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국가의 딜레마

미얀마의 비취(Jade)에 투영된 국가의 딜레마

twinkoreas studycamp 2021. 3. 30. 20:04

지난 27일 ‘미얀마군의 날’에 민간인에 대한 살상이 자행돼 세계인들이 분노하는 가운데 당일 군부가 연회를 벌이는 자리에 중국,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베트남, 라오스, 태국의 대표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쿠데타를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최고사령관은 “국가를 위해 쿠데타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국가는 무엇이고, 흘라잉은 "짐이 곧 국가”라고 했던 루이 14세와 어떻게 다른가?

 

2011년부터 미얀마는 새로운 정부가 무도한 군사독재가 지배하는 버림받은 국가에서 전면적인 정치, 경제 개혁을 통해서 시민국가로 전환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이러한 약속은 10년만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국가가 개인에 우선한다는 관념에 기초한 국가주의는 수많은 국가에서 군사쿠데타의 명분과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 원천이자 국가의 안위를 지상의 가치로 내세우면서 사적 이득을 추구하는 개인과 집단의 이데올로기였다.

 

 

좋은 국가주의, 나쁜 국가주의?

 

국가주의는 정치적 층위에서 전체주의나 파시즘과 같이 국가권력이 시민사회에 대해 억압성을 띠고 있는 현상 그 자체나, 그것을 가능케 하는 국가와 시민사회 간의 힘의 관계지형을 의미한다. 또한 경제적 층위에서는 일련의 사회경제체제를 운영하고 작동시키는 주요 원리와 정책 패러다임이라는 측면에서 국가가 핵심적인 주체의 위상과 역할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손호철·김윤철, 국가주의 지배담론).

 

 

 

 

 

"민주주의란 국가라는 땅의 주인이 (공정한 선거에 의해서) 바뀌는 체제를 뜻한다."

 

 

홍일립은 <국가의 딜레마>에서 국가주의를 고대에서 현대까지 상습적으로 사용된 ‘통치자 이데올로기’로 규정하고, “국가주의자들은 국가가 우리의 삶을 안전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한 수단임을 망각하고 국가 그 자체가 목적인 양 호도한다”고 질타했다.

 

나아가서 저자는 국가주의자들을 국가라는 가상의 신을 만들어 인민을 위협하고 절대적 복종을 강요하는 자들, 정치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놓지 않으려는 자들로 규정하였다. 전쟁과 국가주의는 서로 구성적이다. 역사적으로 좋은 전쟁이 없었듯이 좋은 국가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

 

“국가주의가 극단으로 치닫으면 국가숭배(Statolatry)의 종교로 미신화된다. 국가숭배 이데올로기에서는 선한 것은 위대한 ‘신 국가’(god state)이고, 나쁜 것은 이기적 인간의 천박한 개인주의(rugged individualism)이다.”(국가의 딜레마, 82쪽)

 

미제스(Ludwig von Mises)가 “국가는 문명과 공공복리의 대표이며 개인은 불쌍한 놈이거나 사악한 바보”라고 표현한 것은 개인에 대한 국가의 압도적 우위와 이에 따른 국가주의적 폐해를 은유한 것이다.

 

 

미얀마 비취산업에 투영된 '벌거벗은 탐욕' 

 

국제사회가 제기해 온 미얀마 비취(jade) 관련 의혹들은 미얀마라는 국가의 허울 속에 숨겨진 ‘또 하나의 국가’를 떠올리게 한다. 중국과도 연결된 '비취 커넥션'은 앞으로 미얀마가 정상적인 국가로 탈바꿈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과정이  매우 험난할 것임을 시사한다.   

 

<비취 : 미얀마의 거대한 국가비밀>(글로벌 위트니스)

 

글로벌 위트니스(Global Witness)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1년여에 걸쳐 미얀마 북부의 비취산업 전반을 탐사한 결과를 담은 <Jade: Myanmar's Big State Secret>(2015.10.23)를 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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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미얀마 정부가 비취(jade․옥)로 벌어들인 돈은 310억 달러(약 35조원) 정도로 GDP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이지만 국고와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비취 광산은 군부 엘리트, 마약왕들, 그리고 군벌 통치기에 밀월관계를 맺은 기업들의 네트워크에 의해서 은밀하게 통제되고 있다.

 

 

비취 광산에서 버려진 부스러기 더미 속에서 비취 조각을 찾는 주민들

 

<Jade: Myanmar's Big State Secret>의 1장에서는 수백억 달러의 국가비밀, 비취에서 벌어들인 돈은 어디로 가는가를 추적하고, 뇌물 탈세 돈세탁 가격조작 저가반출 및 밀수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어서 공식계정과 비공식계정, 비치광산의 큰 손들, 중국의 이해관계, 채굴의 기계화에 따른 문제, 군부와 정계의 유착과 그 일가를 분석하였다.

 

특히 비취산업의 중요한 인물로 군사쿠데타에서 민 아웅 흘라잉의 전임자인 ‘19년 장기집권’ 탄 쉐(Than Shwe)를 비롯해서 온 민(Ohn Myint), 마웅 마웅 테인(Maung Maung Thein) 등을 조명하였다.

 

 

비취의 주요 생산지대(글로벌 위트니스)

 

주요한 기업으로는 군이 소유한 미얀마경제지주회사(Myanma Economic Holdings Limited), 유착 기업으로 에버 위너(Ever Winner)를 비롯해서 KBZ Group, 아시아월드(Asiaworld), Htoo Group 등을 살펴보았다. 또한 와연합주(United Wa State)의 군대 및 정당 등 내전 당사자 그룹, 해외 기업들도 주목하였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거대한 ‘비취 마피아’를 구축하여 정상적인 국가발전이나 국민의 후생복지와 상관 없는 막대한 지하경제를 형성하여 사익을 나누고 있다.

