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Twin Koreas

충북동지회와 CCPT에 투영된 반쪽 국가주의

twinkoreas studycamp 2021. 8. 11. 17:21

UN 동시가입 30주년을 맞이한 올해에도 남북관계의 해괴한 풍경들은 여전하다. 한국은 남북교류협력을 민족내부의 거래로 규정하면서도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서는 남의 나라의 일이라고 말한다.

 

최근 충북동지회사건은 조선이 겉으로는 민족내부의 관계와 자주적인 해결을 강조하면서 속으로는 1960년대~70년대에 횡행했던, 이른바 '고정간첩'을 심으려고 한다는 비난을 자초한 퇴행적 사건이다. 

 

지난 2019115일 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중의 갈등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중립을 추구해야 한다’(69.9%)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미 행정부가 희망하는 미국에 대한 선택24.4%였고, 국내 일각에서 심정적으로 제기하는 중국에 대한 선택5.1%에 불과했다.

 

이처럼 대체적 여론이 외교적 중립을 합리적 선택으로 보았지만, 조선이 요구하는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에 대해서는 중단 반대’(61.1%)중단 찬성보다 훨씬 많았다.

 

한국인들은 강대국의 갈등에서 벗어나 한반도 평화의 지속을 희망하지만, 조선의 무력증강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고 방비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국정원의 발표에 따르면 충북동지회사건과 연관된 조선로동당 조직원들은 통일전선부 문화교류국(225국) 소속 리광진과 김세은, 그리고 신원 미상의 남성이다.

 

리는 60년생 ‘김동진’의 여권으로 한국에 수차례 침투한 적이 있으며, 김은 남포사범대 영어과 출신으로 평양외대 불어과 출신 이소영과 결혼하여 외국어 능력을 활용하여 주로 동남아 등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 나머지 한 명은 69년생 ‘조일운’의 여권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1 Combined Command Post Training(CCPT : 연합지휘소훈련)(BBC)

 

811일 오전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김영철 부장이 선의에 적대행위로 대답한 대가로 엄청난 안보위기를 느끼게 해줄 것이라고 밝힌 담화를 보도했다. 앞서 한미연합지휘소 훈련을 비난한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은 조선을 국가로 칭하고 한국을 남조선으로 격하했다. 그런데 남조선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국명이다. 한국이 조선을 북한으로 지칭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국명은 세계에 없다.

 

한국과 조선은 1948년 이후 지정학적 실체였고, 1991년 UN 동시가입으로 쌍방은 국제법적 주체로 확립되었다. 쌍방이 서로 남조선과 북한으로 부르는 것은 전형적인 반쪽 국가주의(Statism of half a country)로서 대국민 통일사기극의 핵심적 담론이다

 

쌍방은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양측의 관계를 편의적으로 '남의 나라'로 칭하기도 한다. 지난 86일 홍현익 국립외교원장 내정자는 YTN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나와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비난하는 조선의 태도에 대해서 남의 나라 연합훈련을 그만두라고 그러는 것은 명백한 주권 간섭의 문제라고 반박했다. 홍 내정자의 발언을 그대로 옮기면 조선과 한국은 별개의 국가이므로 남의 나라의 군사훈련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뜻이다.

 

 

대국민 통일사기극의 엑스트라

 

국정원과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조선 로동당(통일전선부)은 민족내부의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한국의 지역활동가들에게 돈을 주고 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남북관계는 양측의 숙의와 합의에 의해서 발전해 왔다. 쌍방은 어설픈 간섭이나 책략적 관여로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다는 것을 한국전쟁 이후 뼈저리게 깨달았다. 만약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사건의 실체가 사실이라면 관련자들은 역사적 교훈을 저버린 시대착오적 망상을 저지른 것이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북측은 2019622일에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을 참패로 몰고 책임을 황교안에게 들씌워 정치적으로 매장하라’, 1020일에 조국 장관 사퇴는 보수세력의 기획적인 재집권책이다등으로 남측의 국내정치에 개입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한다.

 

이 사건 이전에도 북측의 당기관지, 외곽 선전매체에서 국내정치에 대해서 시시콜콜한 논평을 늘어놓거나 때론 사실관계에도 맞지 않는 비난공세를 퍼부었다. 하지만 쌍방이 상대의 내부정치에 대해서 오지랖 넓게 떠들어봤자 괜히 인심만 잃고 역작용을 초래하여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니다.

 

만약에 북측이 해당지역에서 별로 평판도 좋지 않은 유령단체와 같은 회원들을 실제로 포섭하여 수천만원씩 주면서 발표된 내용과 같이 어줍잖은 책략에 동원하려고 했다면 실망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매우 한심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럴 돈이 있으면 인민에게 공급할 쌀 한 톨이라도 더 챙겨두는 것이 시의에 맞는 일이다.

