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국가(World Politics)/미얀마(Myanmar)

무히딘 야신 말레이시아 수상의 건설적 관여론

twinkoreas studycamp 2021. 4. 25. 03:18

4월 24일 아세안 특별 정상회의를 계기로 하여 미얀마사태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관여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무히딘 야신 말레이시아 수상이 미얀마 군부가 외부의 관여를 차단하는 명분으로 내세웠던 ‘내정 불간섭 원칙’에 대응하여 아세안의 '건설적 관여론'를 적극적으로 피력한 대목은 중대한 의미가 있다.

 

미얀마의 폭압적 사태는 더 이상 내정간섭이나 주권제한이라는 방패막으로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관여를 차단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는 조명탄을 쏘아 올린 셈이다.   

 

 

무히딘 야신, ‘건설적 관여'의 정당성 설파

 

무히딘 야신 수상(BERNAMA)

 

동남아 언론이 일제히 보도한 내용들을 종합하면, 이번 정상회의에서 선도적 역할을 한 주인공은 무히딘 야신(Muhyiddin Yassin) 말레이시아 수상이다.

 

그는 미얀마사태에 대해서 아세안에 기대하는 국제적 압력을 환기시키고, ‘내정 불간섭 원칙’(the ASEAN principle of non-interference in the internal affairs)이 역내 평화·안보·안정을 위험에 빠트리는 상황까지 무시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내정 불간섭 원칙이 뒤에 숨는 것은 아니며, 무대책의 이유가 될 수 없다.”(The principle of non-interference is not for us to hide behind ; it cannot be a reason for our inaction.) “아세안 역내에서 건설적인 관여는 신뢰와 양해, 그리고 선의에 입각한 것이다.”(Within the ASEAN domain, constructive engagement is anchored in trust, understanding and goodwill.)

 

무히딘 야신은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최고사령관에게 살상과 폭력의 중지, 사태 악화를 초래할 행동의 자제를 촉구함과 동시에 정치적 억류자에 대한 조건 없는 즉각적 석방을 전제로 한 정치적 대화를 요구하였다.

 

또한 발언의 말미에 “미얀마의 인민은 아세안의 인민이고, 미얀마의 성공은 아세안의 성공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얀마의 미래가 아세안의 미래를 형성한다는 점”이라고 역설했다. 이번 미얀마사태의 추이가 역내의 장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중국, 인도, 베트남, 라오스가 미얀마 군부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야수적인 쿠데타를 묵인하는 것은 아세안의 미래에 드리운 그림자와 같다. 중국과 접경한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는 지정학적으로 대륙세력(Land Powers)과 해양세력(Sea Powers)의 새로운 갈등의 축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결말은 아세안의 국제정치에 장기적 파동을 초래할 것이다.

 

 

 

 

 

아세안 10개국

 

 

 

‘내정 불간섭 원칙'의 악용과 로켓탄 논란

 

현재 미얀마는 730여명 사망, 3300명 납치 및 구금, 20여명 사형선고 등 수백명 중형 선고, 25만명 난민화, 향후 6개월 기아상태 340만명 예상 등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번 특별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얀마 시민들과 임시정부는 흘라잉을 현장에서 체포하여 국제 재판에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UN과 미국의 무기력한 대응에 실망한 세계의 여론은 미얀마의 주변국과 아세안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미얀마 군부와 특수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진 태국·베트남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확산되고, 아세안 및 회원국의 국제적 신뢰성이 저하되는 기류가 형성되었다.

 

 

 

로켓탄 논란(Myanmar Now)

 

 

결론적으로 말레이시아 수상이 역내 불안과 국제적 압력을 고려하여 미얀마사태에 대한 역내 국가들의 관여가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밝힌 것은 ‘하나의 독트린’으로 부를 만큼 중대한 의미가 있다.

