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Twin Koreas

국시(國是)가 실종된 대선, 안철수 공개서신 의의와 한계

twinkoreas studycamp 2022. 1. 23. 15:00

 

BBC(북측은 극초음미사일이 700km 표적에 명중했다고 주장했다.)

 

2022년 3월9일 대선에서 한반도문제 및 남북관계에 대한 어젠다와 진지한 논의가 실종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각 당의 후보들이 안보, 국방, 외교 등에 대해서 수많은 정책 및 공약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비판이 나오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비핵화 협상이 사실상 종말을 고한 조건에서 한반도문제에 대한 구조적이고 입체적인 국가방략을 제시할 수 있는 비전과 의지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종전선언을 지지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마찬가지다.

 

둘째는 선거철에 상투적으로 제기하는 국방강화, 군복무자 우대 등은 한반도문제의 근본적 해결방안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입대자의 처우와 관련된 현금지원 공약은 병역의무에 대한 국가의 정당한 보상이란 측면에서 진일보한 것이지만 이러한 종류의 캠페인이 만연하는 것은 한반도문제의 엄중함에 비추어 ‘반국적(half a country) 안일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셋째는 북측에서 미 바이든 행정부의 사실상 ‘전략적 인내’ 회귀와 한국 대선의 무사태평(?)에 보란 듯이 미사일을 연속으로 발사하고, 그것도 모자라 ‘신뢰구축 조치 전면 재고’(1.20)를 공언했다. 이는 2017년 전쟁위기로 치달았던 핵실험과 ICBM 발사를 재개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읽혀지고 있다.

 

넷째는 이런 기류 속에서 북측의 극초음속 미사일 위협에 대해서 ‘선제타격’ 논란이 일면서 남측의 고질적인 적대주의가 재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의 위협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과 북에 대한 적대관계 강화는 정비례가 아니고, 때론 반비례 관계에 가깝다는 점에서 선제타격론은 변화된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과거회귀적 오판이라는 비판이 국내외에 걸쳐 확산되었다.

 

마지막으로 보수, 중도, 진보를 막론하고 미중 패권경쟁의 전환기에 가중되는 한반도의 불안정에 대한 근본적 해법을 ‘비핵화’로 환치하는 편의적 발상에 안주하면서, 비핵화와 통일의 지정학 불능성을 고려한 진화된 어젠다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양측이 국가로서 인정하는 방안(개헌의제), 비핵화 이전에 북핵의 중립화를 위한 모색(영세무장중립 프로그램), 코로나방역 인도주의 협력 및 대북 경제제재 완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과 관련된 어젠다의 진일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안철수후보 페이스북)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자신의 생각을 좀더 포괄적으로 담은 공개서신을 보낸 것은 적잖은 의미가 있다. 역대선거에서 후보들은 대북문제에 대해서 일회적이고 파편적인 언급, 상투적인 정책공약집으로 면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특히 감정적, 정서적 측면을 포함하여)을 정연하게 밝혀서 대선 이후 불확실성을 줄이고 대화의 상대에게 예측가능한 미래상을 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민족내부의 특수한 관계는 물론이고 국제관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에서는 이번 공개서신의 핵심을 김 위원장이 2018년 비핵화협상 이전으로 회귀하지 말 것에 대한 강력한 요청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안 후보는 일관되게 대화와 비핵화 논의를 재개해서 쌍방이 안정과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북측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점과 미국이 쉽사리 제재를 거둬들이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남측의 대응은 무기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또한 중국의 대미전략 및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따라 북측의 무력증강은 지속되고, 남측의 무력증강도 불가피해지면서 유감스럽게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다시 고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mbc)

 

이러한 기류를 고려할 때 비핵화와 대화재개 요청은 상대에게 공허한 제안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개서신에는 몇 가지 음미할 만한 대목들이 담겨 있다. 후보의 전반적인 생각들을 정연하게 담은 서신이라는 형식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일 것이다.

 

첫째는 김정은 위원장이 생각하는 ‘새 판’에 대한 개방적 접근이다. 여건이 된다면 북측의 새판짜기에 호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코로나19 극복에 대한 협력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어느 한 국가에서만 퇴치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군사적 측면을 배제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한 수용(북)과 적극적 노력(남과 국제사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같은 민족이 어려움에 처하는 것을 진심으로 원치 않는다”는 대목에서 보여지듯 미국과 UN의 경제제재에 대한 완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는 점이다. 안 후보는 “당선되면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대북제재 완화에 대해 국제사회를 설득해 나갈 것을 약속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시(國是)는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안 후보의 G5비전이나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경제강국론은 한반도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노력과 병행되지 않으면 실현성이 낮다. 이른바 G7(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에서 한국과 같이 국가안보의 불안정성이 심각한 나라는 없다.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정부에서부터 군사정권에 이르기까지 국시는 사실상 반공이었다. 최근에 멸공 구호가 희화적으로 논란이 되었지만, 1986년 유성환 의원(신한민주당)은 “우리나라의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고 말했다가 구속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시는 통일로 돌아왔고 헌법에 명시화되었다.

