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에 관한 문제/체제선택의 문제

체제선택의 문제(3) 합칠 필요가 없는 발트 3국

twinkoreas studycamp 2021. 9. 5. 16:43

 

“내전은 전쟁이 아니라 병이다. 적이 내 안에 있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싸운다.” (생떽쥐베리)

 

 

Baltic States (sumblon.com)

 

 

역사적으로 유럽의 지정학적 완충국과 소국은 작은 영토와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독립국으로 존립하면서 인접한 소국과 횡적으로 연대하면서 중립노선을 추구하는 국제체제를 발전키려고 했다. 국제연맹(LN)과 국제연합(UN)의 기원도 이러한 유럽의 경험과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러 소국이 각자 독립국으로 존재하면서 전체로서 하나의 힘을 추구하는 유럽의 사례는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 및 공동안보체제에 대한 논의에서 참고할 점이 있다.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노르딕 5국(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과거 동유럽 사회주의 이웃국가들의 비세그라드 4국(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은 대부분 오랜 역사에 걸쳐 지정학적으로 허약한 완충국가의 비극을 겪었던 국가들이다.

 

모네(Jean Monnet)는 2차세계대전의 참화를 겪고 나서 차라리 프랑스와 영국이 하나의 연방체를 구성하는 것이 독일이나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하는 방책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월츠(Kenneth Waltz)의 지적대로 중간 규모의 국가들이 강대국에 대응하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치려면 어느 정도 자국의 정체성을 부분 포기해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대국을 자부했던 영국과 프랑스가 하나의 연방을 구성한다는 것은 망상에 가까웠다.

 

마찬가지로 인접한 완충국이나 소국이 강대국에 대항하기 위하여 하나의 연방국가로 힘을 합치지 않은 것은 국가적 정체성을 서로 양보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군소 민족국가들의 딜레마가 작용한 것이었다.

 

유럽주의자였던 모네는 미·소의 원심력에 순응하는 것보다는 전범국가였던 독일과 이탈리아를 포함하는 하나의 유럽을 지향하였고, 유럽은 장기간에 유럽경제공동체(EEC)-유럽공동체(EC)-유럽연합(EU)의 지평을 열었다. 영국이 결국은 브렉시트(Brexit)를 선택했지만.

 

미 하원에서 한국·독일·일본·인도를 추가할 것을 결정한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는 미국과 영연방에 의한 ‘국제정보체제의 합종’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는 와스프(WASP)와 영연방이라는 역사적 동질성을 갖고 있다.

 

비유하자면 미국과 영국은 합종의 원리를 관철하기를 원하고, 지정학적으로 대중 최전선에 속하는 한국과 인도, 베트남 등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세 나라는 2차세계대전 이후 중국과의 전쟁에서 굴복하지 않았다.

 

동아시아 역사에서도 강대국에 편승하는 것(합종)이 작은 나라들이 연합하는 것(연횡)보다 명분(조건부 정체성 보존)과 실리(전쟁의 회피 혹은 승리)에 부합한다는 경험이 적지 않았다. 냉전시기(1950~1990) 동아시아 질서도 미·소·중에 의한 합종의 원리가 작용했다.

 

한반도와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과거의 지정학적 구도가 맹위를 떨치는 지역들이 있지만, 21세기 지구는 지리적 팽창이 사실상 종료되고 지구적 이동과 정보화로 인하여 공간과 경계의 근본적 변화를 겪고 있다. 세계의 변화 방향은 한반도와 동아시아로 하여금 실패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연횡을 발전시키는 유럽의 사례들을 돌아보게 한다.

 

유럽의 완충국 및 소국의 연횡은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가 ‘Korea Commonwealth’라는 하나의 망토(manteau)를 쓰는 문제와 과거에 강대국의 회전목마로 전락했던 완충지대가 이어지는 동남아의 미래구상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있다.

 

 

발트 3국(globalnegotiator.com)

 

 

발트 3국(Baltic states) :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발트해 연안국가인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는 뭐든지 통째로 합치기를 좋아했던 소연방(Soviet Union)의 위성국가로 있을 때는 정체불명의 ‘발틱 공화국(Baltic Republics)’으로 통칭되었다. 나치독일은 한 수 더 떠서 핀란드까지 포함해서 발트 4국이라고 지칭했지만,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와 함께 하는 북유럽의 정체성을 고수했던 핀란드는 강대국들의 난도질을 거부했다.

 

발트의 어원이 에스토니아 등 세 나라가 벨트(Belt)처럼 이어진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먼 옛날에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했던 동방 족속의 후예인 아발족의 발(Bal)에서 기원했다는 견해도 있다.

 

국명의 이니셜인 에스토(Esto)가 동방(East)을 뜻하는 에스토니아는 혈통적으로 핀(Finn) 계열로 핀란드와 형제국가로 통한다. 인종과 언어도 바스크, 마자르와 같이 아시아적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발트 3국 중에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종교적으로 비슷하고,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는 인종과 언어가 유사하다. 3국은 영토가 작고 인구가 적은 소국들이지만 닮은 점과 다른 점이 뚜렷하여 하나의 발트연방국으로 수렴되지 않고 각자 독립국으로 발전하였다.

