화공존 제도화, 한반도 공동성장 기반 구축, 전쟁과 핵 없는 한반도 실현이다. 이러한 목표들은 기본방향이나 비전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동어반복일뿐더러 장기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가치들을 나열하여 스스로 비현실적이란 것을 드러낸다.
 
과거에 오바마 미 대통령이 프라하선언에서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하면서도 정작 대북 핵협상에서 ‘전략적 인내’로 8년을 탕진하여 조선의 핵무장을 가속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세계는 그의 구상과는 정반대로 새로운 핵무장 도미노에 휩싸이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위원회가 3대 추진원칙으로 북한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을 명시한 것은 최근 북측의 대남 기조에 비추어 현실반응성이 높은 용어들을 채택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재명정부는 이러한 원칙 아래 남북긴장을 유발하는 행동을 억제하면서 대화채널을 복원하는 것을 우선과제로 추진하면서 남북기본협정 체결, 교류협력 제도 복원, DMZ의 평화적 이용 등 평화공존의 제도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목표와 추진원칙의 구체적인 산물이어야 할 중점추진과제는 다시 추상의 세계로 회귀했다. 위원회는 6대 중점추진과제로 화해·협력의 남북관계 재정립 및 평화공존 제도화,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체제 진전 추구, 국민이 공감하는 호혜적 남북 교류협력 추진, 분단고통 해소와 인도적 문제해결, 한반도 평화경제 및 공동성장의 미래준비, 평화·통일 공감대를 위한 국민참여 및 국제협력 활성화를 선정했다.
 
 

두 국가론의 역설 : 전쟁 가능성의 극적 감소?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s Security Studies Program의 선임연구원 월시(Jim Walsh)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선의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이 역설적으로 한반도의 전쟁발발 가능성을 극적으로 감소시켰다고 주장했다.
 
 

Jim Walsh

 
 
월시는 핵무장으로 인해 조성된 방어적 균형(defensive equilibrium)을 이룬 조선이 두 국가론과 러시아와의 군사동맹 등으로 방어적 생존전략으로 전환했다고 진단하고, 종래의 대남 통일론이 사실상 무력에 의한 흡수 및 지배를 의미했다는 점에서 두 국가론이 역설적으로 전쟁 가능성을 극적으로 줄였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로 인해 조선은 한국과의 대화에 응해야 할 대내외적 동기 또한 급격하게 감퇴했을 것이다.
 
윌시의 진단은 한국이 북의 전략적 대전환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이를 장기적으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의 구조화를 위한 디딤돌로 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윤석열정부(좌)와 이재명정부(우)의 남북관계기본계획 비교 : 연합뉴스

 
 
하지만 위원회가 전임 윤석열정부의 4차 기본계획을 폐기하고 새로운 계획을 추진한다고 하면서도 중점추진과제에서 상호존중의 제스추어를 제도적으로 구체화하는 정공법이 아니라 관성적 개념 및 용어를 답습한 것은 ‘남북관계 암흑기’를 초래한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정부와 질적 차별성을 찾기 어렵게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3월 19일 신형 탱크에 탑승한 김정은-김주애 부녀의 모습이 로동신문 등에 공개됐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식목일(4.5)보다 보름 이상 빠른 조선의 식수절(3.14)에 김정은-김주애 부녀가 흙을 옮기는 장면이 로동신문 등에 보도됐다. (사진=연합뉴스)

 
 
 
이처럼 ‘평화적 두 국가’에 대한 명시적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청와대의 기류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통일부·외교부 업무보고에서 “헌법 3조(영토조항)와 관련된 ‘두 국가론’에 대한 입장정리가 전략적 포석이 될 것”(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이란 견해가 인용되자, 이 대통령은 “개헌이 매우 어렵다. 정책은 현실에 기반을 둬야지, 이상적인 건 꿈일 뿐”이라고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보혁을 불문하고 한국 정부가 조선(DPRK)의 ‘두 국가’에 조응하는 대칭적 기조 및 전략을 수립하지 않고,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를 연상케 하는 비대칭적 관성을 지속하는 것은 야구경기의 ‘이닝 이터(inning eater)와 같이 5년씩 시간을 흘려보내 100년(1945~2045)을 채우려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