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에 관한 문제/대국민 통일사기극

대국민 통일사기극(5) 통일부 폐지론

twinkoreas studycamp 2021. 6. 21. 23:17

 

 

통일지상주의의 동상이몽과 대국민 통일사기극에서 벗어나려면 근본적인 문제와 함께 구체적인 문제들에서도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방북 경험이 있는 미래학자 짐 데이토(James A. Daotr)는 미래학을 예언하는(predict) 것이 아니라 예측하는(forecast) 것이라고 규정했다. 한반도 국가의 미래도 예언이 아니라 예측에 의해서 내다 봐야 할 것이다.

 

통일부라는 명칭은 예측이 아니라 당위성에 기초한 예언의 관점이 투영돼 있다. 따라서 통일을 한반도 국가의 절대미래로 전제하고, 통일이란 말 자체를 절대명제로 성역화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산하 기관과 소관 민간단체도 ‘통일’ 자를 앞세우고, 전국의 임의단체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수의 조직이 ‘통일’이란 말을 명칭에 사용하고 있으며, 그 최정점에 통일부가 있다.

 

 

통일부 기원은 북진통일론?

 

한국전쟁 중이었던 1951년에 일부 국회의원들이 전쟁 이후 통일계획을 준비해야 한다는 취지로 대책위원회 구성을 발의했고, 이듬해 정부는 부처종합으로 통일에 대비한 기본계획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정전협정 이후 전쟁복구에 집중하는 가운데 통일문제에 관한 전담 조직을 구성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했다.

 

 

국토통일원 현판식(박정희대통령기념관)

 

남북의 체제경쟁이 본격화하던 시점이었던 1969년 3월 국토통일원이 개원되었다. 그러나 20년 동안 통일문제에 대한 냉전적 접근과 국가주의적 발상, 그리고 타 부처의 경쟁과 견제로 인하여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90년 노태우 정부는 통일원으로 개칭하고 통일부장관을 부총리로 격상했지만 질적인 변화가 미미했다. 국토통일원이란 이름에 투영된 국토완정의 관점은 구조적 원인을 별개로 하더라도 남과 북이 통하여 ‘마음이 하나가 되는 통일(通一)’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조건에서 근본적으로 실현성이 희박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전면에 내걸고 통일부로 개칭하여 남북정상회담과 경제협력의 물꼬를 트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부터 20년이 흐르는 동안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사업을 비롯한 남북협력은 북핵문제의 폭발과 이명박~박근혜정부 10년의 공백기로 인하여 10년 정도의 해빙기에 그쳤다. 2018년에 세 차례의 정상회담이 이뤄졌으나 2019년 이후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고, 2020년 6월 16일 개성공단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사건이 발생했다.

 

 

1980년대 국토통일원은 조선(DPRK)의 연방제통일방안을 한국 내부의 분열을 노린 책략으로 규정했다.(KBS)

 

 

통일부의 기원은 한국전쟁 초기에 북진통일의 가능성을 고려한 국토완정의 관점에서 찾을 수 있으며, 햇볕정책으로 질적인 변화를 거쳤으나 그나마 북핵문제 이후 사실상 동력을 상실하였다.

 

통일부의 실질적 역할이 ‘남북관계협력처’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중한 명칭을 선택한 독일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원래 서독(독일연방공화국)은 한국의 국토통일원과 같은 발상으로 전독(全獨) 문제부를 설치하고 배타적 정통성을 주장했으나(할슈타인 독트린), 브란트의 동방정책에 의해서 내독(內獨)관계부, 양독(兩獨)관계부를 뜻하는 명칭으로 바꾸었다.

 

서독은 통일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제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군사적 재기를 경계하는 주변국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이러한 신중한 접근은 결과적으로 독일의 정상국가 복귀와 민족문제의 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역으로 허약한 완충지대로 남겨진 한반도 국가(남·북)는 차라리 통일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주변국들에게 분할시도에 대한 강력한 반대의지를 남긴 긍정적 측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시효가 있기 마련이다. 1991년 UN 동시가입 이후로 그러한 효과는 점차 반감하고, 쌍방의 국가주의는 더욱 심화되어 통일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민족적 동기는 약화되면서 결국은 탈냉전의 사조와는 반대로 양 체제의 극한적 대립이 고조되었다.

 

북핵은 미국의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는 방어적 동기와 한국과의 체제경쟁에서 밀리는 추세를 군사적 우위로 역전시켜 ‘힘에 의한 통일’을 추진하겠다는 공격적 동기가 혼재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통일부는 명실상부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폐지하는 것이 시의적절하다.

 

 

* 1980년대 국토통일원의 역할 : 뉴스타파 보도 참조

 

https://newstapa.org/article/ZbYfW

 

 

 

1980년대 전두환 대통령의 친필 지시(국토통일원 보고서, 뉴스타파 보도)

 

 

통일부 폐지론의 함정 : 대결 vs 공존

 

통일부 폐지론에는 함정이 있다. 통일부 폐지가 통일지상주의에서 탈피하기 위한 취지라면 대결의 관점과 공존의 관점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통일부 폐지’를 추진하다가 그만두었고, 후임 정부는 ‘통일대박’을 말하면서도 통일부 역할을 크게 제한하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통일부 폐지 혹은 축소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에 대한 비판에 기초한 것이고, 2017년 이후 문재인 정부는 통일부의 역할을 다시 강화하였다.

 

하지만 최근에 국민의 힘 사무총장에 선임된 한기호 전 의원은 2020년 6월에 발생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사건’에 대해서 “다음 정권부터 통일부를 없애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북5도청’에서 출발한 ‘이북5도위원회’는 통일부 소관도 아니고 행정자치부 소관이다. 이런 형식적 조직은 수명을 다했지만, 역대 정부는 실향민을 고려하여 말끔하게 정리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이북 5도’의 도지사들이 억대 연봉의 치관급 대우를 받는 이상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역대 정부가 통일부의 위상과 역할을 둘러싼 시소게임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독일 등의 교훈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통일부의 명칭을 ‘남북협력부(처)’ 등으로 바꾸어 통일에 대한 국가주의적 발상을 거두고, 산하 조직을 포함해서 전반적인 조직체계와 역할을 정비하고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통일부 폐지는 통일이란 명칭을 앞세운 민관조직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그들에게 명칭변경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기존의 관성적인 통일관에 대한 성찰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통일부를 폐지하고 그 호칭과 역할을 재구성하여 가칭 남북관계협력처 등으로 전환하는 것은 과거의 대결주의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관성적인 시나리오(종전협정 및 비핵화)에서 벗어나 한반도 국가의 새로운 존재양식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1969년에 국토완정의 염원을 안고 출범한 국토통일원은 통일원(1990~), 통일부(1998~)를 거쳐 50년이 넘도록 통일을 전담하는 부처였지만, 실제로는 역대정권의 '반쪽 국가주의'에 이바지하는 대국민 통일사기극의 조연이었다.

 

21세기 중반으로 향하는 시점에서 통일지상주의를 탈피하고 기존의 통일부를 폐지하여 명칭과 역할을 재구성하는 방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