 

중세 이후 에스토니아는 덴마크와 독일의 영향을 받다가 16세기 리보니아 전쟁(Livonian War)으로 덴마크(중동부), 스웨덴(북부). 폴란드(남부)에 의해 3등분됐다. 이어서 주변 강대국들의 회전목마로 전락하였다. 스웨덴이 폴란드를 몰아내고 자리를 차지했다가, 폴란드와 손을 잡은 러시아에게 자리를 뺏겼다.

 

이어 볼세비키혁명과 독소전쟁으로 소연방(Soviet Union)의 영향력이 퇴조하자 독립을 선포했지만, 독일군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1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덕에 독립국의 지위를 회복했지만, 소연방이 다시 침공하는 것을 겨우 막아내고 20년간 버텼다.

 

그러나 몰로토프-리벤트로프(Molotov-Ribbentrop) 비밀협정에 의해 소연방의 16번째 공화국으로 편입되었고, 이후 스탈린식 강제이주와 체제이식의 대상이 되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의 대소공격의 발판으로 전락했고, 소연방의 집중적인 공습을 받게 되었다. 전후 협상에서 다시 소연방에 귀속돼 50년 동안 국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영화 '블리자드 오브 소울스' : 허약한 완충국가 라트비아는 독일 황제에 충성하다가 러시아 짜르에게 충성하게 되었는데, 1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침공하자 러시아의 시베리어 원군을 기다리다가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혹독한 희생을 치러야 했다. 전쟁 도중에 러시아에서 볼셰비키혁명이 발생하여 이념갈등까지 벌어졌다.   두번의 세계대전에서 러시아-소비에트연방의 편에서 독일과 싸웠던 라트비아 국민들은 강대국의 깃발을 내걸고 총알받이가 되는 대리전의 참상에 절망하고 자국의 독립과 중립을 원했지만 1990년대 초에 소연방(Soviet Union)이 해체되면서 조국의 깃발을 세울 수 있었다. 라트비아는 강대국 틈에서 전쟁에 휘말려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만명이 사망했다. 

 

라트비아도 강대국이 돌아가면서 올라타는 회전목마로 전락했고, 특히 나치독일에 의해서 7만명에 달하는 유태계 라트비아인들이 살해되었다. 나치가 물러나자 소연방은 라트비아인을 동방으로 이주시키고 러시아인을 대거 유입시켜서 라트비아인이 모국에 60%도 남지 않게 되었다. 크림반도와 마찬가지로 ‘러시안 디아스포라(Diaspora)’가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러시아의 재침공 우려가 사라지지 않는 까닭이다.

 

최남단의 리투아니아는 지리적으로 독일, 폴란드와 인접하여 양국의 영향을 좀더 크게 받았지만 다른 2국과 마찬가지로 허약한 완충국가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회전목마의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한때 지역강국이었던 폴란드 자체가 분할의 대상이 된 마당에 발트 3국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소비에트 잠수함의 카나리아 

 

원래 3국은 소연방이 핀란드를 침공하자 중립을 선언하면서 거대한 강대국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후 나치독일과 소연방의 협상에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소연방의 몫으로 전락했다. 또한 협상 원안에서 독일의 몫이었던 리투아니아도 독·소의 폴란드 분할 협상에서 소연방의 몫으로 돌아갔다. 허약한 완충국가들이었던 핀란드-발트 3국-폴란드는 독·소의 강대국 패권정치에 의해 강점되고 분할되었던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은 소연방의 중심부로 진공하기 위해서 3국을 점령했지만, 독일이 패전하면서 3국은 다시 소연방의 체제이식에 의해서 세 개의 사회주의공화국으로 재탄생했다. 이후로 3국은 냉전시대의 긴 세월 동안 동유럽, 중앙아시아, 몽골 등과 마찬가지로 세계 최대의 사회주의 제국으로 변모한 소연방의 위성국 혹은 일부로 간주되었다.

 

1989년 8월 23일 독·소 비밀협정 50주년을 기해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라트비아 수도 리가를 거쳐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까지 이어지는 600km에 도열해서 종일 노래를 부르며 세계 최장의 인간사슬, 인간띠를 연출했다. 그들은 독·소 비밀협정이 무효이고 3국은 독립국의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듬해 발트해 3국은 차례로 독립을 선언했고, 해체국면에 돌입한 소연방은 3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발트 3국의 노래혁명(Singing Revolution)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보다 수개월 앞서 소비에트체제의 해체를 예고한 것이었다. 당시 세계는 소연방이라는 거대한 잠수함 속에서 마치 세 마리의 카나리아처럼 발트 3국이 왜 그렇게 크게 우는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2004년에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는 모두 NATO와 EU에 가입하여 유럽국가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고, 이후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처럼 러시아로 재합병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허약한 완충국가였던 3국은 과거의 과소균형에서 벗어나 NATO의 일원으로서 미·영·프·독의 배경을 갖게 되었고, 스웨덴·노르웨이· 핀란드·덴마크의 노르딕 밸런스(Nordic Balance)와 연동된 균형의 이득을 누리게 되었다.

