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국가(World Politics)/우크라이나(Ukraine)

우크라이나 중립화의 딜레마

twinkoreas studycamp 2022. 3. 31. 17:55

우크라이나 정부가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와 독일, 터키, 캐나다, 이탈리아, 폴란드, 이스라엘이 자국의 안전을 보장하는 중립화 방안을 제안했다.

 

이 방안은 외부의 침공에 안전보장국들이 3일 이내에 군사적으로 지원하여 우크라이나의 중립성과 안보를 보장하는 것을 핵심적 내용으로 하고, 구체적으로 비행금지 구역설정우크라이나의 EU가입 등이 포함되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중립화 방안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도네츠크 및 루한스크를 일단 제외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이들 지역과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마리우폴 일대를 러시아가 순순히 포기할 지는 의문이다.

 

 

영공의 중립화 보장은 중립국 불가침의 핵심적 조건이다.

 

 

노르딕 밸런스(Nordic Balance)와 흑해 언밸런스(Black Sea Unbalance)

 

러시아와 인접해 있으면서도 우크라이나와 북유럽의 대조적인 상황은 중립화의 문제와 함께 세력균형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북유럽의 세력균형은 스웨덴의 1814년 전시중립을 계기로 하여 지속적으로 추구되었는데, 자위력에 기초한 스웨덴과 핀란드의 무장중립노선을 핵심으로 하는 르딕 밸런스’(Nordic Balance)를 창출하였다.

 

노르딕 밸런스의 핵심은 스웨덴과 핀란드의 중립노선이다. 두 나라는 NATO에 가입하지 않고 러시아와 NATO 회원국인 덴마크, 아이슬란드, 노르웨이(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완충지대로 남았다.

 

스웨덴의 복지국가와 핀란드의 교육혁명, 그리고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가장 성공적인 국가모델로 지목한 덴마크의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체제는 세력균형에 기초한 평화안보의 질서에 기반하여 세계적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노르딕 국가들이 소연방(Soviet Union)과 반목하면서 항상적인 안보불안과 무한정한 군비경쟁을 감수했다면, 발틱해(Baltic Sea) 주변국들의 성공적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유럽의 세력균형을 중동(Middle East)에 투사한다면, 핵보유국인 이스라엘을 핵보유국인 소연방으로 가정하여 이라크와 이란을 덴마크와 노르웨이에 비유할 수 있다.

 

중동문제 연구자 게로니크(Geronik)는 요르단과 팔레스타인이 완충국가(buffer states)로서 스웨덴과 핀란드처럼 역내 세력균형을 가능케 하는 중립국으로 역할할 수 있다고 보았다

 

스웨덴은 완충국가로서 중립을 자임하면서도 미·소의 갈등이 역내 분쟁으로 비화하면 자국의 영토에서 전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 아래 근해 및 주변국에서 차단하고, 최악의 경우에 국내에서 물리치기 위한 군사적 방비를 강화해 왔다.

 

반면에 흑해에 인접한 우크라이나, 몰도바와 내륙으로 이어지는 조지아(그루지아) 등은 지정학적으로 허약한 완충국가의 운명에 갇혀 있다. 군사적으로 세계 최상위권인 러시아와 세력균형을 이룰 수 있는 대안이 부재하다.

 

합종(合從)을 요구하는 러시아의 압력에 대항하여 연횡(連橫)을 구축할 수 있는 국가들이 부재한 것이다. 터키를 고려한다고 해도 이들 국가의 연합으로는 막강한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힘의 불균형이 너무 크다.

 

 

 

 

 

허약한 완충국가들의 중립화 실패 : 무위의 결여

 

우크라이나 중립화는 전쟁의 비극을 가능한 항구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이성적 방안이지만, 역사적 경험은 이러한 선의를 충족하지 못했다.

 

허약한 완충국가였던 벨기에, 불가리아 등의 중립화는 제1, 2차세계대전에서 무기력하게 붕괴했고, 이들 국가들은 중립화 대신에 자의반 타의반 강대국으로의 편승(bandwagon)이라는 합종의 길을 걷게 되었다.

 

중과 다수의 주변국들이 참여한 라오스의 중립화는 외적 원심력과 내적 분열이 결합하여 내전이 재발하고, 친중 코뮤니스트 연합전선 파테트라오(Pathet Lao)가 승리하면서 원인무효가 되어버렸다.

 

20세기 초의 대한제국은 영세중립을 추구했지만 군사적으로 무방비 상태에서 국제적 보장을 도출하지 못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강점되었다. 한국전쟁 전후에도 한반도의 중립화 구상이 나라 안팎에서 논의되었지만,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소실되었다.

 

이러한 실패사례들의 교훈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의 중립화가 실현되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려면 자력방어의 능력과 확고한 중립화 의지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적 안전보장은 조약국들이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아도 우크라이나가 강제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 경험은 허약한 완충국가들이 중립화만으로 안전보장의 무임승차를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반면에 일반화하기 어려운 조건들이 있기는 하지만, 산악지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무위를 갖추려고 했던 스위스의 영세무장중립은 성공적 사례로 평가되어 왔다.

 

완충국의 중립화는 무장중립국으로서 무위(armed suasion), 내적으로 강력한 중립화 의지, 역내 세력균형 등에 기초해서 국제적 안전보장을 획득하지 않으면 위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가 비핵화의 대가로 받았던 부다페스트 각서는 20여년이 지나자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강대국의 역관계가 세력 불균형 상태로 변화하면, 허약한 완충국가를 위한 안전보장 문서는 언제든 실효성을 상실할 수 있다.

 

 

¹Arie Geronik, Adoption of the Nordic Balance system as a security regime to the Middle E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