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레믈의서기장들 3

끄레믈의 서기장들(Ⅴ) 뻬레스뜨로이카

김태항(정치학 박사) 미하일 쎄르게이비치 고르바초프(Михаил Сергеевич Горбачев) 2 스따브로뽈 시절 고르바초프 부부는 대학 졸업 후 1955년부터 스따브로뽈시에서 살기 시작했다. 당시 스따브로뽈시의 인구는 약 14만 명이었다. 이 도시는 스따브로뽈스키 끄라이(Ставропольский край)라는 지역의 지방 수도였는데, 스따브로뽈 지역의 크기는 스위스의 두배에 달했다. 고르바초프는 공산주의 청년조직인 컴싸몰(Комсомол)의 선전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고속 승진을 하여 1966년 35세 때 스따브로뽈시당 제1서기, 39세 때인 1970년에는 스따브로뽈 지역당 제1서기, 그리고 이듬해인 1971년엔 당시 정치국원 겸 서기이자 고르바초프와 동향인 표도르 꿀라꼬프(Ф. ..

끄레믈의 서기장들(Ⅳ) 김일성과의 만남

김태항(정치학 박사) 깐스딴찐 우스찌노비취 체르녠까(Константин Устинович Черненко) 김일성의 소련 방문 개인의 통치 철학은 고사하고, 대외정책상의 명확한 노선조차 없는 무기력한 체르녠까가, 희한하게도 김일성의 소련 방문 건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까게베(KGB)로부터 김일성이 남한의 군국주의를 압도하기 위해, 무기 원조 및 그 이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내용에 대해 사전 브리핑을 받았다. 체르녠까는 한국전쟁에 관한 예전 자료들을 검토했다. 1950년 외교문서에는 김일성이 1월 19일 한반도 무력 통일에 관한 문제를 모스크바에 제기했다는 사실이 적시되어 있었다. 이는 김일성이 당시 북한 주재 소련 대사였던 쩨렌찌 쉬띠꼬프(Т. Ф. Штыков)에게 남침 문제를 재차 강조했..

끄레믈의 서기장들(Ⅲ) KAL 007편 격추사건

김태항(정치학 박사) 유리 블라지미라비취 안드로뽀프(Юрий Владимирович Андропов) 2 KAL 007편 격추사건 안드로뽀프 시기의 소련은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황이었다. 안드로뽀프보다 나이가 세 살 많지만, 훨씬 건강하고 정력적인 레이건(R. W. Reagan)이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규정하면서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더욱이 소련 경제를 겨우 지탱해주었던 유가가 급락을 하자 성장률은 급강하했고, 아프가니스탄은 유혈사태의 장기화로 돈 먹는 하마가 됐으며, 무엇보다도 소련 지도부를 패닉 상태에 빠지게 만든 것은, 이른바 스타워즈(Starwars) 계획으로도 불리는 레이건의 전략방위구상(SDI)이었다. 우주 공간에서 레이저 탑재 인공위성 등을 이용해 소련의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