 

 

체제선택 : 탈출, 망명, 분리, 무국적 ...

 

지금의 세계는 무력에 의한 지리적 팽창은 사실상 종료되었고, 소연방(Soviet Union)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해체 이후 과거의 경계선들이 대부분 복원되었다. 물론 쿠르드족과 같이 수천년 동안 자신의 영토를 확립하지 못하거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처럼 아직도 경계선을 놓고 싸우는 경우가 있지만.

 

지리적 팽창이 종료하고 국가 및 체제의 경계가 확립되는 과정과 맞물려 주로 비행기에 의한 ‘지구적 이동’이 보편화되었다. 코로나사태로 인하여 지구적 이동이 크게 위축되었지만, 인간의 이동과 체제선택에 대한 근본적 요구를 없애버릴 수는 없다.

 

체제선택의 문제는 흔히 분리와 탈출의 문제를 초래한다. 한때 이탈리아 북부와 캐나다 퀘벡주는 독자적인 체제를 선호하는 분리주의가 성행했고, 북아일랜드에서도 영연방에서 분리하여 아일랜드로 귀속하자는 분리 및 독립주의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또한 영연방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는 과정에서 불안을 느낀 사람들은 사이공(호치민) 시민들이 베트남을 떠났듯이, 아프간 국민들이 카불을 탈출하듯이 홍콩을 떠났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되자 캐나다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캐나다 이민당국은 미국인들의 이주를 환영한다는 광고판을 내걸었다.

 

근래에는 중국 정부의 정치적 압력이 거세지면서 홍콩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겼고, 최근 아프간에서는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탈출했다.

 

 

중립국을 선택한 포로들은 아스트리아호를 타고 네루 수상이 비동맹 중립노선을 주도하던 인도로 행했다. (국사편찬위원회)

 

 

경계인, 중간자의 비극 : 재일 조선인과 중립국행 포로

 

1945년 광복 이후 일본에 잔류한 조선인들은 맥아더 사령부의 지침에 따라 ‘대한제국’도 아닌 ‘사라진 조선’의 국적으로 편재되었는데, 이후 남과 북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이분화되면서 한 쪽의 국적으로 변경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이들을 친북 성향의 잔류자들로 간주하였고, 실제로 조총련이 그러한 활동을 했지만 이들의 생각과 정체성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였다.

 

남북의 체제대립은 하나의 조국을 원하고 중립에 섰던 사람들을 경계선에 서게 했고, 종국에는 무국적자처럼 만들어버렸다. 점점 견고해지는 양측의 체제는 선택이란 이름으로 적응을 강요하였고, 부적응자는 잠재적인 반역자로 간주되었다.

 

휴전 이후 남과 북, 선택의 갈림길에서 선 전쟁포로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으로 풀려난 포로 중에도 제3의 중립국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남북의 대립에 실망한 중립주의자들이었지만, 양쪽에서 조국을 저버린 개인주의자로 매도되었다.

 

그들은 언젠가 하나의 조국으로 평화로운 세상이 되면 돌아오겠다고 기약했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인도를 거쳐 남미로 이주한 사람들 중에는 해당 국가로 귀화하지 않아서 평생을 무국적자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경우도 있었다.

 

주변국들에 비해서 서로 합쳐도 태부족인 발트 3국은 각자 존립하면서도 공존과 교류의 미덕을 보여주는 반면에 경제선진국 한국과 핵보유국 조선은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일체의 이동이나 선택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한반도 내부의 영속적 차단은 쌍방에게 공동의 책임이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측이 변화하고 북측의 폐쇄성이 부각되면서 책임의 편재성이 커지고 있다. 종교적이든 이념적이든 간에 어떠한 목적의 혁명도 근본적으로 체제선택에 대한 인간의 권리에 기초한 것이다.

 

극단적이고 항구적인 차단과 폐쇄는 원시시대부터 옮겨 다니며 서로 교류했던 인간의 DNA에 부합하지 않으며, 종국에는 체제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기 마련이다.

 

앞으로 남과 북이 서로 국가로 인정하고 제한적이나마 상호 이동과 이주의 자유를 허용하는 관계와 질서를 만들 수 있다면, 한반도 국가는 체제선택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 요구를 조금이나마 충족시키는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쌍방의 체제접근에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다. 그러한 경지는 단속적(斷續的)인 기능주의적 교류협력의 양적 축적으로는 기약하기 어렵고,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지정학적 재탄생으로 가능할 것이다.

 

남과 북은 서로 국제법적 주체이자 지정학적 실체라는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고, 통일지상주의와 통일위업론에 담긴 ‘국토완정에 대한 근대적 사고’를 탈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