 

비취 광풍으로 인한 지역사회 파괴에 항의하는 현지 주민들(글로벌 위트니스)

 

반면에 지역주민들은 무분별한 채굴과 광범한 환경파괴로 인하여 삶의 터전을 잃고, 비취광산에서 배출한 잔석 더미에서 비취 조각을 찾다가 때론 경비병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기도 한다. 

 

비취 광산에서 버리는 쓰레기에서 비취 조각을 찾는 주민들(글로벌 위트니스)

 

국가주의의 병폐 중 하나는 겉으로 국가를 내세우면서 실제는 권력집단의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국가의 딜레마’의 저자는 국가주의란 본질적으로 그런 속성을 갖기 때문에 각국 국가주의의 우열을 따져본들 정도 차이가 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고 본다. 

 

 

커다란 비취 원석을 거래하는 장면(글로벌 위트니스)

 

최근 미얀마 군의 민간인 살상사태와 오랜 시간 동안 숨겨진 비취의 비밀은 국가와 군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국가재산인 비취광산에서 나오는 경제적 이득을 국민 복지와 해당 지역의 보상을 위해 사용하고, 군이 무기를 비무장 민간인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미얀미인들의 요구는 국가주의적 발상(분배)으로 보아도 근거가 있고, 개인주의적 발상(자유)으로 보아도 기본적 요구이다. 

 

이런 점에서 미얀마 군부의 현주소는 국가주의도 아닌 중국 군벌시대(1916~1928)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것도 50년이나 지속되다가 잠시 민간정부와 동거하다가 다시 군벌시대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국가주의, 국가의 사유화, 재가산화, 그리고 내부자

 

 

 

상식

 

18세기의 풍운아 페인(Thomas Paine)은 국가의 장벽을 넘나든 국제적 혁명가였다는 점에서 결이 좀 다르기는 하지만 20세기의 풍운아 체 게바라의 예고편이었다.

 

페인은 <Common Sense>에서 "세계의 변화는 이성보다 시간에 의해 이뤄진다"(Time makes more converts than reason)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어쩌면 이성의 탈을 쓴 광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는지도 모른다.

 

그는 정부의 기원에 대하여 “낙원의 안식처가 폐허가 된 자리에 왕들의 궁전이 세워진다”(the palaces of kings are built on the ruins of the bowers of paradise)고 일갈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약탈 및 살상의 잔해 위에 국가가 세워지고 왕이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소수 권력자들의 착취집단이 등장하는 간명한 원리를 자못 낭만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근현대적 의미에서 사회의 형성이 취약한 미얀마에서 일부 직종을 중심으로 국제적 민간교류를 수행하는 반면에 군사정부가 무도한 처벌자로 부각된 현실은 페인의 통찰을 상기시킨다.

 

페인은 정부와 사회를 구분하였다. “사회는 우리의 필요로 만들어지고, 정부는 우리의 사악함으로 만들어진다.”(Society is produced by our wants, and government by our wickedness)

 

그가 보기에 사회는 우의를 모아서 우리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증진하지만, 정부는 우리의 악행을 억제하여 우리의 행복을 소극적으로 증진한다. 나아가서 “사회는 교류를 촉진하지만 정부는 차별을 만들고, 사회가 후원자라면 정부는 처벌자”라고 규정하였다.

 

최근에 재조명되고 있는 미얀마 군사정부의 폐해는 국가주의의 문제를 넘어서 국가의 사유화, 국가(자원)의 가산화(patrimonialization·家産化)의 문제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잡은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주의가 그러하듯이 정도와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다른 나라에서도 국가권력의 사유화 현상, 국가적 자원의 가산화 현상이 나타난다.

 

현대의 국가들은 과거의 왕정시대, 군벌시대의 세습화 및 가산화를 방지하는 대안적 체제를 발전시켰지만, 왕족의 권위가 아니라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이용한 재가산화(repatrimonialization)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경향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성향을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미국 정치가 내부자들(Insiders)에 의한 재가산화와 비토크라시(Vetocracy)의 문제로 쇠퇴한다고 진단했다(Political Order and Political Decay).

 

현대의 국가기구들은 법과 제도에 기초해서 전문성과 자격을 갖춘 공직자 및 종사자에 의해서 ‘사적인 이해가 개입되지 않는’(impersonal) 규칙이 지배하고, 편파적이지 않은(impartial) 판단과 편견이 없는(unbiased) 중립적(neutral)이고 비당파적인(non-partisan) 공권력 집행과 행정 서비스를 표방한다.

 

하지만 모든 나라는 내부자(insider)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미헬스가 말한 권력의 소수 집중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인적 규모와 영역의 다양성 및 광범위로 인하여 현대국가의 딜레마는 곧 ‘내부자의 문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국내에서 LH 투기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공적 영역에 만연한 자기목적화와 모럴 해저드에 비추어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것은 또한 어떤 특정 정파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이러한 내부자 문제는 과거 소연방(Soviet Union)의 노멘 클라투라(새로운 계급), 중국의 태자당과 같이 사회주의국가에서도 나타났고, 국내에서도 군사독재시대의 하나회와 같은 집단에서 유사하게 드러났다. 어디 그 뿐이랴?

 

결론적으로 미얀마 유혈진압과 비취 커넥션에 투영된 뒤틀린 국가주의, 공권력의 오남용, 국가의 사유화, 세습왕정을 폐지한 자칭 '공화국'에 만연한 재가산화, 내부자 문제는 만국 공통의 보편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국가의 딜레마>를 점철하는 근본적 의문들은 세계인에게 던지는 현재진행형 화두라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