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국가의 딜레마

국가의 딜레마 : 스푸너와 지바고

twinkoreas studycamp 2021. 3. 6. 13:56

‘국가의 딜레마’는 국가의 정당성, 헌법의 정당성에 대한 무비판적인 통념을 거부하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현대인들은 국가에 대해 끊임 없이 의심하고 깊게 사유하여 통찰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미군정을 통해서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하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한국에서 오랜 세월 동안 미국의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선망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렇다 보니 미국 내부의 상이한 관점과 다양한 시각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저자는 19세기의 미국인 스푸너(Lysander Spooner, 1808~1887)를 호출하였다. 스푸너는 미국 헌법이 시민들의 광범한 참여에 의한 사회계약의 산물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미국 헌법을 극소수의 백인 남성이 양해한 일시적 동의로 간주하였고, 후대의 미국인들에게 구속력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였다.

 

스푸너(사진=위키피디아)

 

현대의 정치학자 달(Robert A. Dahl)도 미국 헌법이 2백년 전에 대부분이 노예소유주였던 39명에 의해 작성되었으며, 2천명도 안되는 사람들이 비준한 문서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미국 헌법에 대한 근본적 의문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역대 정부는 그 헌법에 기초하여 강력한 관료체제를 구축하고 방대한 업무를 수행하였고, 미국의 관료제와 행정학은 세계최고 수준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행정학이론가 흄멜(Ralph P. Hummel)은 미국 관료체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허상을 꼬집었다. 그에 따르면 관료는 사람이 아닌 사례를 다루고, 정의·자유·폭력·병폐·죽음 등과 같은 인간의 생로병사가 아니라 능률과 통제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시민들과 같은 말을 쓰는 것 같지만 자신들만의 은밀한 언어를 쓰면서 일을 어떻게 만들고 홍보할 것인가에 골몰한다. 결론적으로 흄멜은 집단으로서 관료에 대해서 머리와 영혼이 없는 새로운 인간유형이고, 관료제는 대국민 봉사기구가 아니라 지배 및 통제기구로 바라보았다(Ralph P. Hummel, The Bureaucratic Experience : The Post-Modern Challenge).

 

현대 사회의 관료제적 성격과 병폐는 정부조직 뿐만 아니라 공기업, 공공기관, 군대, 법원, 정당, 의회, 병원, 교육기관을 넘어 일정한 수준의 규모와 위계서열이 지배하는 대규모 조직에서 광범하게 나타난다.

 

역사적으로 국가의 일개 부속품이기를 거부하는 개인들은 무수히 존재했다. 미국 헌법의 정당성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스푸너를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자로 규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어떤 이념을 신봉하거나 애국심을 갖는 사람이라도 개인과 국가의 긴장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 계급과 집단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주의체제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영화 닥터 지바고. 미 CIA는 원작의 출간을 지원하면서 다른 수단에 의한 대소 봉쇄정책으로 활용하였다는 증언도 있다(The CIA Used An Epic Love Story To Sow Unrest Among Soviet Citizens During The Cold War, Alison Flood, The Guardian, 2014.4) 그러나 소비에트체제의 최장기 외상이었던 그로미코는 회고록(1988)에서 파스테르나크와 같은 위대한 작가를 소연방의 작가회의에서 배제하고 추방한 조치는 부당한 것이었다고 술회하였다.

 

러시아혁명의 초기에 상당수 지식인들은 차르체제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연 사회주의이념을 지지하면서 인류의 이상, 종교적 이상을 부여하였다. 조국 러시아를 자부하고 사랑했던 파스테르나크도 사회주의적 이상을 지지하였지만, 볼세비키 혁명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국가가 자신이 생각했던 사랑과 우애에 기초한 국가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깨달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 이것도 아니구나” 하는 그의 실망과 좌절로 인한 묵시론적·종말론적 세계관이 ‘닥터 지바고’에 투영되었다는 관점이 있다. “파스테르나크의 작품에서 묵시록 정신과 종말론적 사상은 도스토옙스키, 솔로비요프 전통처럼 두 유형의 종말론-개인적, 국가적-으로 구조화됐다.”(임혜영, 파스테르나크의 묵시록 모티프 연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스테르나크의 종말론은 국내에 널리 알려진 영화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 장면처럼 ‘밝은 종말론’이다.

 

“지식인의 혁명은 동족과 가족이 서로 분열되고 파멸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불운의 힘-발츠에서부터, 톨스토이주의자인 무정부주의자들과 볼세비키 리베리, 그리고 비당원 파샤에 이르는 사회주의자들에게서 보이듯, 지식인의 혁명과 국가는, ‘백치’에서 예언됐고 ‘대심문관’과 ‘짧은 소설’에서 구현된 적그리스도와 그의 사회주의의 모습을 띤다. 다른 한편, 개인적 종말론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띤 주인공과 안티 주인공의 대립을 통해 구현된다.

 

양자의 종말론은 ‘닥터 지바고’에서 본격화된다. 후자의 종말론은 역사의 가짜 심판자 파샤 안티포프를 통해 제시된다. 전자의 종말론은 사랑의 종말을 겪는 주인공을 통해 제시되는 바, 여성의 이중성을 인정해 두 여성을 포용한 그는 파멸 순간에 삶을 찬미하는 시 창작에 생명을 바침으로써 부활한다. 도스토옙스키, 솔로비요프 전통과 다른 파스테르나크의 밝은 종말론이 탄생한 것이다.”(임혜영)

 

 

국가는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때 딜레마를 넘어 숙명으로 다가온다. 조국을 떠나지 못한 파스테르나크와 조국을 떠났지만 돌아 온 솔제니친(Aleksandr I. Solzhenitsyn)은 개인과 국가의 문제에 대한 심원한 증언을 남겼다.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