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중앙지법 영장기각 은폐 파문
윤석열 대통령의 대리인 윤갑근 변호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에 공수처가 서울중앙지법에 윤석열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과 통신 영장을 청구했으나 각각 기각됐다. 또한 공수처는 여러 명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과 체포 영장을 중앙지법에 청구했으나 각각 기각됐다고 한다.
현재까지 비상계엄사건과 관련하여 공수처가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한 영장 중에서 4건이 기각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윤 변호사는 2개의 영장청구서 실물을 언론에 공개했다.
윤 변호사는 공수처가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서울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하여 받은 것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관할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돼 다른 법원으로 옮겨 청구할 경우에는 기각된 영장과 기각 사유 등을 첨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을 기각한 사유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공수처가 공수처법에서 관할법원으로 규정한 서울중앙지법에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사실을 숨기고 대통령의 주소지에 따라 서울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하는 것에 대해 ‘판사 쇼핑’ 논란이 일자 공수처법 상의 관할법원에 관한 단서조항(불가피한 경우에 주소지 관할법원도 가능)에 따른 것이라고 항변했던 논리가 이제 설득력을 잃게 됐다.
또한 주진우 국민의힘 법률위원장은 공수처가 검찰에 송치한 자료 중에서 영장의 일련번호가 맞지 않는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주 위원장은 이것이 사실이라면 영장 등이 누락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공수처가 중앙지법에 청구했던 영장들이 기각된 것을 검찰에 숨기기 위해 관련자료를 고의로 누락했을 의혹이 불거졌다.
주 위원장은 서울중앙지법의 기각사유에 ‘공수처 수사권에 대한 의문이 있다’는 내용이 있었고, 공수처는 이를 의식해 검찰에 송치할 때 기각된 영장을 은폐했다고 주장한다. 한병도 민주당 의원도 중앙지법이 영장을 기각하면서 “(내란) 수사권 관련된 조정을 해라, 권한이 어디 있는지 자체 논의를 하라”고 요구했다는 점을 시인했다. 결국 공수처는 중앙지법이 내란 수사에 관한 권한문제를 제기하자, 서부지법으로 선회한 셈이다.
그런데 서부지법의 이순형 판사는 사명의식(?)으로 공수처가 요구한 것인지도 불분명한 ‘형법조항의 적용배제’를 적시하여 체포영장을 발부함으로써 사법의 정치화 논란에 초래했다는 힐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서부지법의 이 판사 등이 진정으로 법치주의와 법의 안정성을 중시했는지, 아니면 진영논리에 포획돼 도리어 법치주의에 반하는 성급하게 처신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먼 훗날의 역사적 평가의 몫이 아니라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에서는 공수처가 위법한 행위를 통해 ‘영장 쇼핑’을 했다고 비난하면서 오동운 공수처장에 대한 처벌과 서울서부지법의 영장판사(이순형 신한미 차은경 등)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공수처가 서울중앙지법의 영장기각 사실을 은폐하고 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하여 받은 것이 드러남으로써 ‘사법부의 정치화’와 ‘사법부의 진영화’에 대한 논란에 다시 기름을 부은 격이다.
이 사건은 비상계엄 및 탄핵심판의 본질적 영역이 아니지만 공수처와 사법부에 대한 항간의 불신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게 한다.
대법원의 재판거래 의혹 이후 가중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헌재의 탄핵심판에도 투영되고 있다. 헌법재판관의 정치적 성향이 두드러지게 부각되거나 국회소추위원 및 대리인단과의 인적 관계 등이 불거져 탄핵심판의 공정성에 흠집이 나는 것은 윤석열의 파면에 대한 국민적 요구와 별개로 사법부의 정당한 권위를 흔들고 법치주의의 안정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에 윤준 서울고등법원장이 퇴임사에서 “재판의 공정성과 법관의 정치적 중립은 사법부의 존재기반이자 존재이유”라고 역설하면서, 서부지법 난동사태에 대해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고했다면 그런 일이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윤 법원장은 “재판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믿음이 반석처럼 굳건했다면 그런 일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실제로 이재명의 위증교사 혐의를 무죄로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의 재판장인 김동현 판사는 최근에 인사이동 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지난 2년 동안 대장동비리사건 등 4건의 재판을 질질 끌다가 돌연 재판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새로운 재판장이 들어서면 사건들을 다시 검토하는 과정에서 재판은 더욱 늘어질 것이 뻔하다는 점에서 그의 인사이동 신청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처럼 법원이 선거법 재판의 633원칙을 해태하고 유력 정치인의 재판을 장기간 미루는 경향에 대해 중대한 사법재해로 규정하고 산업재해와 마찬가지로 엄중하게 제제 및 처벌하는 ‘중대사법재해처벌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지경이다. 헌재와 대법원을 비롯한 각급 법원의 맹성과 자정 및 교정이 없다면, 법원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헌재 3월 중순 윤석열 파면 유력, 홍장원 증언 등 변수
국회 탄핵소추위원인 박범계 민주당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헌재가 3.1절 연휴 직후인 3월 4일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할 것이며, 8대0의 만장일치로 탄핵이 인용됨으로써 윤 대통령이 파면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이러한 관측은 헌재의 향후 일정과 최근 변화 흐름에 비추어 억측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박 의원은 9차 변론기일인 18일 혹은 변론 추가시 20일 쯤에 변론을 종결하고 열흘 정도 지난 후에 이러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야권에서 탄핵심판 결과에 대한 전망들이 나왔지만, 탄핵소추위원이 구체적 일자와 심판결과에 대한 예상을 공언한 것은 처음이다.
또한 3월 4일 헌재 선고가 이뤄지면 3월 중하순으로 예상되는 서울고법의 이재명 대표 항소심 선고(선거법)보다 먼저 이뤄지는 것으로, 헌재의 선고일정은 여야의 정치적 이해득실과 민감하게 맞물려 있다.
하지만 헌재가 2월 20일에 10차 변론을 열어 한덕수 총리, 홍 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조지호 경찰청장을 신문하기로 했고, 그나마 윤 대리인단의 변경 요청으로 더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윤석열측은 2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의 자신의 구속취소 신청에 대한 심문 및 공판준비기일에 참석하는 날에 그날 오후 2시로 예정된 헌재 변론에 참석하는 것은 어렵다는 이유로 기일변경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윤의 형사재판 변호인과 헌법재판 대리인은 상당수가 겹치고, 헌법재판소법에는 수사 혹은 재판이 진행되는 사건에 대한 탄핵심판의 경우에 중지(연기)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다. 이에 따라 변론과정의 연장을 고려하면 선고는 3월 중순부터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임기가 만료되는 4월 중순까지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또한 헌재가 증인으로 채택한 홍장원 전 차장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과 함께 ‘오염된 증언’ 논란의 장본인이란 점에서 재판관 내부의 탄핵 찬반구도에 미묘한 변수로 떠올랐다.