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Twin Koreas

김여정의 ‘한 개 국가’ 발언에 대한 톺아보기

twinkoreas studycamp 2021. 9. 21. 00:33

김병규(트윈 코리아 저자)

 

해군 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미사일(SLBM)의 수중발사에 성공하자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도발에 대한 억지력’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 김여정 조선로동당 부부장이 발끈했다. 곧이어 북에서 철도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중국은 궤도로 이동하는 열차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시스템을 광범하게 구축하고 있는데, 양측의 기술협력이 이뤄졌을 개연성이 있다.

 

(www3.nhk.org)

 

두 가지 사건에 대해서 남과 북의 무기경쟁이 군사긴장을 격화시킬 수 있다는 관점을 뛰어넘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군사적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양측이 미사일의 은폐성과 생존력을 증진하여 선제 및 보복능력을 일층 강화하는 경쟁을 가속화함으로써 쌍방의 군사적 균형이 좀더 촘촘하게 구체화되면, 양측으로 하여금 주한미군 주둔 여부에 상관없이 전쟁에 의한 통일을 포기하게 만드는 골디락스(goldilocks)에 도달할 수 있다. 두 번 다시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나약한 평화주의가 아니라 비참한 한국전쟁의 실상과 전략적 교훈(지정학적 불능성)에 따른 한반도의 국가이성이다.

 

이번 발사시험으로 한국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에 이어 일곱 번째로 SLBM의 수중발사에 성공한 나라가 되었다. 지난해 수중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조선(DPRK)을 포함하면 여덟 번째가 된다.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조선은 핵보유국이고, 한국은 유일한 비보유국이다. 이로써 한반도 국가(한국·조선)는 특정한 미사일 분야에서 세계 최상위권에 접근했다. 물론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다양한 무기체계를 종합한 순위는 다소 다를 수 있고, 일본과 독일은 미사일 무기체계를 급속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강력한 잠재력이 있다.

 

둘째, 한반도 국가론의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남과 북이 서로 국가로서 인정하고 승인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양측의 무기개발 등 군비증강에 대한 쌍방의 반응이 어떻게 달라질까?

 

김 부부장은 성명에서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실명과 함께 ‘소위 한 개 국가의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썼다. 문맥으로 보면 ‘일국의 대통령으로서’와 같이 합당하게 전제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른바 일국의 대통령이라면’과 같이 의제적 설정으로 보이지만, 과거에 고위급 인사들의 대남 성명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표현이다.

 

북은 올해 들어서 조선로동당 규약에 기술한 대남전략에 관한 대목을 수정함으로써 국내외 언론에서 새로운 접근이라고 관측하기도 했다.

 

물론 김 부부장은 서두에 ‘남조선’이라는 한국 내부에서 인정하지 않고 국제적으로도 통용되지 않는 칭호를 썼다. 한국 사회도 '북한'이라는 조선 내부에서 인정하지 않고 국제적으로도 통용되지 않는 칭호를 쓰는 것은 매 한가지다.

 

‘한 개 국가’라는 표현은 대한민국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지정학적 실체이자 국제법상 주체라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인정한 셈인데, 조선 로동당 내부에서 그런 측면을 무신경하게 지나쳤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김 부부장은 북의 미사일 시험에 대한 외부의 비난을 언급하면서 남측의 국방중기계획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계획에 따른 조치이고, 공격대상을 특정하여 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을 충분히 억지할 수 있다”고 한 대목을 성토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대통령이 새로운 무기개발에 대해서 "일본의 재침 야욕을 차단하고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반도 지정학의 근본적 변화가 없는 조건에서 남과 북의 군사적 강화는 진의든 핑계든 서로의 위협을 명분으로 삼지 않을 수 없고, 이렇게 말싸움을 하면서 충돌은 하지 않는 방식으로 각자의 전쟁억지력을 증강하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북에서는 주로 미국을 언급한다는 입장이지만, 결론적으로 그게 그거다. 다만 쌍방이 언술적으로 좀더 세심하고 정교한 메시지를 교환하는 것은 불필요한 갈등을 막는데 긴요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북측이 남측의 군비증강을 비난하는 것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지만, 비난의 논조와 근거가 미묘하게 변화한 점들이 있다. 이러한 미묘한 변화들을 피상적으로 바라보고 관성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전향적 접근이라고 할 수 없다.

 

조선의 SLBM 발사장면(nknews.or.jp)

 

 

남북의 무위증강과 관계 재설정의 문제

 

중국의 언론들이 한국의 SLBN 발사에 대해서 비중있게 보도하면서 특별히 비난조의 해석을 덧붙이지 않은 것도 남과 북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일본의 언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은 환영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웃 국가의 무력증강이라고 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이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9일은 2006년 9.19 공동선언, 2018년 9.19 평양 정상회담이 이뤄진 뜻 깊은 날이다. 하지만 2021년 남북관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또한 올해는 1991년 남북이 UN 회원국으로 동반 가입하고, 그해 12월에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한 지 30년이 된다.

 

만약 양측이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가 존립한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인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헌법과 법률을 개정하여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했다면 각자의 군비증강에 대해서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 쌍방이 불요불급한 군비증강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근본적으로 남과 북이 쌍둥이 남매국가(Twin Koreas)로서 정체성을 공유한다면, ‘허약한 완충국가’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각자의 무위(armed suasion)를 강화하는 노력을 비난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축하 성명을 발표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를 강타한 COVID-19 대유행은 각국의 출입국 관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얼마나 더 오랫동안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봉쇄체계가 지속될 지 예단할 수 없지만, 과거의 개방수준으로 돌아가기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개방의 정도를 과거 수준으로 제고하는 과정에서 새롭고 다양한 검역 및 여과장치들을 도입할 것이다.

 

코로나사태가 세계의 국가들에게 강제한 인적 이동의 제한과 비대면 소통방식을 기존의 통일 패러다임을 발전적으로 전환하는 자극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남과 북이 교류협력을 확대하는데서 ‘코로나 비대면 방식’은 물류와 인적 이동의 비대칭적 발전을 선호하는 북의 입장에 부합한다.

 

양측의 ‘반쪽 국가주의’(Statism of half a country)에 내재하는 동상이몽(통일체제에 대한 아전인수)을 고려하면, 양측이 주장하는 국가연합이든 연방제든 간에 실제 진행과정에 증폭될 수 있는 불투명성과 불확실성은 기존에 이룬 각자의 성과마저 위협할 수 있다.

 

남과 북이 생각하는 통일이 어떤 방식과 수준에서 이뤄지더라도 단계적이고 장기적인 과도기의 설정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2020년~2021년의 코로나사태는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에 관한 관성적 사고에 긍정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더불어 4차혁명의 가속화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재탄생을 위한 전환적 발상에 우호적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장기교착 국면으로 회귀한 비핵화협상을 붙잡고 앉아서 기약할 수 없는 허송세월을 보낼 것이 아니라, 국가승인을 비롯한 ‘관계의 정석’으로 돌아가는 심모원려와 대관소찰의 ‘새로운 시작’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