 

미얀마사태에 대한 관여가 내정불간섭의 원칙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은 아세안 회원국들의 관여와 인도주의적 지원의 명분에 그치지 않고, 향후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경우에 아세안의 이름으로 동북아 및 오세아니아 국가의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얀마사태가 더 악화되면 야신의 논거에서 출발한 아세안의 관여, 동북아 및 오세아니아의 개입은 EU와 UN를 포함한 지구적 개입으로 이어지는 중간과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면 중국·러시아·인도·베트남 등의 쿠데타 지지 혹은 중립의 입장은 세계적인 고립을 면하기 어렵고, 미얀마 군부는 대내외적으로 더욱 고립될 것이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 리셴룽 수상의 가세

 

이날 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공통적으로 폭력진압의 중단, 정치범 석방, 대화 및 협상의 착수, 아세안의 관여 및 인도주의적 지원에 대한 수용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코 위도도(Wikipedia)

조코 위도도(Joko Widodo)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정상회의에서 민주주의 회복과 시민들에 대한 폭력 중지를 요구했고, 리셴룽(Lee Hsien Loong) 싱가폴 수상은 기자회견에서 아세안이 미얀마에 대표단을 파견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리센룽(Wikipedia)

리 수상에 따르면 흘라잉 사령관은 아세안의 건설적 역할과 대표단 파견 및 인도주의 지원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싱가폴의 언론들은 아세안 정상들이 흘라잉 사령관을 초청한 것은 미얀마의 불행한 사태를 중지하기 위한 노력이며, 그가 요청하는 미얀마 쿠데타에 대한 승인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즉 흘라잉은 특별 정상회의에 미얀마의 정상으로 참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얀마사태에 투영된 아세안의 딜레마와 가능성

 

2차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로 구성된 아세안은 역내 국가와 인종적 공통점 외에는 기독교문화에 기초한 유럽과 같은 공유할 만한 유대감이나 보편성이 분명치 않았다. 이에 따라 각국의 특수성을 존중하는 내정불간섭에 기초한 협의체 성격이 불가피했고, 그러한 원칙을 견지하는 가운데 장기간 존속과 점진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일부 국가에서 독재체제에 의한 인도주의적 문제가 발생하여도 선의에 의한 인도적 지원을 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노출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대외적으로 아세안의 정체성과 신뢰성을 훼손하였다. 최근의 미얀마사태와 아세안의 관계도 이러한 역사적 문제점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히딘 야신 말레이시아 수상이 내정불간섭의 도그마를 뛰어넘으려 했듯이 과거에도 그러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태국과 필리핀도 1998년에 열린 ASEAN 외무장관회의에서 ‘건설적 관여’(constructive engagement)’와 ‘유연한 관여’(flexible engagement)를 제안하였다. 2007년 아세안 헌장 기초과정에서도 인간안보(human security)에 관해서는 내정 불간섭 원칙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논의는 회원국들의 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진화하는 과정과 맞물려 내정불간섭과 건설적 관여를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상보적인 개념으로 이해하는 관점으로 발전되고 있다. 무히딘 야신 말레이시아 수상의 발언도 아세안의 발전과정에서 비롯된 것이고, 결국은 공동의 발전목표를 재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용어 해설>

 

* 내정 불개입, 내정 불간섭(Non-intervention, Non-interference) : 19세기 중반까지 타국의 무능과 결함으로 인하여 자국민과 재산 및 권리가 침해될 경우에 타국에 대해서 주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광범하게 퍼져 있었다. 1868년 칼보(Carlos Calvo)는 타국의 주권을 존중한다면 어떤 국가도 그러한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였고, 이러한 관점은 드래고(Louis Drago)에 의해 내정불간섭 원칙으로 정식화되어 헤이그 2차 협약(1907)의 제1조에 반영되었다.

 

* 주권제한론(Limited sovereignty doctrine) : 국제적으로 강대국의 즉각적 영향권에 있는 국가는 강대국의 외교정책에 순응하기 위해서 자국의 주권을 제한함으로써 독립을 유지할 수 있다는 관점이 존재한다. 그리스 내전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천명한 트루먼 독트린(1947)이나 체코 침공을 정당화한 브레즈네프 독트린(1968)은 냉전 이데올로기와 진영논리에 의한 주권제한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트루먼 독트린은 마셜 플랜, NATO 창설 등으로 발전하였다. “미국의 정책이 소수의 무장된 세력이나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굴복하지 않으려고 투쟁하는 자유민들의 노력을 지원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자유민들이 그들 자신의 방법으로 그들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트루먼, 1947년)

 

* Roger Scrution, A Dictionary of Political Thought 등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