 

F-35A(KBS)

 

 

F-35A를 탑재할 한국형 경항모 상상도(해군)

 

피의자들은 국정원과 경찰의 수사결과를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법정에서 공정하게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때까지 북과의 관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더라도 그들이 F-35A( 스텔스) 도입을 반대하는 1인시위 등을 전개한 것은 사실이다

 

국가의 안보를 위한 정책이라고 해도 시민의 입장에서 찬반의 견해를 가질 수 있고, 필요하다면 선전과 시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북의 사주를 받거나 편협한 대외관에 사로잡혀 평화의 정식에 역행하는 활동을 전개했다면, 그러한 행위는 실정법적 제재 여부와 별개로 여러 가지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중국의 군사적 굴기(rising)와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 그리고 조선의 가공할 비대칭 전력(핵무기)를 고려할 때 동북아의 허약한 완충지대였던 한국이 무위(armed suasion)를 강화하지 않고 '평화의 정식'을 내올 수 있는가? 자위력에 기반하지 않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가?  

 

또한 조국사태’를 비롯해서 한국의 복잡한 정치변동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설픈 지침들을 내려서 한국 내부의 자발적 행위처럼 보이게 하면 쌍방이 합의했던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의 원칙에서 예외인가?

 

조선 당국은 2020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면서 전단살포를 중지하기로 한 4.27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강조했는데, 이른바 ‘자주통일 충북동지회가 조작사건이 아니라면 북측도 내로남불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2018년 4.27 판문점회담(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5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며 앞으로 비무장지대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하였다.”(2018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2)

 

 

민족내부의 관계와 내정간섭의 문제 

 

경찰발표에 따르면 201910월에 피의자들이 북측으로부터 받은 암호화파일에는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로 인해 동요하는 중도층 쟁취 사업이란 제목으로 조국사태와 이러저러한 국내정치에 대한 평가와 지시가 담겨 있었다고 한다.

 

자녀 입시비리 등으로 기소된 조국 전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교수는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인정되어 4년 징역형을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가 교육기관의 입학사정 업무를 방해하고 입시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판시했는데, 이것이 보수세력의 책략이라는 말인가?

 

또한 조국 일가의 비리를 비호하는 것이 조선이 강조하는 사회주의체제의 정당성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조선의 식량문제와 코로나방역과 관련해서 인도주의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무색케 하는 사건들은 남북관계에 쓸데 없는 잡음만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지정학적 현실을 간과한 반미 자주주한미군 철수의 맹목적인 선전은 낡은 축음기의 헛바퀴 도는 소리처럼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공염불이 되어버렸다. 조선이 핵무력 완성을 공표하고 위협적인 신형무기를 개발하면서, 한국의 군비증강을 비난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는 것은 한국민들에게 앞뒤가 맞지 않는 선전공세로 비칠 뿐이다.

 

만약 조선이 핵무기를 앞세워 한국을 군사적, 정치적으로 굴복시키거나 순치시키려고 한다면, 한반도(조선반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기질을 스스로 부인하는 모순이다. 조선이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굴하지 않는 것처럼 한국도 조선의 군사적 위협에 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조선이 겉으로는 민족내부의 관계를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간첩질을 육성하거나 어줍잖은 선거 훈수를 두고 있다면, 이는 21세기 한반도 국가의 한심한 몰골이자 대국민 통일사기극의 주요한 책임이 북측에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민족주의인가, 국가주의인가?

 

21세기 중반을 향해가는 시점에 쌍방이 군사훈련 논란이나 간첩단 논란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한반도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에 다름 아니다.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를 통해서 국민과 인민에게서 대결의 족쇄를 제거할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방안을 설계해야 할 때가 왔다.

 

언제든 거꾸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는 한반도 시계는 1~2년 정도가 아니라 수십년 단위로 시간왜곡을 되풀이하고 있다. 여차하면 70여년 전으로 돌아가 전쟁이라도 벌일 태세다. 누구를 위한 민족주의이고, 누구를 위한 국가주의인가?

 

인간의 생이 무한정하다면 하나의 조국(One Korea)’을 기다리며 참고 견디는 미덕을 강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70세가 넘으면 건강수명과 활동수명이 다해가는 인간의 조건에 비추어 철지난 핑계와 변덕으로 점철된 쌍방의 입씨름은 개소리라는 힐난을 면할 수 없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山是山 水是水 佛在何處?) 상호 불승인을 고수하는 반쪽 국가주의가 평행선을 긋는 한반도의 남북관계는 민족이 민족이 아니고, 국가가 국가가 아닌 키메라(Chimera)가 되어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