 

하지만 1991년 남북의 UN 동시가입으로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가 굳어진지 30년이 흘렀다. 21세기의 초반을 넘어가는 대한민국과 조선(DPRK)의 국시는 과연 무엇인가? 특히 한국의 국시는 경제대국인가, 전략국가인가, 중견국가인가?

 

안철수 후보의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된 최진석 명예교수의 ‘전략국가론’이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언급했던 ‘전략적 지위’는 남과 북이 지금처럼 ‘반쪽 국가주의’(Statism of half a country)에 기반한 통일지상주의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가망성이 희박하다. 그렇다고 해서 양측이 각자 잘 살면서 이웃처럼 지내자는 것은 한반도문제의 뿌리(분쟁의 근본적 원인)를 간과한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향후 5년(2022~2026)은 세계정치의 판도와 한국의 국력 및 위상에 격동을 예고하고 있다. 어쩌면 국력상승의 정점(peak)를 경과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중차대한 시점에서 한반도국가의 존재양식(being mode)에 대한 논의 및 어젠다가 실종된 대선은 국가적으로 돌아올 수 없는 중대한 기회와 시간을 놓치는 것이라는 경각심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장기적인 경제제재에 코로나까지 겹친 북에게더욱 절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통일지상주의의 지정학적 불능성과 한반도문제에 대한 미국의 영속적 회피, 그리고 전쟁방지를 위한 극도의 군사적 긴장과 무력증강의 반복이라는 ‘최적 긴장(Goldilocks Tension)’이 뒤엉킨 ‘뫼비우스의 띠’를 풀 것인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께 드리는 공개 서신> (전문)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 안철수입니다.

 

지난 20일 조선중앙통신의 ‘신뢰구축 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겠다’는 발표를 보고 공개 서신을 띄웁니다.

 

저는 이것이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유예조치 해제>가 아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핵실험과 ICBM 발사 재개는 좋은 방법이 아닐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이 오랜 UN 제재에 코로나19까지 덮쳐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잘 압니다.

 

문재인 정부의 말만 믿고 막상 부딪쳐보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고. 북미 관계도 평행선만 달리니 답답할 것입니다.

 

앞길이 불투명하니 지도력 훼손이 우려되어, 내부 동요를 막고 결속력을 강화시키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핵실험과 ICBM 발사 재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무력시위나 벼랑 끝 전술은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에 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내외로 어려운 지금, 김 위원장은 지도력을 입증하는 성과가 간절할 것입니다.

 

특히 2월 16일 부친 생일인 광명성절에는 인민들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어야 하는 정치적 부담이 클 것입니다.

 

한미 연합훈련 및 미국의 대북 제재조치 등을 싸잡아 비난하며, 취임 1년을 맞은 바이든 미 행정부를 직접 겨냥하는 모습에서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지금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핵실험과 ICBM 발사 재개를 통한 강경 조치로 내부를 단속하고, 미국의 관심과 주목도를 높이는 새 판을 깔아 다시 협상하고 싶을 것입니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대선주자들에게도 자기를 잊지 말라는 신호를 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그것은 결코 좋은 전략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새 판이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너무나 잘 아는 낡은 판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원하는 새 판은 무력도발로는 결코 짜질 수 없습니다.

 

도발로 미국과 유엔의 불신과 규탄이 강해지면 제재만 더 강화되고, 대한민국의 현 정권은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으니, 북한이 원하는 유리한 판이 될 수 없습니다.

 

김 위원장께서 바라는 새 판은 진정한 비핵화 의지와 실천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곧 다가올 2월 광명성절이나 4월 태양절에 인민들에게 유의미한 성과를 제시하고 싶다면, 더 이상의 무력시위나 도발이 아니라 핵실험과 ICBM 모라토리움을 준수하고, 진정한 비핵화 의지와 북한이 취할 수 있는 계획들을 명확히 밝혀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한민국과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김 위원장이 원하는 새 판에 응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김 위원장께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명확히 밝히시고 대화 재개를 선언하실 것을 진심으로 요청합니다.

 

아울러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을 남북이 함께 극복해 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정치 군사적 측면을 완전히 배제하고 국제사회와 우리의 인도주의 지원을 수용한다면 남북관계 진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팬데믹은 어느 한 국가에서만 퇴치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반도에서 코로나19 퇴치는 남북공동의 과제인 것입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구조 정착을 위해서 비핵화 합의와 평화 유지를 남북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군사행동은 남북관계 진전은 물론 국제사회가 한반도를 바라보는 시각에 부정적 영향만 주는 행위입니다.

 

저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같은 민족이 어려움에 처하는 것을 진심으로 원치 않습니다.

 

북한당국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반하는 군사적 활동을 중단하고 남북간 협의를 통해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하기 위한 노력을 선행한다면, 저는 당선되면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북한의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해 국제사회를 설득해 나갈 것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저는 당선되면 진정성을 갖고 남북관계가 화합과 평화의 길로 가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남북 간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국제사회로부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조를 인정받게 된다면 남북경협 등 우리가 함께 이룰 수 있는 것들은 너무도 많을 것입니다.

 

저는 그날이 올 수 있도록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위원장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2022.1.23. 국민의당 대선후보 안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